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쓴다’는 것은 틀에 박힌 입시 공부와 달리 뭔가 흥미롭고 소중한 체험이었다. 그때는 활자매체가 지금처럼 많지 않았기 때문에 교과서 외의 활자를 마주한다는 것 자체가 지금보다 훨씬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그런데 그때보다 훨씬 많은 활자와 이미지를 접하는 지금, 나는 왠지 ‘말의 힘’을 잃어가는 것 같다.
황인숙 시인의 <말의 힘>을 읽어보니 더욱더 단어 하나하나의 힘, 문장 하나하나의 힘을 잊어가는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된다. 그래, 기분 좋은 말들은 단순하고 소박하다. 파랗다, 하얗다, 깨끗하다, 싱그럽다, 신선하다, 짜릿하다, 후련하다, 시원하다, 달콤하다, 아늑하다. 아이스크림, 얼음, 바람, 아아아, 사랑하는, 소중한, 달린다, 비! 이렇게 원시적인 체험을 담은 투명한 말들의 단단한 질감을 나는 잊어가고 있었다. 그렇지, 기분 좋은 말은 그저 눈으로만 읽을 것이 아니라 소리 내어 하나하나 발음해보아야 한다.
바로 그렇게 활자화된 단어 하나하나를 천천히 쓰다듬고, 깨물어 보고, 씹어도 보고, 핥아도 보는 촉감적인 즐거움을 나는 오랫동안 잊고 있었다. 옛사람들이 글을 읽고 쓰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오래전부터 잊고 있었던 그 단순한 '활자 맛보기의 즐거움'이 되살아난다. 우리가 매일 무덤덤하게 마주하던 수많은 활자를 더욱 애지중지하고 싶어진다.
메슈의 이 그림에는 ‘글쓰기의 즐거움’이 오롯이 드러나 있다. 편지를 쓰는 남자는 자기 주변의 모든 사물에 자연스럽게 동화되어 있다. 그가 오른손으로 쥐고 있는 펜, 왼손으로 만지고 있는 편지지, 그가 앉아 있는 의자, 의자 위에 걸린 모자, 그가 의지하고 있는 책상, 책상 위에 화려하게 펼쳐져 있는 페르시안 러그, 은제 필기구 세트, 창문 뒤편으로 비치는 거대한 지구본까지. 그 모두가 ‘나는 이런 사람입니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그는 상인이거나 과학자일 수도 있고, 학문과 예술에 관심이 많은 열정적인 젊은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가 ‘읽고 쓰기’를 진심으로 즐기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읽고, 쓰고, 공부하고, 이해하는 일의 즐거움은 삶을 지탱하는 중요한 원동력이다. 무언가 새로운 것을 향해 항상 열린 마음이야말로 우리를 권태와 매너리즘으로부터 구원해주기 때문이다.
-정여울, <오직 나를 위한 미술관>, 웅진지식하우스, 1만9000원
조인경 기자 ikjo@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