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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여름방학을 줘서 고맙다" 고시엔 우승 이끈 교토국제고 감독 리더십 [일본人사이드]

시계아이콘읽는 시간02분 55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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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국제고 야구부 감독 고마키 노리쓰구
주말 자원봉사로 시작해 20년째 팀 이끌어
감독 대신 '고마키씨'…수평적 리더십 주목

전날 일본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 이른바 여름 고시엔에서 한국계 학교 교토국제고가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가슴 벅찬 소식이었는데요. 교토국제고가 2021년, 2022년 연속으로 고시엔에 참전은 했는데 지난해에는 지방 예선에서 탈락해 본선으로 올라오지 못했었거든요. 그런데 올해 올라와 바로 우승해버리다니 정말 감동적인 이야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승하면 감독과 주장 인터뷰가 빠질 수 없죠. 일본 언론에는 소감으로 "아저씨에게 멋진 여름방학을 만들어줘서 고맙다"라고 말한 감독 인터뷰가 화제가 됐는데요. 오늘은 20년째 야구부를 이끌고, 끝내 우승을 만들어낸 고마키 노리쓰구 교토국제고 야구부 감독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멋진 여름방학을 줘서 고맙다" 고시엔 우승 이끈 교토국제고 감독 리더십 [일본人사이드] 교토국제고 야구부 고마키 노리쓰구 감독(오른쪽 끝)과 선수들이 결승전이 열리는 23일 오전 일본 효고현 니시노미야 한신 고시엔구장으로 들어가고 있다. (사진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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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오전 10시, 일본 효고현 니시노미야 한신 고시엔 구장에서 교토국제고와 관동제일고의 결승전이 열렸죠. 교토국제고는 연장 타이브레이크 끝에 2대 1로 관동제일고를 꺾고 우승합니다. 고마키 감독은 대회 전에 선수들에게 "나는 하루라도 더 야구를 하고 싶다"고 전했다고 하는데요. 이후 우승 인터뷰에서 "이런 아저씨에게 멋진 여름휴가를 선사했다. 아이들에게 정말로 고맙다"고 밝혀 화제가 됐습니다.


고마키 감독은 스스로 '아저씨'라고 칭했는데요. 심지어 관서 지방 사투리로 아저씨를 뜻하는 표준어 '오지상(おじさん)'이 아니라 '옷상(おっさん)'이라고 칭해 정겨움을 더했죠. 사실 고마키 감독은 이처럼 격의 없는 리더십으로 유명합니다. 이는 교토제일고와 맺은 희한한 인연 덕분인데요.


"멋진 여름방학을 줘서 고맙다" 고시엔 우승 이끈 교토국제고 감독 리더십 [일본人사이드] 고마키 감독이 고시엔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사진출처=바챠루고교야구공식채널 유튜브)

원래 고마키 감독은 교토 세이쇼 고등학교 야구부에 입학해 내야수로 활동했다고 합니다. 일본 여느 야구부원처럼 고시엔 입성을 목표로 뛰었는데 막상 본선 진출에는 실패했죠. 이후 프로 야구 선수에 뜻을 두었지만 잦은 부상으로 결국 무리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대신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고교 야구와 관련한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해 대학 시절 교원 자격증을 따놨다고 합니다.


대학 졸업 후에는 바로 선생님이 된 것은 아니고, 은행에 취업해 평범한 회사원 생활을 보내는데요. 야구부를 했을 당시 교토국제고 전신인 교토조선중학교를 나왔던 친구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 친구가 '교토국제고에서 휴일에 야구 좀 가르쳐보지 않겠느냐'라고 권유해 주말마다 자원봉사로 아이들 야구를 봐주기 시작했다는데요. 감독님 코치님 하기도 애매하니 그냥 자기를 '고마키씨'로 불러달라고 했다고 합니다.


"멋진 여름방학을 줘서 고맙다" 고시엔 우승 이끈 교토국제고 감독 리더십 [일본人사이드] 우승을 거둔 교토국제고 선수들이 관중석을 향해 인사하고 있다.(사진출처=연합뉴스)

이후 은행을 퇴사하고 가지고 있던 교원 자격증을 살려 교토국제고 사회과 교사로 부임합니다. 그리고 2008년 교토국제고 야구부에 정식 감독으로 부임하죠. 정식으로 감독이 되고 나니 이제 고마키씨가 아니라 감독님이라고 불러야 하는데, 아이들이 아직 입에 붙지 않아 '고마키씨'로 부르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이를 본 코치가 부원들을 혼냈는데, 오히려 "부르는 건 뭐든 상관없다"며 호탕하게 웃어넘겼다고 하네요.


고마키 감독은 "최소한의 예의만 갖춰졌으면 나머지는 야구에 집중하게 해주고 싶다"며 "선수가 이겨야 하는 것은 감독이 아니라 대전 상대다. 그래서 필요 이상의 상하관계는 좋아하지 않는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래서 20년 전부터 지금까지 쭉 고마키씨라고 불린다고 하네요. 운동부는 으레 철저한 상하관계, 상명하복이라는 이미지가 있는데 고마키씨는 수평적인 리더십을 고수하고 있다고 합니다.


고마키 감독은 학교 부지 안에 있는 야구부 기숙사에 가족들과 살고 있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부터 5살짜리까지 4남매의 아버지라고 하네요. 기숙사에 살면서 선수들의 아버지이자 형이자 가장이자 여러 역할을 해내고 있다고 합니다.


"멋진 여름방학을 줘서 고맙다" 고시엔 우승 이끈 교토국제고 감독 리더십 [일본人사이드] 승리를 거둔 교토국제고 선수들이 마운드로 몰려나와 환호하고 있다. (사진출처=연합뉴스)

교토국제고는 2021년 처음으로 교토 지방대회 예선을 뚫고 본선에 진출했습니다. 전국 49곳에서 치러지는 지방예선에서 다른 학교들을 다 꺾고 올라가야 비로소 지역 대표로 고시엔 구장에 입성할 수 있는데요. 교토국제고의 교가는 한국어기 때문에 2021년 고시엔에는 교토국제고가 입장할 때 한국어 교가가 울려 퍼졌습니다. 이후 2022년에도 고시엔에 진출하면서 강팀으로 올라서게 되는데요. 지난해 일본 언론은 지방 예선 대회 때부터 교토국제고가 3연속으로 고시엔에 올라올 수 있을지 관심을 가졌었는데, 아깝게 패배해 올라오지는 못했었습니다. 그러다 올해 입성하게 된 것인데요.


올해 같은 경우 지방 예선에서 1회전을 져서 전략을 변경했다고 합니다. 하나를 던지더라도 똑바로 던져야 한다인데요. 고마키 감독은 "우리는 애초에 장타를 칠 수 있는 팀이 아니다"라며 한 구를 던지더라도 제대로 던져야 한다며 캐치볼부터 다시 시켰다고 합니다. 그 덕분인지 교토국제고의 경기를 분석하는 일본 언론들은 "휘는 슬라이더가 특기인 나가사키 루이와 낙차 큰 체인지업을 던지는 니시무라 잇키가 에이스로 꼽힌다"고 했는데요.


결승을 앞두고 고마키 감독은 "원래 힘없던 선수들이었지만 고시엔에서 관중들 앞에서 경기할 때마다 성장하는 것을 느낀다"며 "1년 전의 나약한 모습은 이제 없다. 씩씩하게 상대와 부딪혔으면 좋겠다"고 말했는데요. 이후 20년간 야구부와 함께하며 만들어낸 첫 우승이 어떤 감동을 가져다줬을지는 제가 감히 상상하기조차 어렵네요.


"멋진 여름방학을 줘서 고맙다" 고시엔 우승 이끈 교토국제고 감독 리더십 [일본人사이드] 23일 일본 효고현 니시노미야 한신고시엔구장에서 교토국제고 재학생들이 관중석에서 '동해바다 건너서'로 시작하는 교가를 부르고 있다.(사진출처=연합뉴스)

사실 이번 우승은 재일 동포 사회에도 큰 힘을 줬을 것 같습니다. 교토국제고는 전교생이 160명 정도밖에 안 되는 작은 학교인데, 재일 동포들이 민족교육을 위해 직접 출자해 세운 교토조선중학교가 시초입니다. 한국 정부와 일본 정부 인가를 거쳐 정식 학교인 교토국제고가 된 것인데요. 지금은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거나 아니면 정말 야구 하나 바라보고 입학하는 일본인 학생들도 많다고 합니다. 이번 결승 경기에도 모두 하나 되어 한국어 교가를 부르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는데요.


우리나라에서는 일본 우익들의 혐한, 가사 번역 논란 등도 많이 보도됐지만 일본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교토국제고의 실력과 경기에 대한 이야기, 감독에 대한 호평, 선수 칭찬 등도 많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저도 혹시나 해서 야후 재팬 기사 댓글을 열어봤는데, 실점에도 흔들리지 않는 선수들의 자세 등을 칭찬한 댓글들이 전부 추천을 받아 상위권에 속해있더군요. 이런 것을 보면 국경을 넘는 스포츠의 힘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됩니다.


고마키 감독은 "꿈을 좇아가는 선수를 가장 가까이서 서포트할 수 있는 것이 감독의 가장 큰 매력"이라며 "나는 열심히 하는 아이가 좋다. 고시엔 감독 벤치는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선수의 모습이 가장 가까이 보이는 자리"라고 말했는데요. 마이니치신문은 그 모습을 "고마키 감독은 더할 나위 없는 특등석에서 가장 긴 여름을 만끽하고 있다"라고 적기도 했습니다. 다시 한번 고시엔 정상에 오른 교토국제고를 축하하며 앞으로도 많은 활약을 기대합니다.


▶고시엔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에 담았어요


[뉴스속 용어] 한국어 교가 울려 퍼진 고시엔(甲子園)




전진영 기자 jintonic@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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