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찾은 충북 청주 오창에 있는 배터리제조·검증지원센터. 지난달 5일 개소식을 가진 센터 본관 바로 옆에는 이차전지 성능평가동과 MV(Micro Vehicle·소형차) 안전성평가동 등 부속 건물을 짓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충북 오창 배터리 제조·검증지원센터는 올 연말 방폭시험동, 이차전지 고도분석동까지 들어서면 이차전지 소재-셀-모듈-팩 등 전주기 연구개발(R&D)을 지원하는 국내 최대 규모의 이차전지 지원 시설로 탈바꿈하게 된다.
50Ah급 파우치 셀 제조라인 완비…"공공기관으론 세계 최초"
가장 먼저 문을 연 센터 본관 1층에는 50암페어시(Ah) 용량의 중대형 파우치 셀을 직접 제조할 수 있는 이차전지 소재부품 시험평가센터가 들어서 있다. 50Ah는 자동차나 에너지저장장치(ESS)에 들어갈 수 있는 용량이다.
이곳에는 직접 양극과 음극을 제조할 수 있는 전극 공정부터 전극을 파우치에 넣고 전해액을 주입하는 조립 공정, 조립한 파우치에서 가스를 제거하고 충·방전을 반복하는 화성 공정까지 모든 파우치형 배터리를 제조할 수 있는 장비가 완비돼 있다.
에어워셔를 통과해 드라이룸(습도를 일정 수준 이하로 유지하는 공간)에 들어가 보니 양극과 음극으로 분리된 전극 제조 라인에서 최신 바인더, 믹싱, 코팅. 건조, 슬리팅 장비들이 시험 가동 중이었다. 조립공정에서도 노칭, 스태킹 등 신규 장비 등이 가동을 위해 준비중이었다. 화성공정에서도 배터리를 충·방전하는 설비와 가스를 제거하는 디개싱 장비들이 설치돼 있었다. 장비 구입에만 약 80억원이 소요됐다고 한다.
공공 영역에서 이같이 중대형 배터리 셀 제조 라인을 구축한 것은 국내에선 충북이 처음이다.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기 어렵다. 제조 라인을 구축하기 위해 LG에너지솔루션의 컨설팅을 받기도 했다. 배터리셀 제조 공정에는 기업의 노하우가 녹아있기 때문이다.
중대형 파우치 셀 제조 설비는 이차전지 소재를 개발하고도 성능 평가를 진행하기 어려웠던 스타트업이나 중소벤처기업들에 유용할 것으로 기대된다. 미처 파일럿 라인을 구축하지 못한 대형 소재 기업이나 배터리셀 기업들에도 문호를 개방할 예정이다.
센터를 안내한 충북 테크노파크 박해철 책임연구원은 "하루에 200개~250개의 파우치 셀을 제조할 수 있는 생산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며 "4월까지는 실제 가동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벌써부터 배터리셀 및 소재 기업들의 이용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앞으로 들어설 이차전지성능평가동에서는 중대형 이차전지용 소재부품을 전주기 분석하고 평가할 수 있는 인프라를 갖출 예정이다. MV안정성평가동에서는 0.5~10킬로와트시(㎾h)급 소형 배터리의 환경 및 안정성 평가 작업을 할 수 있게 된다. 방폭시험동은 화재나 열폭주 등 배터리 화재 상황을 재연하고 분석할 수 있는 시설이다.
배터리제조·검증지원센터는 이 같은 부속 시설을 배터리세이프티존(BST)이라고 이름 지을 예정이다. 충북 오창의 이차전지 산업 특화단지에는 배터리 제조·검증지원센터를 비롯해 이차전지 기업을 지원하기 위한 9개의 인프라가 집적돼 있다.
충북 오창에 이처럼 대규모 배터리 지원시설이 들어서는 것은 이 지역에 이차전지 기업들이 밀집해 있어서다. 오창은 2002년 LG화학(현 LG에너지솔루션)이 이차전지 공장을 건립한 이래 현재 40여개 배터리 관련 기업이 입주해 있다. 충북 전체로는 130여개 배터리 관련 기업이 둥지를 틀고 있다.
"신기술은 가장 먼저" …LG 오창 에너지플랜트는 '마더팩토리'
무엇보다 충북 오창이 이차전지 도시로 자리매김한 것은 LG에너지솔루션의 영향이 절대적으로 크다. LG에너지솔루션은 오창에 두 곳으로 나누어 이차전지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해 3월 오창 공장의 이름을 오창 에너지플랜트로 변경했다.
LG에너지지플랜트는 외관으로 보기에는 여느 일반 오피스빌딩과 크게 다르지 않다. 먼저 세워진 에너지플랜트1(1공장)은 33만309㎥(약 9만9918평) 규모의 대지 위에 건립된 5개동에서 원통형 배터리와 파우치형 배터리를 생산하고 있다. OC1~OC3동은 전동 공구나 IT기기에 들어가는 2170형 원통형 배터리를, OC4·OC5동은 자동차에 탑재되는 파우치형 배터리를 각각 제조한다. OC6~OC8동은 LG화학이 임대해 사용중이다.
본관 1층에 들어서자 직원들 휴식 공간인 '엔트럴파크'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가끔 외부인을 초청해 공연이나 콘서트도 연다고 한다. 본관 2층에는 게임기, 노래방, 다트, 카페 등이 있어 직원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이달 초에는 본관 바로 옆에 4층짜리 복지관을 새로 건립했다. 편의점, 푸드코트, 운동시설, 강의실 등을 갖췄다. 공장이 3교대로 24시간 운영되다 보니 점심 시간 이외에도 이용하는 직원들이 많다고 한다.
이곳에서 약 6km 떨어진 LG에너지플랜트2는 2010년부터 조성하기 시작했다. 총 35만6201㎡(약 10만751평) 규모로 1공장보다 크다. 2개 공장을 합치면 LG에너지솔루션 오창 공장은 20만7669평에 이른다.
오창 에너지플랜트2에는 차세대 원통형 배터리를 생산하는 OC9동이 있다. 테슬라에 들어가는 4680 원통형 배터리가 이곳에서 만들어진다. 오는 8월 양산 예정이다. 바로 뒤에 OC10동도 현재 건립되고 있다.
오창 에너지플랜트는 LG에너지솔루션이 유일하게 국내에서 운영하는 생산시설이다. 새로운 배터리 기술이나 설비를 도입할 경우 맨처음 오창 공장에 적용하고 검증이 끝난 후 해외에 이식된다. 일종의 테스트베드인 셈이다. 4680 원통형 배터리도 이곳에서 안정화 과정을 거친 후 미국 공장에서 대규모 양산할 계획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그런 의미에서 오창 공장을 '마더 팩토리'라고 부른다. 이곳에서 미국, 중국, 폴란드 등 해외 생산시설과 원격으로 의사소통하거나 제어할 수 있다. 새로운 기술과 공정이 오창 공장에 처음 적용되다 보니 고객사들과의 주요 미팅도 이곳에서 이뤄진다. 기자가 찾은 날도 여러명의 해외 바이어들을 목격할 수 있었다.
오창 공장의 생산 규모도 적지 않다. 오창 에너지플랜트 생산액은 2021년 8조3875억원에서 2022년 10조5818억원, 2023년 12조2884억원으로 매년 큰 폭으로 늘었다. 이중 약 절반은 자동차용 배터리에서 나왔다.
"美엔 실리콘밸리·대만엔 신주 과학단지…한국엔 오창"
에코프로 본사와 에코프로비엠의 양극재 제조 공장도 LG에너지플랜트 바로 앞에 있다. 에코프로비엠은 3000억원을 투자해 오창에 연구개발(R&D) 센터를 지을 계획이다. 수산화리튬 가공 기업인 에코프로이노베이션과 그룹의 모태가 됐던 환경 기업 에코프로HN의 본사도 오창에 있다.
이외 더블유스코프코리아(분리막), 파워로직스(팩/모듈), 우진산전(완제품), 미래나노텍(양극재 재료), 에스엔피랩(음극재 재료), 씨에스아이엠(전해질 재료), 원익이앤이(공정장비), 대연에스티(셀부품) 등이 단지를 이루며 몰려 있다.
이 같은 강점을 인정받아 충북 오창은 2021년 이차전지 소재부품장비 특화단지에 이어 지난해 7월20일에는 국가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로 지정받을 수 있었다.
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는 오창 과학산단, 오창 제2 과학산단, 오창 테크노폴리스 일반산단, 오창나노테크 산단 등 4개 산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총 면적은 1460만9355㎥(약 442만평)에 이른다. 이중 테크노폴리스 일반산단과 오창 나노테크산단은 현재 조성이 진행 중이다.
오창에 이차전지 관련 기업들의 투자도 이어질 전망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2013년부터 2021년까지 오창 지역에 2.3조를 투자한 데 이어 2023년부터 2026년까지 4년간 마더팩토리 및 R&D 파일럿 라인 구축을 위해 추가로 3조9000억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충북도에 따르면 특화단지 지정 이후 이녹스첨단소재 등 5개 기업은 8000억원 규모의 신·증설 투자를 결정했다.
충북은 초격차 기술선도 거점 역량 강화, 글로벌 R&D 클러스터 조성, 혁신생태계 강화 등 3대 전략을 추진해 2030년 이차전지 생산액 196조원, 부가가치 51조원, 고용 14만50000명, 수출 89억 달러 달성을 예상하고 있다. 충북도청 김상필 이차전지산업팀장은 "미국의 실리콘밸리(IT), 대만의 신주 화학산업단지(반도체)와 같은 세계적인 이차전지 클러스터로 발돋움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인터뷰]"전극 수출로 연간 50% 성장…최봉규 이투텍 대표
국내 이차전지 산업이 주목받기 이전인 2013년부터 전극을 수출한 기업이 있다. 충북 오창 과학산업단지에 있는 이투텍(E2Tech)이다. 국내 일반인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매출의 대부분을 전극 수출로 벌어들이는 강소기업이다. 2022년에 정부로부터 300만불 수출탑을 받았다.
13일 오창 이투텍 본사에서 만난 최봉규 대표는 "지난해에는 73억원의 매출을 기록했으며 올해에는 이보다 50% 이상 늘어난 150억원의 매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2013년 설립한 이투텍은 고성능·고출력·특수목적용 배터리에 들어가는 양극 및 음극 전극을 생산한다. 주로 이스라엘의 타리단(Taridan)과 미국의 사프트(Saft)에 배터리용 전극을 수출하고 있다. 두 곳 모두 전통있는 배터리셀 기업으로 주로 산업용 및 방산용 배터리를 생산하고 있다. 국내 배터리셀 기업에도 전극을 납품한다.
산업 현장이나 방산용 배터리는 일반 범용 배터리보다 극한 환경에서도 작동해야 하기 때문에 납품 업체들은 까다로은 조건을 만족해야 한다. 예를 들어 이스라엘 타리단의 경우 일반 배터리보다 수명이 4배 길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투텍은 단순 하청 기업 이상을 지향하고 있다. 고객사가 원하는 사양을 제시하면 이를 구현할 수 있는 소재들을 조합해 고객사에 역제안한다. 자체적인 기술력을 갖추고 있지 않으면 어려운 일이다. 대학교수 출신의 저명한 공학 박사를 초빙해 기업부설연구소도 운영하고 있다. 최 대표는 "실리콘 음극재의 함량을 80%로 확대해도 부풀어 오르지 않는 음극 기술도 보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투텍은 믹싱, 코팅, 프레싱 장비를 자체 보유하며 연간 500메가와트시(MWh) 용량의 전극을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길이로는 100만 미터에 달한다. 올해는 10억원을 투자해 전극 제조 라인을 확대하고 드라이룸 설비도 추가해 생산능력을 확대할 계획이다.
환경 이슈에도 적극 대응하고 있다. 리사이클시 문제가되는 위험물질 사용을 최대한 억제하기 위해 일부 전극은 증류수를 사용해 전극 특성을 만족시키는 제조 혁신을 실현하고 있다.
이투텍은 생산 설비를 갖추고 있지 않은 이차전지 스타트업을 위해 샘플을 제작해주는 사업도 하고 있다. 일종의 지원 사업이다. 최봉규 대표는 "스타트업을 위한 전극 제조는 수익성을 기대하기 어려운 사업"이라며 "정부가 이런 부분에 대해 세액 공제나 금융 지원을 해주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최봉규 이투텍 대표는 삼성그룹 비서실 출신으로 2016년부터 이 회사를 운영해 경영하고 있다.
강희종 기자 mindl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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