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분쟁 우려에 보호제도 폐지
중국산 저가공세 길 터준 꼴
이제 막 태동하기 시작한 국내 해상풍력 생태계가 중국산 저가 공세에 휘청이고 있다. 정부가 통상 마찰 문제를 이유로 자국 산업 기반을 보호할 수 있는 장치를 없앤 게 문제의 시작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오는 2030년까지 매년 해상풍력 입찰을 진행한다. 국내 해상풍력 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개선이 '발등의 불'이 됐다.
3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한국에너지공단의 첫 풍력설비 경쟁입찰(고정가격계약 방식)은 국산화규정(LCR·Local Content Requirement)이 폐지된 이후 진행됐다. LCR은 풍력터빈 제작 시 국산부품을 일정비율 사용하도록 규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지금까지 사업이 없어 납품 기회를 얻기 어려웠던 국내 부품사들의 숨통을 열어주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다. 자국 산업 보호와 국내 생산기지 유치를 유도할 수 있다는 점에서 대만·영국·중국 등 대규모 해상풍력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는 나라에서 다양한 형태로 활용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 2021년 12월 이 제도를 도입했다. 국산 부품 비중이 50%를 넘는 사업에 대해 최대 4.9배의 신재생에너지공급인증서(REC) 가중치를 제공하는 내용이다. 기술적 측면과 풍력터빈 가격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기존 입찰방식에 국산화율 항목이 추가하는 식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4월 정부는 돌연 제도를 폐지했다. 유럽연합(EU)이 줄곧 세계무역기구(WTO) 규범 위배가능성을 제기해옴에 따라 통상 분쟁이 우려된다는 점과 이중 혜택 우려가 있다는 두 가지 이유를 꼽았다. 풍력 입찰제도에서 낙찰자를 정할 때 국내 경제·공급망 기여도를 평가하는 항목(16점)이 있기 때문에 REC 가중치까지 줄 경우 이중 혜택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 결과는 제도 시행 기간 때와는 사뭇 달랐다. 그 이전인 2022년 정부 발주 사업 낙찰자 가운데 중국산 주요 부품을 사용한 사업자는 단 한 곳도 없었다. 하지만 폐지 이후인 지난해 말엔 ▲완도금일(1단계) 210㎿ ▲완도금일(2단계) 390㎿ ▲신안우이 390㎿ ▲낙월해상 365㎿ ▲고창 76㎿ 등 5개 사업이 낙찰됐는데, 이 가운데 낙월해상과 고창해상 등 2곳이 터빈을 비롯한 핵심부품을 중국산으로 채웠다.
업계에선 사업 입찰 과정에 LCR에 따른 REC 가중치가 빠지고, 가격 경쟁을 유도하는 방식으로 변경되면서 중국 기업의 침투가 가속화됐다고 분석한다. 낮은 가격에 기자재를 공급하는 중국 제품을 제안한 사업자에게 유리한 구조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정부는 이에 대해 여전히 국산업체에서 보다 유리한 평가를 유지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입찰 기준에 가격과 산업기여도 항목을 뒀는데, 16점 배점된 산업기여도가 국산업체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국내 업체들은 가격 배점이 60점이라며 중국 업체와 근본적 경쟁이 어렵다는 입장이다. 아무리 가격경쟁력을 갖춰도 중국과 상대가 안 되기 때문에 경쟁에서 구조적인 한계가 있다는 얘기다.
국내 해상풍력업계 관계자는 "이전에는 기업들이 공개된 상한가를 참고해 입찰가를 써낼 수 있었지만, 상한가가 비공개로 전환되면서 무조건 낮은 가격을 써내도록 바뀌었다"며 "저가의 중국산 부품을 사용하는 업체들이 유리해진 환경이 됐다"고 말했다.
한예주 기자 dpwngk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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