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국산화 개발 등 혈세만 낭비
경찰 1년 동안 내사만 진행
외교 문제 부담 등이 영향 주는 듯
각종 방산 비리에 대한 수사가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가짜 국산화 개발, 군사기밀 유출에 방산기업 임원 개입 의혹까지 제기됐지만, 진척이 더디다 보니 ‘용두사미 수사’로 전락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방산비리 수사 왜 늦어지나[양낙규의 Defence Club]](https://cphoto.asiae.co.kr/listimglink/1/2017070507400515645_1.jpg)
지난해 8월 국회 국방위 전체 회의에서 거론됐던 '박스 갈이 허위보고' 사건이 상징적이다. 당시 엄동환 방위사업청장은 미사일 발사체 국산화 개발 과정에서 한 업체가 수입산을 국산화처럼 제출한 ‘박스 갈이’ 허위 보고를 한 것에 대해 엄정 대처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안규백 의원이 "ADD(국방과학연구소) 연구용역 업체가 연구개발에 실패할 것을 우려해 이렇게 한 것을 알고 있느냐"는 질의에 대한 답변이었다.
사건 개요는 이렇다. 국방과학연구소(ADD)는 지난 2017년부터 4년간 미사일 발사체에 사용되는 ‘리오셀 탄소 직물’ 국산화 개발에 나섰다. 개발비만 29억원이 들어갔다. 미사일 추진 기관에는 고온·고압을 견딜 수 있는 탄소복합재가 필요하다. ‘리오셀 탄소 직물’이다. 탄소복합재는 대북 타격무기인 현무-2·3 미사일에 쓰인다. 국내엔 없다 보니 탄소복합재는 벨라루스에서 전량 수입했다.
국산화 개발 속이고 박스 바꿔치기하다 적발
이런 상황에서 전북에 있는 한 연구업체가 탄소복합재를 국산화하겠다고 나섰다. 2021년 7월 "세계 최초로 우주 발사체에 적용 가능한 리오셀계 탄소섬유 개발에 성공했다"고 했는데, 알고 보니 거짓이었다. 이 업체가 탄소섬유 국내 개발에 성공한 것처럼 속여 '박스 바꿔치기'를 한 것이다. ADD는 감사에 착수해 관련자를 징계하고 대전경찰청에 수사를 의뢰했다. 하지만 수사 의뢰 1년이 지나도록 수사 대신 내사만 진행 중이다. ADD 관계자는 “현재 대전지방경찰청에서 내사가 진행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수사로 전환할지 여부는 두고 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방산비리 수사 왜 늦어지나[양낙규의 Defence Club]](https://cphoto.asiae.co.kr/listimglink/1/2023101714520818438_1697521929.jpg)
경찰은 인도네시아가 KAI(한국항공우주)와 공동개발하기로 한 KF-21 등 항공 기술을 유출하려 했던 정황도 포착해 수사에 착수했다. 올해 2월 인도네시아 기술자 1명이 이동형 저장장치(USB) 8개가량을 회사 외부로 반출하려다 적발됐다. 이 기술자는 항공 기술을 습득하고 KF -21과 관련된 기술을 공유하기 위해 파견된 인원이다. 업계에서는 인도네시아 기술자들이 파견 기간 다수의 정보를 외부로 흘려보냈을 가능성을 우려한다.
기밀 유출 적발했지만 외교 문제 부담 소극적
경찰은 수사에 착수했지만, 아직 진척이 없다. 일각에서는 외교적인 문제로 비하되는 걸 막기 위해 수사를 축소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강구영 KAI 사장은 최근 한 언론 인터뷰에서 “인도네시아가 우리에게 중요한 전략적 파트너인 만큼 외교적 문제로 번지는 건 부담”이라면서 “인도네시아가 한국 무기를 구매하면 그 영향이 동남아 국가 전체에 미친다. 이런 점들을 고려해 대승적인 결론이 날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기술을 빼가고 분담금을 적게 내려는 일종의 ‘먹튀’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인도네시아 측은 KF -21 개발비의 20% 수준인 약 1조7000억원(이후 1조6245억원으로 감액)을 오는 2026년 6월까지 부담하는 대신 시제기 1대와 각종 기술 자료를 이전받는 등의 조건으로 2016년 1월 공동 개발에 참여했다. 하지만 이후 분담금 납입을 미루면서 현재까지 2783억원만 납부했다.
군사기밀 빼돌려 사업 참여하고 ‘직원 비리’로 단정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사업을 놓고도 수사가 늦어지고 있다. KDDX사업은 총 6척을 건조하는 7조8000억 원 규모다. HD 현대중공업 직원들이 군사기밀을 빼돌리다 적발됐다. HD 현대중공업 직원들은 2013~2014년 해군본부에서 KDDX 기밀 2건을 비롯해 차기 잠수함, 특수전 지원함 등 기밀 10여건을 빼냈다. HD 현대중공업 직원 9명은 군사기밀 보호법 위반(군기 법) 혐의로 지난해 11월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됐다. 하지만 방사청은 대표나 임원이 연루된 정황은 없는 것으로 보고 HD 현대중공업의 기본설계 사업 입찰을 허가했다.
경쟁업체인 한화오션은 HD 현대중공업 직원들의 불법 행위 당시 임원이 개입한 정황이 있다며 경찰에 고발했다. 경찰은 조만간 조사 결과를 낼 것으로 알려졌지만 늦어질 가능성도 있다. 최근에는 문재인 정부 방사청장을 지낸 왕정홍 씨가 IT 관련 업체 주식을 차명 보유한 정황을 파악하고 해당 업체 대표를 압수수색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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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관계자는 “향후 사업에 미치는 영향력 등을 고려해 철저하고 빠르게 수사해 방산 비리를 원천 차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양낙규 군사전문기자 if@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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