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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 살로 엮은 태극부채…손으로 지켜온 '전통의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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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장인시대④]'방구부채' 단선(團扇) 명인 방화선 선자장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10호(태극선)
2대 걸쳐 전주 부채에 바쳐온 외길 인생

대나무 살로 엮은 태극부채…손으로 지켜온 '전통의 바람' 대나무를 가늘게 자른 부채살을 고르게 다듬는 방화선 선자장. 2년 이상 자란 왕대나무를 겨울에 베어낸 뒤 1mm 두께로 고르게 잘라 다듬는 과정은 기계가 아닌 모두 사람 손을 거쳐 완성된다. [사진 = 방화선부채공예연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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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 탁- 탁- 탁-"

목탁 두들기듯 나무를 내리치는 소리가 건물 가득 울려 퍼진다. 전주 한국소리문화의전당 국제회의장 1층 작업장, 돗자리 위에 앉은 제자들과 함께 방화선 선자장(扇子匠·부채 만드는 기능을 보유한 장인,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10호)의 손놀림이 분주하다. 굵은 대나무를 돌판 위에 세우고 칼로 일정하게 갈라 부챗살 만드는 작업이 한창이다. 2년 이상 자란 왕대나무를 겨울에 베어낸 뒤 기계가 아니라 손으로 1mm 두께로 고르게 자른다.


“가느다란 부챗살이 손잡이 중심부터 퍼져나가는 모습을 본떠 둥글다는 순우리말을 붙여 방구부채라 불렀지요. 아침 해가 천지 만물을 일깨우는 형상을 지녔다 표현하기도 하고요. 부챗살에 비단, 종이를 붙여 만든 이 단선(團扇)은 위로 퍼져나간 부챗살이 자루(손잡이)로 모이기 때문에 살의 윗부분은 얇고 자루 박는 부분은 튼튼해야 합니다. 보세요. 부챗살의 위아래 굵기가 조금씩 다르죠?”


옛 선조들은 부채 하나면 바람을 만들어 더위를 쫓고 여름을 날 수 있다고 여겼다. 선풍기와 에어컨을 부채보다 더 많이 쓰는 시대다. 그래도 방 선자장은 여전히 손으로 만든 부채가 일으키는 ‘맑은 바람’의 힘을 믿는다. 반세기 넘는 세월을 꼬박 부채 만들기에 매진해온 원동력이다.


대나무 살로 엮은 태극부채…손으로 지켜온 '전통의 바람' 방화선 선자장은 단선 명인으로, 단선은 종이나 비단 위에 부채살을 붙여 만든 둥근모양의 부채를 뜻한다. [사진 = 방화선부채공예연구실]

부채는 크게 접고 펴는 ‘접선’과 자루가 달린 ‘단선’으로 분류한다. 조선 시대 선비들은 접선의 일종인 합죽선을 들어야 비로소 의관 정제를 마쳤다 보고 외출했다. 단선은 남녀 두루 즐겨 썼는데. 모양과 용도에 따라 대표적인 태극선을 비롯해 공작선, 대륜선, 선녀선, 파초선 등으로 나뉜다.


그중 태극선은 방 선자장에게 특별한 부채다.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부채를 배웠다 할 만큼 일상이 온통 부채였지요. 우리 집에 부채 만드는 일꾼만 160여 명이 있으셨으니까요.” 그의 부친은 대한민국 명장이자 전북 무형문화재 10호였던 고(故) 방춘근 선자장으로 방구부채 중에서도 특히 태극선 명인으로 불렸다.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매일 부채 만들기를 숙제로 내줬고, 2남 3녀 중 장녀인 방화선 명인은 어려서부터 부챗살을 제법 잘 놓아 형제 중 부채 만들기에 가장 재능을 보였다고 한다.


방 선자장이 나고 자란 전주에는 조선 시대부터 궁에 진상하는 부채를 생산하는 선자청이 있었다. 전주 부채는 단옷날 임금께 올릴 만큼 전국 부채 중 단연 으뜸으로 꼽혔다. 질 좋은 한지와 단단하고 곧게 뻗은 대나무, 지역 공예인의 예술적 감각이 더해져 탄생한 명품이었다.


전주에서도 단선 장인으로 소문난 고 방춘근 명인 집은 계절과 관계없이 늘 부채 만들기로 분주했다. 방화선 명인은 그런 환경에서 자연스럽게 부채 만드는 기술을 익혔다.


대나무 살로 엮은 태극부채…손으로 지켜온 '전통의 바람' 태극선은 방화선 선자장에게는 특별한 부채다. 그의 부친은 대한민국 명장이자 전북 무형문화재 1호였던 고 방춘근 선자장으로 방구부채 중에서도 특히 태극선 명인으로 불렸다. 2남 3녀 중 맏이인 그는 형제 중 유일하게 가업을 물려받아 부채를 만들고 있다. [사진 = 방화선부채공예연구실]

하지만 중학생이었던 1970년대, 집집마다 선풍기가 보급되면서 부채 주문이 급감했다. 새마을운동이 끝나고 전주에 공단이 들어서자 부채를 만들던 일꾼들은 일제히 공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가세가 급격히 기울었지만 방춘근 명인은 부채 만들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다섯 남매 중 방화선 명인만이 아버지 곁을 지켰다. “아버지를 돕겠다는 맏딸의 책임감도 있었지만 가장 좋아하는 것, 그리고 제일 잘하는 것이 부채라는 생각이 더 앞섰던 것 같아요. 다른 길은 생각해본 적도 없었습니다. 부모님은 공부하라고 하셨지요. 그렇다고 갑자기 부채를 포기할 수 있었겠어요.”


전통을 고집하던 부친과 달리 방 선자장은 늘 자신만의 부채를 고민했다. 스물셋이 되던 해, 처음으로 아버지 그늘을 벗어나 태극부채 시계와 부채로 만든 취침등을 선보였다. 그때 방춘근 명인은 불같이 화를 냈다. “전통을 망쳐놓는다고 크게 화를 내셨어요. 하지만 저는 생각이 달랐죠. 시대가 변하면 부채도 그 흐름을 반영해야 한다고 봤어요. 과거에 만들던 부채, 현재 만드는 부채, 미래에 만들 부채가 같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동시대적 감성도 넣어보고, 새로운 용도에 맞춰 다양한 시도도 해봐야죠. 전통에 머물러만 있으면 발전이 없잖아요.”


그의 부채는 독창적이면서도 예스러운 아름다움을 품고 있다. 반세기 넘게 안 만들어본 부채가 없을 정도로 다양한 실험을 거듭한 결과다. 둥근 보름달을 보고 풍년을 기원하며 만든 ‘온선’, 하늬바람이 너무 예뻐 바람이 휘날리는 모양으로 만든 ‘하늬선’, 경남 통영 초대전을 앞두고 지역 특산품을 떠올리며 만들었다는 ‘새우선’과 ‘멸치선’. 오직 그의 작품으로만 만날 수 있는 특별한 부채들이다.


대나무 살로 엮은 태극부채…손으로 지켜온 '전통의 바람' 방화선 선자장이 2019년 밀라노 디자인위크때 출품한 옻칠 대원선. 폭 46cm, 길이 98cm의 대형 부채로 흑과 백의 대비를 아름답게 살린 작품으로 호평받았다. [사진 =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몇 해 전 유럽 초대전에 공예 작가들과 참가한 방 선자장은 스페인의 한 식당에서 다 떨어진 태극선을 보물처럼 소장하고 있는 것을 보고 가슴이 뭉클했다. “외국 사람들은 우리 부채를 보면 정말 아름답다고 감탄해요. 유럽 초대전 때였는데, 같이 전시하는 다른 작가들이 얼마 지나지 않아 세일을 했어요. 저는 전통문화가 헐값에 팔려 가는 게 내키지 않아 끝까지 제값을 받았죠. 결국 한 점도 못 팔고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그 가치를 지켰기에 후회는 없어요.”


외국인들은 다른 작품이 세일을 하니 당연히 부채도 세일할 것이라 생각해 느긋하게 기다렸다. 세일 없이 전시가 끝나자 다급한 마음에 현지 문화원과 주최 측으로 사고 싶다는 문의가 이어졌다. 수소문 끝에 한국에 돌아온 방 선자장과 연락이 닿은 이들은 부채를 모두 제값에 구입해갔다.


현대적 감각의 한국 무용으로 주목받은 연출가 정구호. 그는 2018년 작품 연출 차 찾은 전주 한국소리문화의전당에서 우연히 선자장의 작업장과 부채를 봤다. 그리고 공연 소품인 선녀 부채 제작을 맡겼다. “이미 준비된 소품이 있었는데 제 부채를 보고 마음이 바뀌셨대요. 연출가인 동시에 디자이너라 원하는 디자인에 대한 분명한 기준이 있었답니다. 공연에 쓸 부채다 보니 저도 작업하는 내내 즐겁게 임했죠. 이때 인연으로 정 예술감독이 전시를 총괄한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 옻칠 대원선을 출품하기도 했습니다. '수묵의 독백'을 주제로 한 기획전에 스물 세 명의 작가가 작업한 공예 작품들이 책가도처럼 배치됐죠. 그때 수묵화의 농담을 표현하기 위해 옻칠 작업을 선택했는데, 관람객들이 그 오묘한 색감에 많은 관심을 표했습니다."


대나무 살로 엮은 태극부채…손으로 지켜온 '전통의 바람' 방화선 선자장은 반세기 넘게 부채를 만들어왔음에도 여전히 부채 만드는 일이 가장 설레고 즐겁다고 말한다. 그는 많은 사람들과 이 '기쁨'을 나누고 싶어 다양한 체험활동과 장인수업을 앞으로도 계속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사진 = 방화선부채공예연구실]

한동안 옻칠 작업에 몰두했다는 방 선자장은 직접 작업한 부채를 보여주며 말했다. “한지에 아무리 기름을 먹이는 유칠 작업을 정성껏 해도 물에 젖으면 그 부채는 결국 못쓰게 되죠. 한지 부채의 한계랄까요. 그런데 옻칠을 하면 그 한계를 넘어설 수 있어요. 경남 창원 다호리 유적에서 출토된 삼한 시대 부채 자루가 긴 세월을 견딜 수 있었던 것도 옻칠 덕분이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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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장에 오는 순간이 가장 설레고 즐겁다는 방 선자장. 오랜 세월을 땅속에서 견뎌낸 부채처럼 그는 앞으로 더 긴 시간 동안 부채가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길 바란다. “좋은 재료를 발견하면 어떤 부채를 만들까 설레고, 어떤 기분 나쁜 일이 있어도 작업장에 오면 이내 마음이 평온해져요. 이 기쁨을 많은 분과 나누고 싶어 체험학습, 장인학교 등 틈틈이 수업도 진행하고 있죠. 그렇게 선한 바람을 일으켜 보길 오늘도 꿈꿉니다.”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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