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주류 관세포탈액 전년比 136.7%↑
해외직구 간이통관제도 악용 사례 늘어
구입가 낮추거나 원산지 위조 등 방식도
#1. 수입업자 A씨는 지난 5월 세관에 신고 없이 와인을 밀수하다가 관세 당국에 덜미를 잡혔다. 그는 2013년 3월부터 2021년 11월까지 와인 150병(총 2억8000만원 상당)을 국제우편이나 여행자 휴대품으로 반입하면서 음료수 등 다른 물품으로 가장해 밀수입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A씨는 희소가치가 있는 와인을 비밀창고에 보관하면서, 월 100만원 상당의 유료 회원으로 모집한 의사·변호사 등 고소득층을 대상으로 유료 시음회를 개최하거나 자신이 운영하는 와인바에서 판매한 것으로 드러났다.
#2. 수입업자 B씨와 C씨도 해외직구 제도를 악용해 관세 등을 포탈하다가 검찰에 넘겨졌다. 이들은 1병당 최고 800만원인 와인 가격을 20분의 1 수준인 40만원으로 낮춰 신고해 관세와 주세 등을 포탈한 혐의다. 2019년 6월부터 지난해 5월까지 해외직구로 B씨는 판매용 와인 7958병, C씨는 1850병을 각각 자가사용 물품인 것처럼 가장·수입한 것으로 조사됐다. 관세 당국은 이들이 이 같은 방식으로 포탈한 관세·주세 등 세금이 A씨가 약 13억원, B씨는 약 1억4000만원에 달할 것으로 봤다.
국내 주류 수입업자의 관세 포탈 적발금액이 최근 5년 새 30배가량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26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임광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관세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주류 관세 포탈 금액은 10월 기준 63억4000만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26억7800만원과 비교해 136.7%(36억6300만원) 늘어난 수치다.
2020년 2억7800만원 수준이던 주류 관세 포탈 금액은 이듬해 4억6000만원으로 늘었고, 2022년 1억9200만원으로 감소했지만 지난해 다시 증가세를 보이더니 올해는 전년 대비 두 배 이상 늘어났다. 적발 건수는 올해 5건으로 지난해(7건)와 비교해 건당 탈세 규모가 늘어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같이 주류 관세 포탈 규모가 급증한 것은 '해외직구 간이통관제도'의 이점을 악용해 수입 요건을 회피하는 방식으로 불법 수입 시도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해외직구 간이통관제도는 미화 150달러 이하 자가 사용 물품에 대해선 수입신고를 생략하고, 관세와 부가세를 면제해 주는 절차다.
관세청에 적발된 B씨와 C씨 역시 이 제도를 악용해 수억원의 세금을 포탈할 수 있었다. 관세청은 이들처럼 해외직구 간이통관제도를 악용하는 사례가 증가세에 있다고 판단, 지난해부터 관련 단속을 대폭 강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역시 지난달 블랙프라이데이와 광군제를 맞아 해외직구 간이통관제도 악용 밀수행위 집중단속에 나섰다.
주류 관세 포탈은 A씨 사례처럼 주류 제품을 일반 음료수 등으로 가장해 수입하거나 제품의 금액을 낮춘 허위 영수증을 세관에 제출하거나, 무관세 혜택이 있는 자유무역협정(FTA) 국가에서 수입한 것처럼 원산지 증명서를 위조하는 등의 방법으로도 이뤄진다. 최근에는 자신의 명의로 반복적으로 수입하는 경우 세관에 적발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이를 회피하기 위해 가족이나 친구 등 지인들의 명의로 분산 반입하는 치밀함까지 더해지는 등 수법 또한 고도화된 모습이다.
이번 조사에선 주종별 관세 포탈 적발 현황은 별도로 관리되지 않아 어느 주종에서 관세 포탈이 이뤄지는지 명확히 확인되지는 않았다. 다만 와인 등 과실주를 대상으로 포탈을 일삼다 관세청에 올해 5월 적발된 A씨 사례 등 2건뿐이다. 나머지는 관세율과 주세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위스키와 같은 고도수의 주종과 자유무역협정(FTA)이 체결되지 않은 국가의 주류가 주된 포탈 대상일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현재 관세법에 따르면 와인 등 과실주의 관세율은 15% 수준인 반면 위스키·보드카 등은 20%, 소주·고량주 등은 30%로 더 높은 까닭이다.
특히 증류주의 경우 주세율이 72%로 와인 등 발효주(30%)보다 높기 때문에 관세를 회피하거나 줄인다면 제품가격에 관세를 더한 금액을 기준으로 산정하는 주세 등의 부담도 추가로 줄일 수 있어 불법적인 차익을 키울 수 있다. 관세가 면제되는 FTA 체결국으로 원산지를 변경하는 방법도 8~30%의 관세율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사용되는 수법이다. 일례로 영국산 위스키는 브렉시트 직전 체결한 한·영 FTA로 관세율이 과거 30%에서 현재 0%로 줄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홈술·혼술 열풍이 불었던 2022년을 정점으로 다소 주춤하고 있는 국내 주류시장의 여건과 원·달러 환율이 꾸준히 상승하며 원화 가치가 떨어지고 있다는 점 등도 향후 추가적인 탈세 유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몸집이 가장 커진 와인의 경우 2022년 수입량이 5억8128만달러(약 8230억원)에서 지난해 5억602만달러로 줄었고, 올해는 10월 기준 3억8582만달러(약 5450억원)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4억2681만달러)과 비교해 9.6% 줄어든 수치다.
위스키의 사정도 비슷하다. 2022년 2억6684만달러(약 3800억원)였던 수입 신고 금액은 올해 2억188만달러(약 2900억원)로 감소했는데, 이는 역시 전년 동기(2억2110만달러) 대비 8.7% 줄어든 금액이다.
조성필 기자 gatozz@asiae.co.kr
구은모 기자 gooeunm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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