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저커버그=디지털 영주
페이스북 가입자=농노 비유
빅테크자본은 클라우드 자본
기존 자본주의 근간 흔들고
노동 소외, 시장질서 무너뜨려
디지털 시대를 이끄는 빅테크(대형 정보기술기업)들의 영업이익률은 인상적이다. 애플, 구글, 페이스북 등의 영업이익률은 30%를 넘는 경우가 많고 50%를 웃돌기도 한다. 과거 산업시대를 이끈 주역 기업들에서는 상상할 수 없던 숫자다. 제너럴모터스(GM) 같은 기업들이 미국 경제를 이끌던 시절, GM은 10%에 가까운 영업이익률만 기록해도 주가가 급등했다.
빅테크들이 과거 산업시대 기업들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이익률을 올릴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유급 노동의 비율이 낮다는 점이다. GM의 자동차는 GM 노동자들이 만들었지만 오늘날 페이스북은 가입자들이 자발적으로 무료로 생성하는 콘텐츠를 바탕으로 막대한 이익을 올린다. 즉 페이스북은 노동에 대한 비용 부담이 크지 않기에 막대한 이익을 내고 있는 셈이다.
이는 중세 봉건 시대 영주들이 비용 부담 없이 농노의 노동력을 바탕으로 장원 경제를 영위했던 것과 비슷하다. 봉건 시대 영주들은 영지, 즉 땅을 바탕으로 막대한 지대를 취할 수 있었고, 빅테크들도 플랫폼이라는 디지털 시대의 영지를 통해 지대를 추구하고 있다.
그리스의 진보 경제학자 야니스 바루파키스가 빅테크들이 만들어낸 새로운 경제 질서를 조명한 책의 제목을 ‘테크노퓨달리즘’으로 정한 이유다. 테크노퓨달리즘은 ‘기술(Techno)’과 ‘봉건주의(Feudalism)’를 조합한 단어다.
바루파키스는 빅테크들이 새롭게 형성하는 자본을 클라우드 자본이라 칭한다. 그리고 클라우드 자본은 20세기를 지배한 산업 자본주의에서의 자본과 개념이 다른 돌연변이 자본으로 숙주인 기존의 자본주의를 파괴했다고 주장한다. 산업 자본주의 시대 기업들은 상품을 생산해 이윤을 추구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하지만 빅테크들이 이익을 내는 방식은 상품을 생산하기보다 지대 추구 행위에 가깝다.
바루파키스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페이스북의 막대한 수익에 기여하는 현대인들을 봉건시대 농노에 비유한다. 봉건시대 농노들이 영주를 위해 노동했던 것처럼 페이스북 가입자들이 디지털 영주인 마크 저커버그 메타(페이스북 모기업) 최고경영자(CEO)의 자산 증식에 기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바루파키스는 페이스북, 애플 스토어, 아마존닷컴 등 빅테크들이 만든 플랫폼을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장원이라고 설명한다. 이 디지털 장원은 완전히 사유화된 디지털 거래 공간이다. 과거 산업 자본주의가 태동하기 오래 전 발생한 인클로저 운동과 닮았다. 인클로저 운동은 지대를 추구하기 위해 공유지를 사유화하는 과정이었다.
사유화된 클라우드 영지에서는 판매자도, 구매자도 통상적인 시장이라면 누렸을 그 어떤 권리도 누릴 수 없다. 애플이 애플스토어에서 애플리케이션(앱) 개발자들에게 막대한 수수료를 물려도 앱 개발자들은 저항할 수 없다. 애플스토어를 포기할 수 없기에 막대한 수수료 부담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 봉건시대 영지를 떠날 수 없었던 농노 신세와 비슷하다. 정치권이 앱 개발자들의 편에 서지 않는다면 애플은 자신이 창조한 디지털 영지에서 막대한 지대 추구 행위를 할 수 있는 셈이다.
빅테크의 디지털 영지는 기존의 시장 질서도 흔들고 있다. 아마존닷컴은 기존의 산업시대 자본가들이 기존의 시장이 아닌 아마존닷컴에 접속해 상품을 팔게 만들었다.
바루파키스는 이를 비옥한 토지, 즉 아마존닷컴이라는 디지털 영지 위에서 빅테크를 추종하는 가신 자본가 계급이 성장했다고 표현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클라우드 영주들은 기존의 산업시대 자본가들을 종속시켜 이들을 사회의 피라미드 가장 높은 곳에서 밀어낼 혁명 계급으로 탄생했다고 바루파키스는 설명한다. 그는 테크노퓨달리즘의 본질은 이윤에 맞서 지대가 승리를 거둔 것이라고 강조한다.
산업 자본주의 시대 이윤에 맞선 상대는 노동이었다. 하지만 빅테크 시대가 도래하고 봉건시대의 지대가 다시 부상해 이윤에 승리를 거두면서 노동의 소외가 심화됐다. 노동의 소외는 불평등의 심화를 야기한다. 바루파키스는 애초 딸에게 세상이 왜 불평등한가를 설명하기 위해 ‘딸에게 들려주는 경제 이야기’를 썼다. 책을 집필하던 중 빅테크가 기존의 자본주의 질서를 바꾸고 있음을 인식하고 이 책 ‘테크노퓨달리즘’을 저술하기에 이르렀다. 궁극적으로 바루파키스는 이 책이 아버지가 자신에게 한 질문에 대한 대답이라고 설명한다. 아버지가 바루파키스에게 한 질문은 "컴퓨터 네트워크가 자본주의 세상을 더 공고히 만들까, 아니면 결국 자본주의가 만든 약점, 아킬레스건을 드러내줄까"였다.
바루파키스는 아버지를 제철소에서 일하며 공산주의 운동에 많은 것을 바친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자신에게 자본주의를 가르쳤으며 노동이 자본주의 시장 체제의 심장을 뒤흔들 그날이 오기를 꿈꿨던 사람이다. 하지만 아버지의 바람과 달리 노동이 아니라 자본 자체가 자본주의의 근간을 뒤흔드는 세상이 도래했다고 바루파키스는 설명한다. 자본주의의 근간을 뒤흔든 자본은 물론 클라우드 자본을 일컫는다.
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바루파키스는 좌파적 시각에서 책을 저술했다. 그는 2015년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컸던 조국 그리스의 재무장관을 잠시 맡기도 했다. 당시 상황에 대해 바루파키스는 역사의 농간에 의한 사고였다고 표현한다.
바루파키스는 빅테크들이 만든 새로운 질서를 설명하기 위해 자본주의의 역사를 통사적으로 훑어본다. 1976년 닉슨 쇼크를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괴물 미노타우로스에 빗대 설명하는 등 독특하고 흥미로운 새로운 시각을 여럿 제시한다.
테크노퓨달리즘 | 야니스 바루파키스 지음 | 노정태 옮김 | 21세기북스 | 396쪽 | 2만4000원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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