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동시각]책무구조도에 대한 우려와 기대](https://cphoto.asiae.co.kr/listimglink/1/2024042313583549061_1713848315.jpg)
"책무구조도 도입 이후에 신경 쓸 일이 많아지고 금융사고 발생에 대한 부담감도 커졌습니다."
금융권에 책무구조도가 본격적으로 도입된 이후 현장 분위기를 취재하기 위해 만난 금융회사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동안은 사고가 발생한 뒤에 수습하는 데 신경을 썼다면 책무구조도가 도입된 뒤부터는 사고 예방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금융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방지해야 하는 상황에 적응하기는 쉽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제도를 도입한 금융당국은 처벌보다는 예방이 먼저라는 것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책무구조도 도입은 금융사고에 대한 예방 차원이지 임원들에 대한 처벌이 목적이 아니다"며 "임원들이 과거보다 더 경각심을 가지고 일한다면 제도가 잘 작동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다만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예방하기 위해 회사의 인력과 자금을 투입하다 보니 업무의 효율성이 떨어지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도 나온다. 징계에 대한 부담으로 경영에 소극적이 될 가능성도 있다. 과거에는 밑에서 발생한 금융사고로 은행장이나 사장 등 최고경영자(CEO) 레벨에서 처벌받는 일이 드물었는데 앞으로는 고위 임원들이 책임지고 물러나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어서다. 경영자들이 징계를 피하기 위해 회사 운영을 더 소극적으로 하고 회사 실적에도 악영향을 끼칠까 우려된다.
투입되는 자원은 많은데 금융사고 예방은 안 될 수도 있다는 우려도 있다. 실제로 책무구조도와 비슷한 중대재해처벌법이 2022년 시행된 이후 처벌받는 사람은 늘었지만 건설 현장의 사고가 크게 줄어들지는 않고 있다는 통계도 나오는데 책무구조도가 제2의 중대재해처벌법이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이런 현장의 우려에도 책무구조도 도입은 우리 금융회사들이 자초한 측면도 있다. 정부가 끊임없이 내부통제를 요구했지만 금융사고가 매년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2019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 2023년 홍콩H지수(항셍중국기업지수·HSCEI) 주가연계증권(ELS) 사태, 우리은행과 IBK기업은행의 부당대출 사건 등 수백억 수천억원대의 금융사고가 매년 발생했다. 금융사 스스로 자정을 바라기에는 사건이 몰고 온 사회적 파장이 컸다. 작년에 국내 주요 은행의 금융사고 피해액은 1877억원으로 전년 기록한 666억원 대비 2.8배 급증했다.
우리보다 앞서서 책무구조도와 비슷한 제도를 도입한 영국과 호주, 싱가포르 등 해외 선진국들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끊이지 않는 금융사고를 막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이를 도입했다. 제도 도입 이후 어느 정도의 사고 예방 효과는 있었지만, 과도한 규제로 인해 금융산업의 발전을 저해시켰다는 비판도 현지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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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책무구조도의 성패와 발전 방향은 올해와 내년에 우리나라에서 금융사고가 얼마나 줄어드냐에 달렸다. 향후 금융사고가 감소한다면 현장의 부담은 있겠지만 책무구조도는 더 잘 지켜야 하는 제도가 될 것이고, 사고 예방 효과가 별로 없다면 보완하자는 목소리가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창환 기자 goldfis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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