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과 영국이 완전히 바꾼 게 있다. 학생들에게 의무적으로 금융교육을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된 원인은 월스트리트를 박살 냈던 투자 행태였다. 세계를 뒤흔든 파생상품 이름은 CDO. 우리말로 풀면 '부채담보부증권'이다. 한글 조합이긴 하나 도통 알 수 없는 단어. 세계 3대 투자자 중 한 명인 조지 소로스마저 "CDO가 뭔지 잘 몰랐다"고 할 정도였으니, 누구든 모르는 게 정상이었다. 이 무지가 파국을 불러올 거란 것도 몰랐다는 게 함정이지만.
지금 홍콩H지수를 기반으로 한 ELS(주가연계증권) 때문에 손실을 보게 될 사람들이 저 때와 같은 형편이다. "나는 뭔지도 몰랐다"는 항변을 되짚어보면 이런 거다. '정기예금 들려고 간 동네 은행에서 'ELS'라는 말을 처음 접했다 → 이해를 못 했지만 얼굴 아는 은행원이 전쟁 나지 않은 한 손해는 없다고 해서 나도 모르게 사인을 했다→좀 찝찝하긴 했으나 설마 하고 은행 문을 나섰다.'
3년이 흘러 ELS의 꼬리표는 '불완전 판매'와 '손실 배상'이 됐다. 은행이 얼마나 잘못했는지, 배상이 어디까지 이뤄질지 모를 일이다. 확실한 건 이 프레임 안에서 사태가 마무리되면 언젠가 비슷한 일이 또 터질 거란 점이다.
그래서 꺼내 본 게 2020년 자본시장연구원이 쓴 '주요국 금융교육 현황 및 특징'이란 보고서다. 거기엔 '투자 지식이 부족한 개인이 능력 이상의 위험을 떠안으면서 글로벌 금융위기를 일정부분 확산했다는 데 주요국은 입장을 같이했다'는 문구가 있다. '옐런 그린스펀 전 연방준비제도(Fed) 의장 역시 "높은 금융문맹률이 금융위기를 불러왔다"고 지적했다'는 부분도 있다.
진단이 나오자 미국은 빠르게 움직였다. 2010년 대통령 직속으로 금융교육 자문위원회부터 만들었다. 곧 '금융이해력 증진을 위한 국가전략'이 발표됐다. 금융 조기교육이 자리 잡은 게 이때부터다. 초·중등 기존과목에 금융 부문을 집어넣었다. 17개 주에서 의무교육이 이뤄졌다. 고등학교에선 체험형으로 금융을 가르친다. 영국도 2012년 금융교육 전담 기구를 만들어 공교육에서 금융 수업을 의무화했다. 호주 역시 초등학교 5학년부터 모든 학생이 금융을 배워야 한다.
우리나라는 어떤지 금융감독원에 물어봤다. 은행과 결연한 초등학교는 은행으로부터 금융 교육을 받을 기회가 생긴다. 중학교는 1학년 자유학기제 때 금융 교육을 받는 게 가능하다. 내년부터 고등학생의 선택 교과목에 금융이 들어간다. 따져보면 교육 과정이 있지만, 없기도 한 셈이다. 그게 의무와 선택의 차이점이다. "학교와 선생님이 금융에 얼마나 관심이 있느냐에 따라 학생들의 배움 정도가 달라진다"는 게 금감원 이야기다.
투자에는 정답이 하나만 있는 게 아니다. 그래서 누구 손에만 맡길 수 없다. 내 돈은 내가 책임진다고 생각하면 어느 정도 금융 지식이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금융 상품에 대한 리스크를 이해하고, 투자 성향에 따라 가장 효율적인 선택을 하는 능력이다. "배상받으면 그만이지, 귀찮게 뭘?" 이런 식의 결말은 또 다른 공포를 불러올 게 뻔하다. 공포를 이길 단 하나의 무기는 예측 가능성이다. 예측 가능성을 높일 방법은 어릴 때부터 제대로 배우는 것이다.
심나영 경제금융부 차장 sn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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