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5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조선 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경우 대한민국을 완전 점령·평정·수복하고 공화국 영역에 편입시키겠다"고 말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김 위원장은 또 헌법을 개정해 대한민국을 '제1의 적대국' '불변의 주적'으로 명기하고 평화통일 표현을 삭제하라고도 지시했다.
이같은 김 위원장의 발언은 극심한 경제난을 겪고 있는 북한 내부의 불안을 달래고 남남갈등을 유발하려는 의도라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또 핵 개발과 전쟁 위협을 고조시키려는 '미치광이 전략'의 연장선이라는 분석도 있다. 오는 4월 남한 총선과 미국 대선 상황을 봐 가며 핵 보유국의 지위를 얻어내겠다는 계산이다.
국제정치학 용어인 미치광이 전략(Madman Theory)이란 협상에 나선 상대가 자신을 비이성적인 미치광이로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 유리하다는 주장이다. 상대가 자신에게 위해를 가하거나 도발하면 자신이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예측 불가의 사람으로 인식되게 하고 두려움을 느끼도록 해 협상을 유리하게 끌고 가는 전략이다. 다른 말로 광인이론(狂人理論)이라고도 한다.
1970년대 초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과 헨리 키신저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다른 나라의 정상들에게 자신들을 충동적이며 비이성적이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지도자로 생각하게 했다. 자칫하면 핵전쟁도 일으킬 수 있는 인물로 믿게 해 소련이나 제3세계가 미국을 자극하지 않도록 했다. 닉슨 행정부는 핵전쟁 공포를 유도하는 방식으로 소련이 북베트남을 움직이도록 해, 결국 베트남전 종전 협상을 이끌어냈다.
최근 미치광이 전략을 국제 관계에서 실제 사용하고 있는 국가는 이스라엘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해 10월 팔레스타인의 무장단체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 침공하자, 이스라엘은 즉시 하마스에 대규모 공격을 퍼부으며 무차별 보복을 계속하고 있다. 또 하마스를 측면 지원하는 이란은 물론 레바논, 시리아, 예멘, 이라크 등 인근 아랍권 국가들에 대해서도 무력 충돌을 불사하며 전쟁 확산 우려를 고조시키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잊을 만하면 핵무기를 들고나와 세계 평화를 위협한다. 지난해 10월엔 러시아의 핵 순항미사일 발사 성공을 알리며 33년 만에 핵실험을 재개하겠다는 구상을 드러냈다. "제정신이라면 누구도 러시아에 감히 도전 못 할 것"이라며 협박 아닌 협박을 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조인경 기자 ikj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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