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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보면]칸 경쟁 부문 초청받고도 출품 거부한 감독은…(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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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분도 안 걸리는 계단, 배우들은 느릿느릿
고다르와 마돈나가 공존하는 희한한 영화제
심사 최고 기준은 '미학적 완성도', 그러나…

'알고 보면' 좋을 정보를 두서없이 전달한다.


* <칸이 세계 최고 영화제로 도약한 비결은…(上)>에 이어


*칸영화제 행사장 가운데 매체의 관심이 가장 많이 쏠리는 곳은 영화제 본부 앞의 널따란 계단이다. 영화제 동안 오후 7시가 되면 경비원의 삼엄한 통제로 일반인의 접근이 통제된다. 곧 국제적으로 이름난 스타들의 화려한 등장이 시작된다. 자못 엄숙한 표정으로 빨간 양탄자가 깔린 계단에 올라 상영관을 향해 걸어간다. 그러는 동안 계단 양쪽에서는 빈틈없이 들어차 있는 사진기자들이 근사한 사진을 찍기 위해 서로 밀고 잡아당기며 카메라 전쟁을 벌인다. 보통 걸음으로 5분도 안 걸리는 짧은 거리지만 배우들은 느릿느릿하게 움직이며 사진기자들과 광장에 모인 청중을 향해 웃고 손을 흔든다.


[알고보면]칸 경쟁 부문 초청받고도 출품 거부한 감독은…(下) [이미지출처=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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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영화제에서 계단 위 스타들의 행렬은 '몽트 데 마쉬'라고 한다. 직역하면 '계단을 오르다'라는 뜻이다. 언젠가부터 미디어 중심의 의례적 이벤트가 돼 고유명사로 사용된다. 생방송을 통해 해외로 중계될 정도로 인기가 높다. 계단뿐 아니라 영화제 본부 앞 크루아제트 거리도 행여 이름난 스타를 만날까 해 모여드는 구경꾼들로 날마다 길이 막힌다. 지나가는 감독이나 사진기자 눈에 들기 위해 희한한 몸차림으로 길거리를 걷는 젊은 아가씨들도 심심치 않게 나타난다.


*1978년 집행위원장이 된 질 제이콥은 새로운 경향을 보여주는 작품들을 폭넓게 수용하고자 '주목할 만한 시선'이라는 비경쟁 부문을 신설했다. 쉽게 말하면 경쟁 부문 문턱에 오르는 대기실이다. 경쟁 부문의 좁은 관문만으로는 세계 곳곳에서 등장하는 젊고 새로운 작가들을 발굴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로써 칸영화제는 공인된 거장에 대한 예우와 새롭게 부상하는 영화의 기류가 공존하는 공간으로 독보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베를린과 베네치아를 따돌리고 세계 최고 영화제로 격상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칸영화제는 이때부터 누벨바그 감독인 장 뤽 고다르와 팝 스타 마돈나가 공존하고,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스타 아놀드 슈왈츠제네거와 이란의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이 레드카펫을 함께 밟고 입장해도 어색하지 않은 영화 축제가 됐다.


*'주목할 만한 시선'은 '독자적이고 색다른' 영화에 주안점을 두고 선별한다. 비경쟁 부문으로 운영하다 1998년부터 재질 있는 감독을 장려하고자 최우수작에 프랑스에서의 배급권을 부여했다. 2005년부터는 상금 3만 유로를 수여한다. 출처는 프랑스 보험회사 그루파마강이 1987년 마련한 그루파마강 파운데이션이다.


*1946년 명명된 '칸국제영화제'는 2002년 '칸 페스티벌'로 바뀌었다.


[알고보면]칸 경쟁 부문 초청받고도 출품 거부한 감독은…(下) [이미지출처=AP연합뉴스]

*칸영화제는 도도한 영화 축제다. 복잡한 프레스 등급을 매겨 웬만한 미디어에는 배지를 허용하지 않는다. 영화산업 종사자와 영화인을 우대하는 운영정책으로 일반 관객은 좀처럼 접근하기 힘들다.


*칸영화제를 취재하는 보도진은 엄격한 드레스 코드를 준수해야 한다. 레드카펫에서 사진을 찍는 기자들조차 검은색 정장을 입어야 한다.


*칸영화제는 작품성에 대한 가혹한 평가로 악명이 높다. 경쟁 부문 작품들을 주로 상영하는 뤼미에르 극장에서는 영화가 관객의 기대에 못 미치면 한참 동안 야유가 흘러나온다. 제이콥 전 집행위원장은 무자비한 평가에 대해 "칸은 중간이 없다. 예스 아니면 노다. 호불호가 명확하게 갈린다"고 설명했다. 이런 이유로 할리우드 대형 배급사들은 출품이나 홍보하러 칸에 오기 전에 신중한 준비 절차를 밟는다. 이를 간과한 대표적 사례로는 커티스 핸슨 감독의 'LA 컨피덴셜(1997)'이 꼽힌다. 경쟁 부문에 올라 홍보·마케팅에 막대한 비용을 치렀으나 어떤 상도 타지 못하고 돌아갔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글래디에이터(2000)'는 전철을 피하고자 경쟁 부문에 초청받고도 출품되지 않았다. 성공 사례도 적지 않다. 신예 감독이던 스티븐 소더버그는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1989)'로 황금종려상을 품어 순식간에 세계적 감독으로 주목받았고,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 역시 '펄프 픽션(1994)'으로 같은 상을 받아 전 세계에 놀라움을 줬다.


*작품성에 자신이 있더라도 칸영화제 경쟁 부문 수상 여부는 알 길이 없다. 공식적으로는 미학적 완성도가 심사의 최고 기준이나 어떤 영화제보다도 기준이 모호하고 변덕스럽기 때문이다. 칸의 취향은 시대에 따라 변해왔다. 특히 순수한 미적 이상주의와 상업적 기회주의, 지정학적 정치학 세 가지가 매번 변덕스럽게 결합한다. 예컨대 칸영화제는 독일 출신 감독이 만든 작품을 7년 동안 경쟁 부문에 초청하지 않았다. 이탈리아 영화도 비슷하게 대접했다.


[알고보면]칸 경쟁 부문 초청받고도 출품 거부한 감독은…(下) [이미지출처=AP연합뉴스]

*칸영화제는 작가주의 영화 이론을 만든 자국의 영화적 자존심을 상징한다. 당연히 자국 영화에 대한 사랑이 각별할 수밖에 없다. 영화 예술의 순결성에 대한 고집은 그동안 많은 논쟁을 낳았다. 선택받은 영화 대부분을 정작 일반 관객들이 외면해서다. 이런 이유로 단지 몇 명의 비평가들을 만족시키기 위한 영화 제작이 과연 이 시대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에 대한 비판이 일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칸이 선택한 영화들은 세계 영화계에 주요 아젠다를 형성하고 미학적 흐름을 주도한다. 발굴된 새로운 작품과 감독 역시 전 지구적 관심의 대상이 된다.


*칸영화제는 최근 경쟁 부문을 예술영화와 작가영화 위주로 선전하고, 비경쟁 부문을 할리우드 유명 스타들을 불러들이는 창구로 활용하는 측면이 있다.


*비공식 부문의 비평가주간(평론주간)은 원래 저명한 프랑스 비평가 조르주 사둘과 그의 동료 루이 마르코펠레가 1962년 창설한 별도의 독립영화제였다. 칸영화제와 노선을 함께 한 뒤 프랑스비평가협회는 감독의 첫 번째나 두 번째 작품을 선별해 상영한다. 이 부문을 통해 배출된 감독으로는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레오 카락스, 왕가위, 프랑소와 오종 등이 있다. 비평가주간이나 감독주간은 칸영화제 집행위원회와 아무 관계가 없는 부문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최근 칸영화제의 규모와 위상이 커지면서 공식 부문으로 가기 직전의 관문 같은 역할을 한다. 특히 경쟁 부문에 진입하기 어려운 신인 작가들에게 풍부한 기회를 제공한다.


*인구 7만 명의 작은 도시인 칸은 해안이라는 이점과 화려한 영화제 이미지에 걸맞은 명품 쇼핑 산업 발달로 막대한 관광수익을 올린다. 그러나 도시 인프라는 베를린 등보다 떨어지고, 발전 속도 또한 정체돼 있다.


[알고보면]칸 경쟁 부문 초청받고도 출품 거부한 감독은…(下) [이미지출처=AP연합뉴스]

*임안자 평론가는 1994년 칸영화제 황금카메라상 심사위원으로 초청받았다. 그는 당시 겪은 일들을 저서 '내가 만난 한국영화'에 상세하게 회고했다. "1994년 5월 11일 나는 바젤에서 비행기를 타고 한 시간을 날아 칸 근처의 니스 공항에 내렸다. 출구로 나가자 영화제에서 보낸 리무진이 나를 기다리고 있어 편하고 빠르게 호텔에 도착했다. 짐을 푼 뒤 다시 리무진으로 장 루 파섹의 사무실에 가서 다른 심사위원들을 만났다. 황금카메라상은 집행위원장 질 제이콥이 1978년 새로 만든 수상 제도로, 칸영화제의 이름으로 주는 상 가운데 황금종려상 다음으로 중요한 상이다. 해마다 칸영화제의 각 부문에 들어 있는 영화 가운데 감독들의 첫 작품만 골라서 심사하며, 심사위원은 프랑스 영화계를 대표하는 다섯 명과 해외 평론가 세 명 등 모두 여덟 명이다. 1994년에는 프랑스 단편영화의 1인자인 프랑수아 오데, 프랑스 영화기술협회장 조르주 팡주, 평론가 자크 짐머, 칸에서 활동하는 시네필 조세 브로사드, 스위스 출신 프랑스 여배우 마르타 켈러(심사위원장)였다. 그리고 해외의 세 평론가는 포르투갈 판타스포르토영화제 집행위원장 마리오 도민스키, 네덜란드 평론가 한스 베레캄프 그리고 나였으며, 심사위원들의 공식 언어는 불어였다. 심사위원 여덟 명은 본선의 경쟁 부문과 주목할 만한 시선, 평론주간, 감독주간, 프랑스 영화 등 다섯 부문에 선정된 영화 가운데에서 수상작을 골라야 했다. 1994년에는 국제경쟁 부문 한 편, 주목할 만한 시선 여섯 편, 평론주간 여섯 편, 감독주간 두 편, 그리고 프랑스의 영화 한 편 등 모두 열여섯 편이 황금카메라상 심사 대상이었다. 사실 초기 황금카메라상은 16㎜ 카메라였다. 그래서 황금카메라상으로 불리고 있었으나 1988년부터 수상 품목이 바뀌어 최우수 작품에 코닥에서 제공하는 현금 30만 프랑이 주어졌다. 코닥는 이 밖에도 영화제 본관 3층에 황금카메라상 심사 대상의 영화감독들과 심사위원들을 위한 라운지를 마련하고 해변의 카페 등을 제공했다. 황금카메라상 심사에 오른 열여섯 편을 가지고 우리는 네 번의 토론을 거쳐 최종 작품을 골랐다. 마지막 심사는 폐막식 하루 전인 5월 22일 질 자콥이 머무는 칼튼 호텔방에서 있었는데, 토론 과정은 아침 10시에서 오후 4시까지 길고 복잡했다. 영화제 규칙상 토론이 끝날 때까지 호텔 방을 떠나지 못하게 돼 있어 방 안에서 점심을 먹었다. 오후 5시쯤 드디어 수상 영화가 결정됐는데, 프랑스의 여성 감독 파스칼 페랑의 '죽음 저편의 삶'이 5대 3 비율로 뽑혔다. (…) 황금카메라상 심사는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었으나 심사위원들과 나눈 토론은 영화 비평론에 귀중한 경험이 됐고, 무엇보다 심사 과정을 통해 칸영화제 여러 부문의 구조를 자세히 파악할 수 있어 칸영화제의 특이성을 이해하는 데 많은 보탬이 됐다. 더불어 1994년은 나 말고도 한국 기성세대의 대표 감독의 하나였던 신상옥 감독이 본선 경쟁 부문 심사위원으로 초청돼 한국 기자들의 기삿거리가 됐다. 신상옥 감독이야 한국에서 아주 잘 알려진 인물이지만 '임안자는 도대체 누구야' 하고 궁금해하는 기자들이 있었고, 어떻게 한꺼번에 한국인이 두 명이나 심사위원으로 뽑혔냐는 질문도 많았다. 황금카메라상 심사위원으로 뽑힌 다음 나는 여러 곳으로부터 부름을 받았다."


[알고보면]칸 경쟁 부문 초청받고도 출품 거부한 감독은…(下) [이미지출처=AP연합뉴스]

*한국영화의 외교관으로 불리는 김동호 강릉국제영화제 이사장은 부산국제영화제 창설을 앞둔 1996년 5월 8일 칸영화제를 처음 찾았다. 그는 프랑스 식당 가브로슈에 주요 영화인들을 초청해 부산영화제 창설을 알리는 조촐한 오찬을 가졌다. 자리에 참석한 막스 테시에 칸 선정위원과 울리히 그레고르 베를린영화제 영 포럼 책임자, 사이먼 필드 로테르담영화제 집행위원장, 바우터 바렌드레히트 시네마트 책임자, 세르주 로지크 몬트리올영화제 집행위원장, 알랭 잘라도 낭트영화제 집행위원장, 크라우스 에더 뮌헨영화제 집행위원장, 래리 카디쉬 미국 뉴욕현대미술관 영화책임자 등은 성공을 기원하며 부산 방문을 약속했다. 김 이사장은 "5월 11일에 가졌던 이 오찬이 부산영화제의 성공을 예감케 한 중요한 모임이었다고 생각된다"며 "그 뒤 나는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칸영화제를 찾았다"고 적었다. 그는 여든여섯 살인 올해도 칸을 찾아 프랑스 국립영화영상센터(CNC)와 한·프 영화 아카데미를 설립하는 등 왕성하게 활동했다.



참고 자료 : 박강미 지음·발행처 스토리하우스 '국제영화제의 탄생(2013)', 안수정 지음·발행처 명인문화사 '레드카펫 : 웰컴 투 필름페스티벌(2014)', 임안자 지음·발행처 본북스 '내가 만난 한국영화(2014)', 김동호 지음·발행처 문학동네 '영화, 영화인 그리고 영화제(2010)' 등.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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