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국정과제' 한전공대…40만㎡ 부지에 건물 하나
올 3월 '과속 개교' 논란…등굣길에 공사장 지나야
'차량 주의' 알림판도…학교 사방이 6m 높이 가림막
올해 국감 '뜨거운 감자' 부상…'졸속 추진' 등 지적
[아시아경제 나주=이준형 기자] 40만㎡.
11일 찾은 전라남도 나주 한국에너지공과대학교(한전공대)의 부지 면적이다. 통상 축구장 1개 면적이 약 7140㎡라는 점을 고려하면 축구장 56개가 들어설 수 있는 크기다. 이같은 면적은 한전공대 설립을 핵심 국정과제로 추진한 문재인 정부의 야심을 그대로 보여준다. 지난 정부는 한전공대를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교(MIT)와 같은 세계 10대 공대로 키우겠다는 구상이었다.
문제는 정부의 ‘임기 내 개교'라는 야심이 과속 개교로 이어졌다는 점이다. 한전공대는 지난 3월 40만㎡ 면적에 4층짜리 건물 한 동만 갖춘 채 문을 열었다. 지난해 6월 착공한 학교 인프라가 완성되는 건 2025년께다. 학생들은 학교 인근 부영CC 골프텔을 리모델링한 임시 기숙사에 지내고 있다. 유일한 건물인 본관동에 임시 조성된 대학 도서관 크기는 226㎡(약 68평)에 불과하다.
골프텔이 기숙사
실제 이날 찾은 한전공대에선 과속 개교의 흔적을 곳곳에서 찾을 수 있었다. 도보로 20분 거리에 있는 임시 기숙사에 머무는 학생들이 강의를 듣기 위해 본관동으로 가려면 한창 공사가 진행 중인 캠퍼스 부지 옆을 지나야 한다. 한전공대 학생들이 본관동으로 향하는 길목의 공사장 입구에는 “알림이 발생하면 차량이 진·출입하니 주의해달라”는 내용의 알림판이 붙어 있었다. 공사 소음은 등굣길은 물론 본관동에서도 꾸준히 들렸다.
공사장을 지나 학교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잔디밭이 그려진 철제 가림막이 보인다. 부지 내 유일한 건물인 본관동은 공사장 한복판에 놓여있어 사방이 6m 높이의 가림막으로 둘러싸여 있다. 본관동 후문으로 나서면 약 3m 거리에 가림막이 놓여있을 정도다. 건물 2층 높이까지 올라선 가림막으로 인해 후문 앞은 모두 그늘져 있었다.
제대로 된 가로수도 없었다. 본관동 인근에 띄엄띄엄 심어진 가로수는 대부분 2~3m 크기의 어린나무였다. 학교에 들어서 본관동으로 들어서기까지 나무 그늘이 드리워지는 길은 없었다. 또 본관동 앞 4차선 도로에 놓인 정류장에는 아직 버스가 다니지 않았다. 버스를 타려면 본관동에서 약 730m 거리에 있는 정류장으로 나가야 한다.
"주무부처도 패싱"
이에 한전공대는 올해 전력그룹사 국정감사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특히 여당은 11일 전남 나주 한국전력 본사에서 열린 현장 국감에서 한전공대와 관련해 질타를 쏟아냈다. 김성원 국민의힘 의원은 국감에서 “한전이 한전공대 현금자동인출기(ATM)로 전락했다”면서 “전력산업기반기금 잔액이 급감하며 총체적 난국인데 한전은 계속 지원해야 하는 입장”이라고 했다. ‘적자 늪’에 빠진 한전이 수천억 원에 달하는 한전공대 설립·운영비를 조달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전이 정부 방침에 맞춰 한전공대 설립 과정을 서두르는 과정에서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를 ‘패싱’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한전이 박수영 국민의힘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한전은 2018년 9월 청와대에 직접 ‘한전공대 설립지원위원회’ 구성을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다. 박수영 국민의힘 의원은 “산업부를 패싱한 한전은 향후 재무 영향 등에 유의해 (한전공대 설립을) 추진하라는 기획재정부 의견도 무시했다”면서 “(한전공대 설립에) 절차적 하자가 있는 건 틀림없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황주호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은 "(설립 절차가) 정상적이진 않다고 본다"고 했다.
나주=이준형 기자 gils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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