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이 기업가치 제고(Value-up) 계획에 적극적으로 부응하고 나선 가운데, 기업 대출을 중심으로 대출 문턱이 높아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각 사가 밸류업의 핵심 지표인 보통주자본비율(CET1) 유지를 위해 위험가중자산(RWA) 증가율 관리에 나서고 있는 까닭이다.
5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내 4대 금융지주회사(KB·신한·하나·우리)는 앞서 기업가치 제고 계획 발표를 통해 중·장기적으로 그룹의 CET1을 13% 이상으로 유지키로 했다고 밝혔다. 지난 3분기 말 기준 4대 금융의 CET1은 KB금융 13.85%, 신한금융 13.12%, 하나금융 13.17%, 우리금융 12.00% 수준이다.
CET1이 핵심 지표로 부상한 것은 주주환원의 지표로 활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CET1은 보통주자본을 RWA로 나눈 것으로, 금융회사의 손실흡수능력 등 건전성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지표다. 통상 CET1이 13%를 상회하면 주주환원 여력이 충분한 것으로 평가된다. 일례로 KB금융은 최근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통해 연말 CET1이 13%를 넘을 경우, 나머지 잉여 자본을 주주들에게 환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 때문에 최근 각 금융지주가 집중적으로 관리하는 지표가 RWA다. CET1을 유지·확대하기 위해선 '분모'에 해당하는 RWA를 적정한 수준에서 관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RWA는 금융회사가 보유한 자산에 대해 위험도별로 가중치를 부과해 산정한 지표다. 통상 가계대출 대부분을 차지하는 주택담보대출의 경우 '주택'이란 담보물이 있는 만큼 상대적으로 낮은 가중치를 적용받지만, 기업 대출은 상대적으로 위험도가 높은 가중치를 적용하고 있다.
각 금융회사 역시 RWA를 적정수준으로 낮추겠다고 밝힌 바 있다. KB금융은 최근 기업가치 제고 계획 발표를 통해 연간 RWA 증가율을 지난 10년 평균(6.1%) 이하로 관리하겠다고 했고, 신한금융과 우리금융도 각기 5%, 4%란 목표치를 제시했다. 하나금융 역시 RWA 증가율을 명목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수준으로 관리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3분기 4대 금융의 RWA 증가율이 5~8% 수준에 달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큰 폭의 축소다.
이렇듯 각 금융지주가 RWA를 중요한 관리 대상으로 삼기 시작하면서 일각선 기업 대출을 중심으로 당분간 대출의 문(門)이 좁아지는 것 아니냔 우려도 제기된다. RWA 관리를 위해선 결국 차주를 가려 받거나 위험가중치가 높은 자산의 성장을 제어하는 것이 필요한 까닭이다. 벌써 기업 대출의 문을 걸어 닫는 사례도 등장하고 있다. 지난해 '기업금융 명가(名家) 복원'을 기치로 내걸었던 우리은행은 영업점에 위양된 기업 대출 전결권을 연말까지 회수키로 했다.
목표로 했던 자산 성장계획을 달성한 만큼, 위험가중치가 높은 기업 대출 증가세를 통제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우리금융 관계자는 "올해 들어 지난 3분기까지 (기업 대출) 목표를 초과달 성한 상황"이라며 "영업을 아예 중단하는 것은 아니나, 남은 2개월간 건전성 관리에 집중하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유제훈 기자 kalamal@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