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 떨어지자 미뤘던 자금조달 나서
연기금·보험사 등 회사채 주워담기
IB업계 "1분기 내 초호황 이어질 듯"
올해 들어 1월 한 달간 발행된 대기업 회사채 발행 물량이 역대 최대치인 11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시장 금리가 연초부터 눈에 띄는 하락세를 보이면서 2022년 레고랜드 사태 이후 회사채를 발행하기 가장 좋은 시장 환경이 조성됐다. 국민연금 등의 기관투자가들도 1월을 ‘연내 금리 최고점’이라고 인식하면서 연초부터 대규모 자금을 ‘회사채 주워 담기’에 투입하고 있다.
회사채 월 발행량 10조 넘은 건 처음…SK·한화·현대차 順
29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올해 들어 이날까지 발행된 일반회사채(금융채·주식 관련 채권·옵션부사채 등 제외)는 총 10조4300억원 규모를 기록했다. 이달 31일까지 발행될 예정인 물량을 포함하면 1월 회사채 발행량은 11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평년의 1.5~1.8배 수준으로 1월 한 달 채권 발행 물량으로는 역대 최대치다.
대기업 그룹 중에서는 SK그룹이 1조9850억원으로 채권 발행 물량이 가장 많았다. 계열사별로는 SK E&S(5000억원), SK인천석유화학(3000억원), SK지오센트릭(3000억원), SK렌터카(3000억원), SK브랜드밴드(2300억원), SK실트론(2000억원), SK디스커버리(1000억원) 등이 회사채를 발행해 자금을 조달했다.
뒤를 이어 한화그룹(1조1500억원), 현대차그룹(1조1000억원)이 올해 들어 지금까지 1조원 이상의 채권을 발행했다. 한화그룹에서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4000억원), 한화솔루션(3500억원), 한화(2500억원), 한화에너지(1500억원) 등이 자금 조달에 나섰다. 현대차그룹에서는 현대제철(5000억원), 현대건설(3000억원), 현대트랜시스(3000억원) 등이 회사별로 수천억 원 규모로 회사채를 발행했다.
롯데그룹(9350억원), CJ그룹(8200억원), LG그룹(7700억원), KCC그룹(6430억원), 신세계그룹(5680억원) 등의 계열사들도 1월부터 줄줄이 회사채 발행 랠리에 동참했다. 미래에셋증권과 삼성증권 등 채권 발행을 주관하는 국내 대표 증권사들도 각각 5600억원과 4000억원의 회사채를 발행했다. 증권사의 주요 자금조달 수단은 환매조건부채권(RP), 기업어음(CP), 단기사채 등으로 평소 회사채 발행을 자주 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례적이다.
IB 업계 관계자는 "신용도가 여전히 높지만 지난해 실적이 다소 부진해 현금 유동성을 확보해야 하는 석유화학 업계와 방위산업과 에너지 등으로 신규 투자를 늘리는 한화그룹 계열사들의 회사채 발행이 증가했다"면서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우려가 커진 건설사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기업의 채권 발행이 늘어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3년 내 금리 최저점…미뤘던 자금조달 폭발
기업들이 줄줄이 회사채 발행에 나선 건 시장금리 하향 안정화 덕분이다. 올해 1월 금리가 레고랜드 사태 이후 최저점 수준으로 내려오면서 기업들의 자금 조달 환경이 빠르게 개선됐다. 3년물 국고채 금리(금융투자협회 최종호가수익률 기준)는 3.10~3.30% 수준까지 내려오면서 1년4개월여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AA-등급 회사채 금리도 4% 내외 수준으로 2022년 5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으로 낮아졌다. 회사채 발행 금리는 같은 만기의 국고채 금리에 기업 신용도 별 신용 스프레드를 붙여 결정된다. 1월에는 국고채 금리 하락과 동시에 우량 대기업들의 신용 스프레드도 동반 축소됐다. 대기업 입장에서는 채권 발행에 따른 이자 부담이 확 줄어든 셈이다.
자산운용사 채권운용 담당자는 "지난해 높아진 금리를 부담스러워하는 기업들이 회사채를 발행하는 대신에 CP와 단기사채 등의 단기 자금조달 수단과 기업대출을 활용해 유동성을 확보해 왔다"면서 "금리 부담이 줄어든 연초에는 단기자금을 상환하면서 신규 자금을 확보하려는 기업들이 회사채 발행 시장으로 몰렸다"고 전했다.
대규모 기관 자금이 채권 시장으로 몰린 것도 회사채 발행량 폭증에 영향을 미쳤다. 국민연금을 비롯한 연기금과 공제회, 은행, 보험사, 자산운용사 등의 기관투자가들이 연초 하락세를 보이는 금리 움직임에 지금을 ‘금리 고점’으로 평가하면서 채권 시장에 대규모 자금을 집행했다. 향후 금리가 추가로 하락하는 경우 원리금 수익 외에 채권 평가차익을 기대할 수 있는 상황이라는 분석이다.
기관 자금이 우량 채권으로 몰리면서 LG유플러스, 네이버, 신세계, 대상, 현대제철, SK브로드밴드,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등 AA급 신용도를 보유한 우량 기업들은 3~5년 만기 회사채를 3%대 중·후반 수준으로 발행금리를 확정했다. 금리 하락과 더불어 채권 수급상 공급보다는 수요가 폭증하면서 회사채 실제 발행금리가 더욱 낮아졌다.
IB 업계 관계자는 "1월 대기업 회사채 수요예측(입찰)에 예정된 채권 발행액의 적게는 2배에서 많게는 10배 이상의 기관 투자금이 유입되고 있다"면서 "연초부터 기관투자가들의 ‘채권 주워 담기’ 경쟁이 확대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기관투자가들이 올해 자금 집행 계획상 채워야 하는 회사채 물량을 어느 정도 확보하면 경쟁이 다소 줄어들겠지만, 연초의 채권 호황 분위기는 1분기 이내에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임정수 기자 agremen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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