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크의 <이별>은 주변의 모든 풍경을 무화(無化)해버리는 한 인간의 압도적 슬픔을 그려낸다. 서로 헤어지는 두 사람이 주변의 풍경 전체를 삼켜버리는 거대한 블랙홀처럼 느껴진다. 여인은 남자의 아픔 따위는 전혀 상관하지 않는다는 듯 매정하게 떠나버리고, 홀로 남은 남자는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이별의 상처를 곱씹으며 고통을 견뎌내야 한다.
남자의 가슴에서는 피가 흐른다. 이별의 상처는 보이지 않는 칼날이 되어 그의 심장을 꿰뚫어버린 듯하다. 남자는 흘러나오는 피를 막으려는 듯 애써 가슴을 손으로 가려보지만, 흐르는 피를 멈출 수 없다. 그는 어떻게든 사랑의 상처에서 벗어나 조금이라도 앞으로 나아가려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의 피만큼이나 검붉은 색채를 띤 거대한 식물이 그의 앞을 꼿꼿이 가로막고 있다. 그는 이별의 상처에서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화면을 벗어나려 하는 여인은 한없이 자유로워 보인다. 그녀의 드레스는 마치 천사의 날개 자락이라도 되는 듯이 가볍게 펄럭인다. 그녀에게는 이별이 해방이자 자유다. 이별의 칼날을 남자의 심장에 꽂아 넣자 그녀는 행복해지고 평화로워진 것 같다. 고통스러운 사랑으로 인한 상처로 여성혐오증까지 앓았다는 뭉크의 비관적 세계관이 드러나는 장면이다.
남자는 자신의 트라우마에 갇혀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고, 여자는 과거의 기억에서 벗어나 훨훨 날아가는 듯 보인다. 한때는 아름다운 풍경이었을 이 장소는 남자가 흘린 피로 곧 검붉게 물들어버릴 것만 같다. 때로는 인간의 고통이 자연을 삼켜버릴 듯 크고 깊고 치명적일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어떤 슬픔은 주변의 환경마저 고통과 우울의 색채로 물들인다.
-정여울, <오직 나를 위한 미술관>, 웅진지식하우스, 1만9000원
조인경 기자 ikj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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