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자-소비자 '가격 협상'의 차이
빙수는 '프리미엄 경험' 가치 반영
"국밥은 서민 음식…싸야" 기대감
물가 폭등 사태가 지속되면서 음식점 가격도 줄줄이 오르고 있다. 호텔의 고급 빙수부터 서민 음식의 대표 격인 국밥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가격 인상을 받아들이는 소비자의 심리는 제품에 따라 제각각이다. 한 그릇에 12만원을 넘는 고급 빙수는 여전히 높은 인기를 구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반면, 1만원 국밥에 대한 심리적 거부감은 상대적으로 훨씬 크다.
왜 소비자는 특정 제품의 가격 인상을 다른 제품보다 더 관대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제품 가격은 생산자-소비자 합의로 이뤄져
전문가는 그 차이의 원인이 '심리적 가격 협상'에 있다고 설명한다. 특정한 제품이나 서비스의 가격은 단순히 원가나 인건비, 수요·공급만으로 결정되는 게 아니다. 본질적으로 판매 가격이란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협상'에 의해 이뤄진다는 것이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가격만 따지면 호텔 빙수 10만원은 고급 디저트라고 해도 과해 보일 수 있지만, 사실 호텔 빙수는 단순히 '빙수를 먹는 것'에 의의를 둔 상품이 아니다"라며 "호텔 빙수를 구매하는 소비자는 평소 자신이 이용할 수 없었던 최고급 호텔 시설을 10만원에 간접적으로 누리는 기회를 얻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여기에는 특정 제품을 소비하면 그 제품을 소비하는 소비자 집단과 같아진다는 환상, 일명 파노플리 효과도 반영돼 있다.
이 교수는 "호텔 빙수 소비자들은 빙수를 먹은 뒤 사진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 올리며 과시한다. 빙수를 먹는 경험 자체가 '스몰 럭셔리'(small luxury·작은 사치)이기 때문"이라며 "이런 독특한 경험은 일상적인 식사와는 차별화된 것이다. 소비자가 국밥엔 납득할 수 없는 빙수의 '프리미엄'은 여기에 있다"라고 덧붙였다.
국밥과 같은 서민 메뉴에도 이런 '합의'가 있다. 소비자는 자신이 일상적으로 소비하는 음식에 저렴한 가격과 많은 양을 기대한다. 이 때문에 가격 인상률이 낮더라도, 소비자들은 당장 '1만원 국밥'에 반발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일본에는 '라멘 1000엔의 벽'
이러한 이유로 발생하는 '가격 장벽'은 한국뿐만이 아니라 여러 나라의 서민 음식에서 흔히 발견되는 현상이다.
일례로 일본 라멘업계에는 '1000엔(약 9800원)의 벽'이라는 용어가 있다. 이는 아무리 고급화 전략을 추구하더라도 라멘 한 그릇 가격은 1000엔을 넘어선 안 된다는 이론이다. 소비자들은 라멘 가격 1000엔 이상부터 지갑을 열길 망설이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해 5월 일본의 유명 라멘 전문점 '이이다쇼텐'이 일부 제품 가격을 1600엔(약 1만5700원), 2000엔(약 1만9600원)으로 인상하겠다고 밝히자 현지 소비자들로부터 격렬한 반발을 사기도 했다.
한 그릇에 12만6000원 '빙수 10만원 시대'
한편 포시즌스 호텔은 18일 '제주 애플망고 가든 빙수'를 오는 5월1일부터 9월30일까지 판매한다고 밝혔다. 가격은 한 그릇에 12만6000원. 전년 대비 30%가량 올랐다. 바야흐로 '빙수 10만원 시대'가 열린 셈이다.
에너지 가격, 곡식, 육류 등 물가 급등 사태가 지속되는 가운데 음식점도 줄줄이 가격을 인상하고 있다. 고급 빙수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식대 결제 서비스 '식신' 자료에 따르면, 대표적인 서민 음식인 순대국밥 가격도 지난해 말 기준 평균 9633원으로 증가했다. 올해엔 1만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임주형 기자 skeppe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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