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ar_progress

글자크기 설정

닫기

돌봄로봇의 두 얼굴, 편리함 뒤에 숨은 외로움[시니어비즈 인사이트]

시계아이콘02분 19초 소요
뉴스듣기 글자크기

김정근 강남대 실버산업학과 교수

돌봄로봇의 두 얼굴, 편리함 뒤에 숨은 외로움[시니어비즈 인사이트]
AD

지난 10월 28일 국립재활원의 '돌봄로봇 네트워크 포럼'에 다녀왔다. 보건복지부와 국립재활원이 주도해서 수요자 중심의 돌봄로봇과 서비스 실증 연구개발사업 성과를 나누고, 지금까지 개발된 돌봄로봇을 직접 보여주는 자리였다. 과학기술이 발전하고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생긴 '돌봄기술'은 이제 전 세계가 주목하는 분야다. 특히 돌봄기술이 미래 산업성장의 새로운 기회로 떠오르면서, 돌봄로봇 같은 기술 기반의 노인 관련 사업에 대한 관심도 부쩍 커지고 있다.


'파로(Paro)'나 '효돌' 같은 돌봄로봇은 이미 연구실을 벗어나 실제 가정, 요양원, 요양병원 등에서 쓰이고 있다. AI(인공지능) 스피커는 혼자 사는 노인들의 말동무가 되어주고, 사람이나 동물 모양의 돌봄로봇은 약 먹을 시간을 알려주거나 치매 예방용 운동과 퀴즈를 안내해준다. 앞으로 이런 돌봄기술들은 노인들의 삶은 물론이고 국가와 세계 경제에도 좋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돌봄기술이 모든 사람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고 돌봄경제로 이어지려면, 몇 가지 문제점들을 먼저 해결해야 한다. 돌봄 관련 종사자, 돌봄이 필요한 사람들, 그리고 일반 시민들이 이 기술을 신뢰할 수 있게 만드는 게 우선이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것은 윤리적인 문제다. 새로운 기술이 들어오면 전에 없던 상황이 생기면서 우리가 가진 가치관에 혼란이 올 수 있다. 새로운 기술이 기존 가치관과 부딪히게 되고, 이런 충돌이 해결되지 않으면 기술은 사회에 퍼지기 어렵다. 1950년에 이미 아시모프는 '로봇공학의 3법칙'을 내놓으면서 로봇이 미칠 수 있는 영향을 미리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중 첫 번째 법칙인 "로봇은 인간에게 해를 주면 안 된다"는 돌봄로봇이 돌봄경제로 발전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점이 무엇인지 알려준다. 최근 돌봄로봇으로 인한 부작용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소식이 들리고 있다. 이런 부작용들은 주로 노인들에게 해가 될 수 있는 것들이라 돌봄기술이 더 발전하려면 먼저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특히 자주 거론되는 부작용은 노인들이 사회적으로 더 고립될 수 있다는 점이다. 제임스 라이트의 책 '로봇은 일본을 구하지 못할 것이다'를 보면, 2016년 이후 일본의 요양원에서 18개월 동안 관찰한 결과 돌봄로봇을 쓰면서 요양보호사가 노인들을 직접 돌보거나 대화하는 시간이 줄었다고 한다. 로봇을 다루고 옮기는 데 시간이 더 필요해지면서 노인들과 얼굴을 마주하는 시간이 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또 다른 연구를 보면, 화상통화로 혼자 사는 노인 부모와 만나는 횟수는 늘었지만 실제로 찾아뵙는 횟수는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화상통화 때문에 직접 방문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줄어들고, 방문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죄책감도 덜해져서 실제 방문이 줄어든 것이다.


이런 사례들을 보면 돌봄기술이 오히려 사람 사이의 교류를 줄여서 노인들이 더 외로워질 수 있다는 윤리적인 문제가 있다. 기술력도 좋고 로봇에 대한 거부감도 적은 일본에서조차 돌봄로봇은 아직 돌봄경제로 발전하지 못했다. 일본 개호노동안정센터가 조사한 '2022년 사업소의 개호노동실태' 보고서를 보면, 환자의 이동을 돕는 이승지원로봇을 도입한 곳은 전체 8632개 사업소 중 2.4%에 불과했다. 돌봄 인력이 부족하고 돌봄 부담이 늘어나는 문제를 해결하려고 만든 돌봄로봇인데 왜 현장에서 잘 안 쓰일까? 가장 큰 이유는 비용이 많이 든다는 것이지만, 그것 말고도 로봇 때문에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접촉이 줄어들어서 돌봄 종사자나 노인들 모두 계속 쓰는 것을 꺼린다는 점이다. 돌봄이란 단순히 필요한 일만 해주는 게 아니라 서로 대화하고, 웃고 떠들며 몸으로 소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들을 인식하고 해결하려는 노력 없이는 돌봄기술이 돌봄경제로 발전해서 노인 관련 사업으로 성장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를 위해서는 돌봄기술을 만들고 활용할 때 '현장에서 실제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현장의 목소리는 어떤지' 잘 듣는 게 중요하다. 돌봄 현장에서 실제로 기술을 쓰는 사람들의 의견을 연구 개발 단계부터 적극적으로 반영해야 '실제로 쓸 만한 돌봄기술', '돌봄경제로 이어질 수 있는 기술'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최근에는 리빙랩(Living Lab)을 통해 돌봄기술 수요자들의 의견을 반영하려는 시도가 많아지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 제품이 나온 뒤에 평가하는 데 그치고 있다. 개발 초기나 디자인 단계부터 현장의 목소리를 듣는 게 필요하다. 또 리빙랩이 폐쇄된 실험실에만 머물지 말고 실제 노인들이 생활하는 공간으로 나가야 한다. 조용하고 잘 꾸며진 모델하우스 같은 곳에서 실험하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 노인들의 집은 좁고 주변이 시끄러울 수 있다. 현장에서 제대로 쓸 수 있는 돌봄기술을 만들려면 기술을 쓸 당사자들의 필요와 환경을 잘 반영해야 한다. 또한 돌봄에 기술을 도입하는 건 단순히 사람의 일을 기계가 대신하는 게 아니라 돌봄의 질을 높이는 것이라는 폭넓은 이해가 필요하다. 돌봄기술이 돌봄경제로 발전하려면 '바른길', '정도(正道)'가 가장 빠른 길이다.



김정근 강남대 실버산업학과 교수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AD
AD

당신이 궁금할 이슈 콘텐츠

AD

맞춤콘텐츠

AD

실시간 핫이슈

AD

다양한 채널에서 아시아경제를 만나보세요!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