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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보통사람" vs "전두환 친구" 노태우 전 대통령 사망, 시민들 격론

수정 2021.10.27 10:54입력 2021.10.27 10:25

'육사 동기' 전두환 이은 '신군부 2인자'
군사정권에서 민주화 과도기 대통령

26일 오후 전직 대통령 노 씨 사망과 관련해 이날 서울 종로 일대에서 만난 시민들은 그의 공과를 두고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사진=윤슬기 기자 seul97@asiae.co.kr


[아시아경제 한승곤·윤슬기 기자] "오래 살았네…난 그 사람 잘했다고 생각 안해." , "전두환이랑 다 해먹었잖아."


전직 대통령 노태우 씨가 지병으로 26일 숨졌다. 향년 89세. 오랜 병상 생활을 한 노 씨는 최근 병세 악화로 서울대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았지만,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삶을 마감했다.

이날 유족이 발표한 성명에 따르면 노 씨는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겸허하게 그대로 받아들여, 위대한 대한민국과 국민을 위해 봉사할 수 있어서 참으로 감사하고 영광스러웠다"며 "나름대로 최선의 노력을 다했지만 그럼에도 부족한 점 및 저의 과오들에 대해 깊은 용서를 바란다"고 했다.


노 씨가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정치 1번지' 서울 종로에서 만난 시민들은 '깊은 용서를 바란다'는 그의 유언과 달리 비판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또 일부에서는 군사정권에서 민주화로 이어지는 과도기적 상황에 일정 부분 역할을 했다는 견해도 있었다.

이날 중구 을지로 인근에서 만난 한 50대 택시기사는 노 씨가 사망했다는 소식에 "노태우는 전두환 친구 아니냐"면서 5·18 민주화운동에서의 민간인 학살 개입 등 과오(過誤)에 대해 지적했다.


"난 노태우 정치 잘했다고 봐" 26일 오후 서울 종로 탑골공원 인근에서 만난 50대 직장인의 평가다. 이날 만난 시민들은 노 씨 공과에 대해 여러 의견을 보였다. 사진=윤슬기 기자 seul97@asiae.co.kr


종로 낙원상가에서 만난 또 다른 50대 남성 직장인 김 모씨는 "노태우는 보통사람이 아니다, 무슨 잘한 일이 있냐"면서 목소리를 높였다.


'보통사람'은 노 씨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당시 사용했던 슬로건이다. 그는 이후에도 취임식이나 각종 연설이 있을 때마다 "나 이 사람 보통 사람 믿어주세요"라며 잔혹한 군사쿠데타를 일으킨 자신의 이미지를 지우고자 했다.


반면 노 씨의 공을 치켜세우는 의견도 이어졌다. 노 씨의 고향 대구 달성에서 출생했다고 밝힌 60대 남성은 "깡패 많이 잡고 정치도 좀 하지 않았나"라면서 "그 시절이 살기 좋았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난 개인적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보다 잘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20대 대학생들의 평가는 엇갈렸다. 외교적 지위 향상은 높게 평가를 했지만 이를 제외한 나머지 부분은 사실상 실패한 대통령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종로 번화가에서 만난 자신을 정치외교학과라고 밝힌 한 청년은 "남북한 UN 동시 가입, 재직 중 북방정책이라든가 하는 부분은 인정한다"고 말했다. 이어 "다만 국내 정치적으로 보면 뚜렷한 업적은 없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대한민국 제13대 대통령을 지낸 노태우 전 대통령이 26일 숨졌다. 사진은 1981년 국군보안사령관 노태우 대장 전역식. [이미지출처=연합뉴스]


노 씨 일생에 대해서는 빛과 그림자가 공존한다. 12·12 군사 쿠데타를 주도한 육사 동기 전두환 신군부의 2인자라는 과(過)가 있는 반면, 군사정권에서 민주정부로 이어지는 과도기의 불안한 사회 분위기 속 역할을 했다는 평가도 있다.


노 씨는 육군 9사단장이던 1979년 12월12일 육사 11기 동기생인 전 씨를 중심으로 한 신군부 '하나회' 세력으로 군사쿠데타를 주도했다. 신군부 2인자로 떠오른 노 씨는 수도경비사령관, 보안사령관을 거친 뒤 대장으로 예편하고 정무2장관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이어 초대 체육부 장관, 서울올림픽조직위원장, 민정당 대표를 거치면서 쿠데타를 저지른 군인 이미지에서 정치인으로 변화했다.


이후 5공화국 말기 전직 대통령 전 씨의 정권를 계승할 후계자로 부상, 1987년 6월10일 잠실 실내체육관에서 치러진 민정당 전당대회에서 대통령후보로 지명됐고, '보통사람 노태우'를 슬로건으로 내건 노 씨는 직선 대통령에 선출된 뒤 민주주의 정착에 힘썼다.


특히 첫 남북 고위급 회담을 성사시키며 남북 기본합의서 채택과 비핵화 공동선언 등 남북 관계의 기초를 마련했다. 1991년에는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이라는 성과도 이뤘다. 대통령 재임 기간 레임덕과 동시에 '물태우'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1996년 12.12 및 5.18사건 항소심 선고공판에 출석한 노태우·전두환 전 대통령의 모습. [이미지출처=연합뉴스]


대통령 퇴임 후 12·12 주도, 5·18 광주 민주화운동 무력 진압, 수천억 원 규모의 비자금 조성 등의 혐의로 전 씨와 함께 수감됐다. 이어 법원에서 징역 17년형과 추징금 2600억여 원을 선고받았다. 1997년 12월 퇴임을 앞둔 김영삼 대통령의 특별사면 조치로 석방됐다.


한편 정치권은 노 씨의 공과를 분명히 했다. 이용빈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12·12 군사쿠데타의 주역이자 5·18 광주민주화운동 강제 진압에 가담한 역사의 죄인이고, 결과적으로 군사 독재를 연장했다"면서도 "다만 재임기간 북방정책과 남북기본합의서 채택, 중국 수교 수립 등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허은아 국민의힘 수석대변인도 "고인은 재임 당시 남북한 동시 유엔 가입, 남북기본합의서 채택, 북방외교 등의 성과도 거뒀다"고 평가하면서도 "12.12 군사쿠데타로 군사정권을 탄생시킨 점, 그리고 5.18 민주화운동에서의 민간인 학살 개입 등의 과오(過誤)는 어떠한 이유로도 덮어질 수 없다"고 강조했다.




한승곤 기자 hsg@asiae.co.kr
윤슬기 기자 seul97@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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