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이유로 직장 그만두는 여성 많아
진정한 변화 원한다면 남아서 목소리내야
영화 ‘풀타임’ 속 쥘리(로르 칼라미)는 싱글맘이다. 두 아이를 키우기 위해 파리 5성급 호텔에서 청소부로 일한다. 경제학 석사까지 수료했으나 육아로 경력이 단절됐다. 이력에 맞는 직장을 원하지만 준비할 시간은 빠듯하다. 새벽같이 일어나 밥상을 차리고 두 아이를 이웃에게 맡겨야 한다. 대중교통을 갈아타고 도착한 호텔에선 스마트폰을 볼 여유조차 주지 않는다. 퇴근한 뒤에도 노동은 계속된다. 아이들을 집으로 데려와 재우고 이튿날 출근을 준비해야 한다.
가뜩이나 버거운 일상은 더 힘들어진다. 전국적인 교통 파업으로 파리 외곽에서 시내로의 출퇴근이 어려워져서다. 시간제 근무 등을 기대할 수 없어 걸음을 재촉할 수밖에 없다. 쥘리는 지각을 반복해 근태 불량으로 낙인찍힌다. 늦어지는 퇴근으로 아이들을 돌보는 이웃에게 쓴소리도 듣는다.
"먹일 것도, 잘 데도 없어요" "네, 알죠." "애들 물건도 없고요." "저희 집에 가실래요?" "그냥 빨리 와요." "가고 싶은데 차가 없어서 어떡할지 모르겠어요. 저희 집 가셔도 돼요." "그건 싫어요! 낯선 집에서 애들 챙기기 나도 불편해요." "저도 어쩔 수가 없어요. 정말 모르겠어요. 오늘 못 갈 것 같아요." "본인 애들은 본인이 책임져야죠."
쥘리는 파업 노동자들처럼 작업을 중단할 형편이 못 된다. 정부나 지자체의 육아 지원이 열악해 생계 방편이 필요하다. 프랑스만의 문제가 아니다. 세계 많은 여성이 비슷한 문제로 골머리를 앓는다. 사회학자 파멜라 스톤은 ‘여성의 퇴직은 자발적인가?: 일을 관두고 집으로 간 진짜 이유’에 다음과 같이 썼다.
"일단 여성이 엄마가 되려고 하면 일터의 적대적인 분위기를 맞닥뜨리게 된다. 육아와 관련된 여성의 상황은 사적인 문제로만 취급된다. (…) 일터와 가정은 철저히 분리돼 있고, 그에 관한 얘기를 꺼내는 건 금기시된다. 결국 각자 알아서 처리해야 한다는 식이다. 모성애를 드러내면 차별받기 일쑤이니 여자들은 아무런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 직장문화 자체가 이를 개인적 문제로 본다."
이런 이유로 많은 여성은 장기간 근무하지 못한다. 설사 지속해도 임신 등 많은 걸 포기한다. 이미 아이가 있는 싱글맘은 사실상 기계가 된다. 회사 업무를 마치자마자 육아를 시작한다. 불안함이 깃든 여유 없는 삶. 꼭 완벽해야 할 필요는 없다. 여권신장운동은 고통 없는 삶을 약속한 적이 없다. 일과 가정의 조화를 이루는 게 쉬울 거라 주장하지도 않았다. 단지 여자도 남자와 똑같이 할 수 있다고 알려줬을 뿐이다.
쥘리는 온갖 어려움을 감수하나 일방적으로 해고를 통보받는다. 몇몇 선택은 분명 무모하고 위험했다. 그런데 호텔 측은 그의 사정에 관심을 보이거나 공존을 모색하지 않았다. 그 순간 해고는 개인적 문제에서 가정과 일의 병행과 관련한 구조적 문제로 치환된다. 특정 시기나 특별한 일이 있을 때 회사는 쉴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정부나 지자체도 재정적 보조에 신경을 써야 한다. 가시화하려면 일하는 여성이 늘어나 목소리가 커져야 한다.
실상은 어떨까. 여전히 많은 여성은 가정을 이유로 직장을 그만둔다. 간부나 최고위직에 오른 소수 여성은 대개 남성의 삶을 살았다. 독신이거나 자녀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설사 있더라도 하나 정도다. 가정과 일을 병행하는 고통을 충분히 이해하기 어렵다. 그만큼 사회적 변화는 느려지고 여성은 양자택일 상황에 놓일 수밖에 없다. 진정한 변화를 원한다면 직장에 남아 남성과 동등한 대접을 요구하며 아이를 가질 권리가 있다고 말해야 한다. 그러면 남성들도 동참할 것이다. 균형 있는 삶을 원하지 않는 직장인은 없을 테니.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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