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비비]정부의 창작 자유 억압, 문화정책의 큰 실수](https://cphoto.asiae.co.kr/listimglink/1/2023082316050849598_1692774322.jpg)
문화체육관광부가 추진하는 국립 공연예술단체 통합 이사회 및 사무처 신설이 예술계에서 강한 반발을 일으키고 있다. 문체부는 올해 상반기 내에 국립오페라단, 국립합창단,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국립발레단, 국립현대무용단 등 5개 국립예술단체의 이사회를 통합하고 예산과 회계, 계약, 홍보 등 행정 업무를 총괄하는 사무처를 신설해 운영 효율성을 높이겠다고 발표했다. 이를 통해 국립예술단체 간 협업을 촉진하고 민간 교류와 해외 진출을 강화하려는 구상이다.
하지만 이러한 조치는 각 예술단체의 자율성을 침해할 우려가 크다. 예술계의 반발이 거센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예술은 창작자의 자유로운 표현과 독립성 위에서 발전하는 분야다. 통합 사무처라는 명목하에 여러 예술단체를 하나의 관리 시스템으로 묶게 되면 창작 환경의 획일화는 불가피할 것이다. 이로 인해 예술적 독립성이 침해되고, 실험적 시도나 개성이 존중받기 어려운 환경이 조성될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중대한 개편이 충분한 공론화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정부가 예술계를 직접 관장하는 방식에는 사전 협의와 논의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이번 조치는 해당 단체들과의 충분한 소통 없이 일방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이에 따라 무용계를 중심으로 반대 서명 운동이 확산되고 있으며 예술인들은 통합 추진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를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국회에서도 우려와 비판의 목소리가 제기됐다. 더불어민주당 민형배 의원은 "문체부가 문화예술계의 독립성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며 "공공기관의 사유화와 정치적 입맛에 맞는 ‘내 사람 심기’ 행태는 즉시 중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효율성과 관리의 용이성을 이유로 들지만 행정 편의가 예술의 본질보다 우선할 수는 없다. 통합을 통해 비용 절감 효과를 기대할 수 있겠지만 그 대가로 창작의 자유가 억압되고 예술적 실험이 줄어든다면 이는 오히려 예술 발전을 저해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각 예술단체는 고유한 정체성과 운영 방식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일괄적인 행정 시스템에 맞추려는 시도는 예술계 전반에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또한 이번 개편은 국제적인 시각에서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예술단체들은 정부의 지원을 받으면서도 독립성을 유지하는 구조를 지향한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이번 개편이 강행된다면 국립 예술단체들이 지나치게 중앙집권적인 운영 방식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크다. 이는 결국 한국 공연예술의 국제적인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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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정책은 단순한 행정 논리나 예산 절감의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공연 예술은 단순한 산업을 넘어서 사회의 문화적 수준을 반영하고 국민의 정서를 풍요롭게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정부는 예술 단체들의 목소리를 외면한 채 일방적인 개편을 추진하기보다는 충분한 논의를 통해 예술 발전을 위한 진정한 해법을 찾아야 한다. 창작의 자유는 행정 편의를 위해 희생될 수 없는 가치이다. 정부는 이를 깊이 숙고해야 한다.
이광호 기자 kwa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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