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대출 2.1조달러>하이일드채 1.4조달러
규제 피해 은행이 PE등 비은행금융기관 대출 늘려
데이터센터 PF 등 가산금리↑ "위기 경고등 켜졌다"
미국의 사모대출 시장은 올해 운용자산규모(AUM)가 2.1조달러에 이르러, 기존의 하이일드 채권 1.4조달러보다 커졌다. 이제 '신용시장(돈 빌려주는 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축이 됐다.
6일 하나증권은 '신용의 카나리아, 첫 경고음은 이미 울렸다' 보고서에서 규제를 피해 늘어난 사모대출로 인해 신용시장의 위기 가능성이 커졌다고 경고했다.
규제 피하기 위한 은행의 간접대출 구조
사모대출 규모의 빠른 증가는 은행들이 위험한 기업대출을 직접 하기 어려워져서 그 일을 외부에 맡기게 된 결과다. 금융위기 이후 규제가 세지고 자본요건이 강화되자 은행들은 직접 위험을 지는 대신 '비예금 금융기관(NDFI)', 예를 들어 사모대출펀드 같은 곳에 자금을 빌려주며 신용을 외주화했다. 이 돈은 다시 기업으로 흘러 들어가서 '은행 →NDFI →기업'이라는 간접 대출 구조가 만들어졌다. 실제 올해 중반 기준, 은행이 이런 비은행 기관에 빌려준 돈은 약 1.2조달러로 은행 전체 대출의 10%를 넘었다. 10년 전보다 3배 이상 커진 수치다.
최근 들어 사모대출은 단순히 기업 운영자금만이 아니라, 인공지능(AI)·에너지·반도체·데이터센터 등 장기 인프라 사업의 주요 자금줄 역할까지 하게 됐다. 리쇼어링, AI 인프라 확충 등 미국 정부의 산업정책이 이런 대출 수요를 키웠다. 장기·대규모 프로젝트는 은행이 규제 때문에 쉽게 돈을 빌려줄 수 없는 영역이다. 반면 사모대출펀드는 결정이 빠르고 구조를 자유롭게 짤 수 있어서 은행의 금융 공백을 메우는 역할을 하고 있다. 브룩필드(Brookfield), 메타(Meta), 오라클(Oracle) 같은 대기업들이 사모대출과 구조화채권(ABS·CLO)을 적극 활용하고 있는 이유다.
급격한 확장 속에 위기가 도사리고 있다
하지만 이런 빠른 확장 속에 위험 신호가 감지되고 있다. 예를 들어 오라클의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프로젝트 자금조달에서 신용부도스와프(CDS) 금리가 급등했다. 하나의 프로젝트에 은행, 사모대출펀드, 대출채권담보부증권(CLO) 자금이 동시에 엮이면서 중복된 레버리지 구조가 생기고, 그것이 불안 요인으로 작용한 것이다. CDS 금리가 한 달 만에 50bp(1bp=0.01%포인트)나 올라 80bp를 넘었다.
사모대출 시장의 과도한 경쟁으로 '대출 계약 조건'이 점점 느슨해지고 있는 것도 문제다. 은행은 원래 차입자가 부실해질 때를 대비해 여러 금융 약정을 걸어둔다. 하지만 최근에는 약정이 완화된 대출(Cov-lite)이 보편화됐다. 올해 약정 완화 대출은 전체의 90%로, 10년 전보다 훨씬 많아졌다. 특히 사모펀드(PEF)들이 높은 수익(IRR)을 내기 위해 약정완화대출을 선호하면서, 결국 은행·광범위신디케이티드론(BSL)·사모대출펀드 전체가 비슷한 위험한 관행을 따르게 됐다.
당장 심각한 신용위기 일어날 가능성은 작지만…
이영주 하나증권 애널리스트는 "내년 미국 신용시장은 지금까지처럼 빠르게 커지기보다는, 속도를 줄이고 균형을 찾는 시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며 "트럼프 행정부의 규제 완화,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 인하, 그리고 양적긴축(QT) 종료 같은 정책적인 '완충장치' 덕분에 당장은 심각한 신용 위기나 급격한 자금 경색이 일어나기는 어렵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그동안 시장 성장을 떠받쳤던 정책 효과가 약해지면 기초 체력이 약한 신용 구조가 다시 문제로 떠오를 수 있다는 지적이다. 약정 완화 대출이나 PEF가 자산을 담보로 추가 대출을 받는 순자산가치 대출(NAV Loan)이 대표적인 예다.
또한 은행이 비예금 금융기관에 돈을 빌려주고 그 돈이 다시 은행의 자산으로 되돌아오는 '신용 순환(Credit Recursion)' 구조는 새로운 형태의 리스크 통로가 되고 있다. 특히 중소·지역은행이 이런 구조의 '마지막 연결고리' 역할을 하기 때문에, 이들 은행에서 충격이 생기면 충격파가 다른 곳으로 퍼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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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애널리스트는 "지금은 정책 덕분에 시장이 버티고 있지만 카나리아의 노래(위험신호)는 이미 시작된 셈"이라며 "내년 신용시장은 '빠른 성장'이 아니라 '건전성 유지'에 초점을 맞춰야 할 때이며, 속도의 유동성에서 벗어나 '신용의 질(credit quality)'을 강조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조시영 기자 ibpr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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