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도 정부의 예산안이 나왔다. 최종적으로 국회에서 어떻게 확정될지는 두고 볼 문제지만 총지출 규모를 작년에 비해 3.2%, 20조8000억원 늘어난 677조4000억원으로 잡았다. 총지출 증가율이 3.2%밖에 되지 않는다는 점을 들어 일부 언론에서는 찔끔 예산이라고도 했고 고강도 긴축예산이라고도 평했다.
'총지출 증가율 3.2%'를 낮다고 보는 것은 편견이다. 2010년이나 2016년 총지출 증가율은 2.9%로 더 낮았다. 총지출 증가 규모 20조8000억원은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27조3000억원 늘어난 것을 제외하면 2000년 이후 2017년까지 18년 중 가장 큰 금액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서 총지출 예산이 2017년 400조에서 2022년 607조로 매년 평균 40조원씩 늘어난 것에 비하면 작지만 이를 포함한 지난 20년 총지출 증가액 평균치 약 24조원에 근접하는 규모라서 고강도 긴축지출이라고 폄하하는 것은 무리다.
매년 9% 늘어난 문재인 정부 총지출 증가 속도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연평균 6% 가까웠던 이명박 정부나 4%였던 박근혜 정부 총지출 증가 속도도 이젠 감내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국가채무가 400조원에 불과했던 이명박 정부나 630조원이었던 박근혜 정부라면 몰라도 1100조원이 넘어가면서 1년에 국가공무원 연봉보다 더 많은 30조원을 이자로 부담해야 하는 상황에서 지출을 통제하여 재정건전성을 유지하는 것은 국가의 마땅한 책무이고 정부의 당연한 책임이다. 그런 점에서 건전성 회복을 가장 중요한 재정원칙으로 삼은 것은 지극히 옳다.
문제는 민생이 어렵고 정부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더 중요해졌다는 점이다. 정부도 이 점을 엄중하게 직시하고 있다. 다만 과거 정부의 민생지원 방식이 비용에 비해 성과가 있었는지 평가하고 이에 대한 철저한 반성을 기반으로 지출예산을 편성한다는 점이 다르다.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총지출은 추경을 포함하여 2700조원 수준이었고 이 중 상당 부분은 전 국민적 민생지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민생의 어려움은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았다.
이 사실은 정부의 민생대책이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기보다는 꼭 필요한 계층, 즉 취약계층을 타깃화해서 맞춤형으로 지원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는 것을 입증했다. 2025년도 보건복지고용 분야 지출예산이 지난해보다 4.8%, 금액으로 11조4000억원이 늘어나 역대 최대 규모인 249조원으로 책정된 것은 약자를 위한 복지확충에 선택과 집중하겠다는 정부 철학이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4인 기준 생계급여를 연간 141만원 인상하는 데 8조5000억원을, 노인 일자리를 110만개 창출하는 데 2조2000억원을 각각 투입한다. 국가장학금 지원 대상은 100만명에서 150만명으로 확대한다. 사병 급여도 병장 기준 125만원에서 150만원으로 오르고, 장병내일준비적금 매칭지원금 포함 시 205만원까지 늘어난다. 최중증 발달장애인 긴급돌봄제도를 신설하는 데 5억원이 새로 투입된다.
물론 이런 정책들로 민생문제가 완전히 해소될 수는 없다. 새로운 민생 재정수요를 해결하기 위해서 더 많은 재원이 필요한데 법인세나 상속세 등 국세수입은 오히려 감소하고 있고 소득세 증가세는 주춤하고 있다. 따라서 이번 예산안 편성과 같이 재정운용혁신을 통해 재정사업 전반의 효율성을 제고하는 것이 정부의 최대 과제라 할 것이다. 국회 예산심사 과정에서도 재정운용의 묘를 살려 민생문제를 해결하는 민생책임 예산을 편성하길 기대한다.
신세돈 숙명여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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