이명박 대통령은 태국 파타야에서 열리는 제12차 아세안+3 정상회의 참석차 10일 오전 출국한다.
이 대통령은 과거 현대건설 재직시절 이번 정상회의 개최국인 태국은 물론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에 이르기까지 아세안 국가들과 다양한 인연을 맺었다.
마하티르 전 말레이시아 수상과 리콴유 전 싱가포르 수상과의 개인적 인연은 물론 태국 파타니 나라티왓 고속도로 건설공사 당시 현장 기능공들의 폭동사건, 말레이시아 페낭대교 건설수주 당시의 비화 등 크고작은 이야기들이 적지 않다.
청와대는 "이 대통령이 아세안 국가들은 수십 년 세월을 호령한 삶의 현장이자, 수많은 역경을 헤쳐 낸 기회의 땅이었다고 술회하고 있다"며 "이 대통령에게 이런 경험은 ASEAN 국가를 이해하는 힘이며 동시에 해당 국가 정상들과의 거리를 좁히는 윤활유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다음은 청와대가 '신화는 없다'와 '흔들리지 않는 약속' 등 이 대통령의 저서와 현대건설 소장자료 및 사보 등에 기록된 내용을 바탕으로 정리한 이 대통령과 아세안 국가들의 인연이다.
◆태국 = 태국은 이 대통령이 1965년 현대건설 경리담당 사원으로 2년간 근무한 곳이다. 이 대통령이 난생 처음 밟아본 외국 땅이며, 현대건설이 국내 최초로 해외에 진출한 나라이기도 하다.
현대건설은 당시 16개국 29개 건설업체가 참가한 입찰경쟁에서 길이 98km의 태국 파타니 나라티왓 고속도로 공사를 따냈다. 이 공사는 현대건설에 빚만 잔뜩 안겼다. 그러나 전동식 롤러, 컴프레서 믹서기 등을 직접 고안해 만들어 썼고 최신 공법도 익힘으로써 결국 남는 장사를 했다. 훗날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하는 기술력은 여기서 나왔다고 한다.
잘 알려지지 않은 일화가 있다. 고속도로 건설공사 때 현장 기능공들이 일으킨 폭동 사건이다. 간부와 사원들은 몸을 피했지만 이 대통령은 혼자 현장 사무실을 지켰다. 흉기와 각목으로 무장한 15명의 기능공들은 이 대통령을 사무실 벽으로 몰아세운 채 “금고 열쇠를 내놓으라”고 위협했다.
경리사원 이명박은 금고를 끌어안고 엎드렸다. 무자비한 발길이 몸 위로 꽂혔다. 때마침 신고를 받고 출동한 태국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에 폭도들은 도망갔다. 생사가 오간 순간이었다. 故 정주영 회장이 사건 현장을 찾아 왔을 만큼 이 사태의 파장은 컸다.
이 대통령이 이 고속도로 공사 도중 숨진 동료 직원의 아들을 20년 뒤 현대건설에 취업시켜 준 일화도 아직 회자되고 있다.
◆말레이시아 = 마하티르 수상은 이 대통령이 ‘역할 모델’로 삼았던 정치인이다. 그의 강한 신념과 추진력을 존경했다. 1970년대 말, 말레이시아에서 케냐르 댐을 건설할 때 당시 부수상이던 마하티르와 첫 인연을 맺었다.
마하티르 수상은 ‘새마을운동’의 나라 한국에 큰 관심을 갖고 있었고, 이 대통령은 세계에서 세 번째 긴 다리로 총 공사비 3억 달러의 페낭대교(총 연장 14.5km) 건설수주에 몸이 달아 있었다.
싱가포르가 독립할 때 화교들이 요구했던 것은 현재의 싱가포르가 아니라 페낭 섬이었을 정도로 말레이시아에서는 페낭 섬이 경제적으로 중요한 곳이다.
1981년 최종 입찰 경쟁은 프랑스 캄페농 베르나르, 한국 현대건설 , 일본 마루베니의 3파전이었다. 일본 측은 수상인 후세인에게, 현대건설은 실권이 없던 부수상 마하티르에게 선을 대고 있던 터라 승패는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그해 갑자기 숨진 후세인 수상의 자리를 마하티르가 승계하면서 그동안 신뢰를 쌓았던 이 대통령이 기회를 거머쥘 수 있었다.
◆싱가포르 = 싱가포르와는 81년에 인연을 맺었다. 창이 국제공항 건설에 현대 등 한국기업들이 참여했다. 꼭 10년 뒤인 91년 창이 공항 제2청사 오픈 기념식에도 이 대통령은 건설사 대표로 참여했다.
이 대통령이 잊지 못하는 국가 지도자 중 한명이 리콴유 수상이다. 당시 싱가포르는 수상이 발 벗고 나서 기업인들을 직접 만날 정도로 기업 유치에 적극적이었다. 리콴유는 ‘젋은 사장’ 이명박을 집무실로 초대해 5분짜리 비디오를 보여줬다. ‘싱가포르는 친기업적인 국가입니다’ 첫 장면에 나오는 이 글귀를 이 대통령은 이후 두고두고 화제로 삼았다.
이 대통령은 강소국 싱가포르의 저력이 이렇게 쌓였다고 확신하고 있다. 취임 초부터 ‘기업프렌들리’를 외치고 나온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인도네시아 = 지난 3월 인도네시아 순방 때 이 대통령은 자카르타의 한 호텔에서 기자간담회를 하면서 “이곳은 30년 전 자주 묵었던 곳인데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변하지 않았다”고 소개했다. 그만큼 이 나라와 구석구석 인연을 쌓고 있다. 기업인으로서 마지막 인도네시아 사업이었던 1990년 시멘트 공장 확장공사 이전까지 이 나라를 수없이 드나들었다.
서울시장 재직시 인도네시아가 쓰나미 피해를 입었을 때는 복구지원에 적극 나섰다. 주한 인도네시아 대사가 이를 잊지 않고 감사의 말을 전한 바 있다. 현 유도유노 대통령과는 이번이 세 번째 만남이다.
◆캄보디아 = 훈센 총리는 2000년 당시 아·태 환경 NGO 한국본부 총재이던 이 대통령을 경제고문으로 위촉했다. 이런 인연이 이어져 이 대통령은 지난해 2월 대통령 취임식 참석차 방한한 훈센 총리를 청와대에서 접견한 바 있다. 2007년 앙코르와트 비행기 추락사고 때 대통령 후보로서 훈센 총리에게 서한을 보내 답신을 받기도 했다.
◆필리핀 = 1985년 현대건설 사장 재직시 필리핀 송전선 공사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일본 마루베니社와 치열한 수주경쟁을 한 일화는 유명하다. 현대건설과 마루베니는 각각 마르코스 대통령과 부인 이멜다에게 줄을 대고 있었다. 두 사람은 부부이자 정적이었다. 결국 수주전은 두 사람의 대리전 양상이었고 이 대통령은 결국 쓴 잔을 마셔야 했다.
이 대통령은 기업인 시절 개인적으로 알현한 아키노 전 대통령을 민주화를 이룬 지도자로, 또 뒤이어 권좌에 오른 라모스 전 대통령은 필리핀판 마하티르에 비견될 만한 경제대통령으로서 기억하고 있다.
◆베트남=서울시장 재임 시절 하노이를 방문했을 때 홍강 개발에 대한 요청을 받고 서울시가 마스터플랜을 세워줬다.
◆브루나이=1973년 브루나이에 갔을 때 젊은 왕을 알현했다. 방이 1000개가 넘는 큰 궁전을 인상 깊게 기억하고 있다.
김성곤 기자 skzero@asiae.co.kr
<ⓒ아시아 대표 석간 '아시아경제' (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정치경제부 김성곤 기자 skzero@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