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순영 KB금융지주 금융AI센터장
IT업계에서 금융권으로…다양한 실무 경험으로 승부
"사소한 업무라도 깔끔하게 하는 습관 지녀야"
"경계라는 선을 뛰어넘을 것이 아니라 지워버려라." 오순영 KB금융지주 금융AI센터장(상무)은 매번 '경계'를 없앴다. 오 상무는 한글과컴퓨터에서 창립 이래 첫 여성 최고기술책임자(CTO)에 올랐고, 그 이후 금융권으로 자리를 옮겨 인공지능(AI) 관련 업무를 진두지휘하고 있다. 자유로운 IT업계에서 보수적인 금융권으로 자리를 옮기는 걸 주위에서 만류했지만, 그런 점이 오히려 오 상무에게는 동기부여가 됐다.
그는 스스로 본인을 '불나방' 같은 특징을 지니고 있다고 표현했다. 리스크가 있어도 관망하기보다는 달려드는 길을 택했고, 기꺼이 책임을 지겠다는 생각이 강했다. 그는 'SKY·석박사 출신'이라는 금융권의 임원 공식에 맞지 않는 사람이지만 스스로 '경계'를 지웠고, 업계 1위인 KB금융지주에서 AI를 이끄는 사령탑에 올랐다.
닷컴벤처 '막내 개발자'에서 KB 임원까지
오 상무의 첫 직장은 닷컴벤처, 지금으로 따지면 스타트업이었다. 막내 개발자로 업무를 시작한 그는 서버 개발부터 영업까지 따라다니며 업무를 배웠다. 이후 한글과컴퓨터에서 17년간 일하면서 개발부터 경영 업무까지 익혔다. 그는 "다양한 운영체제에서 돌아가는 제품을 개발했기 때문에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며 "또 한·중 합작법인을 설립하면서 공동대표도 맡았기 때문에 경영까지 경험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한글과컴퓨터 근무 시절에도 그는 어려운 프로젝트를 마다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다. 오 상무는 "실무자 입장에서 말도 안 되는 업무가 주어지면 왜 해야 하느냐는 고민을 많이 한다"며 "정말 말이 안 되면 말을 했지만, 말이 되는 프로젝트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매우 사소한 업무라도 프로처럼 깔끔하게 마무리하는 습관을 지녀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 상무는 "그런 습관과 책임감, 노하우가 쌓이면 어느 순간 다른 사람들과 다른 경지에 오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글과컴퓨터에서 최고의 자리까지 올랐지만, 그는 다시 다음 도전을 생각했다. 오 상무는 "금융 쪽에서 일하지 않았기 때문에 여의도가 도전해보고 싶은 챌린지가 됐다"며 "커리어 상의 새로운 경험은 늘 '호기심'이 강하게 작용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금융권에 온 그는 마음가짐과 태도가 더 무겁다는 것 외에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오 상무는 "공학도라 새로운 용어와 비즈니스를 이해하고 배우는 과정이 좋다"며 웃었다.
"예의는 갖추되, 내 고유한 색깔은 유지"
1977년생인 오 상무는 임원회의에 들어가면 막내급이다. IT업계에서 자유롭게 지내던 그가 보수적인 금융권에 적응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었지만 기우였다. 오 상무는 "KB금융은 문화 자체가 상당히 포용적이고, 따뜻한 조직문화여서 초기에 적응을 빨리했다"며 "물론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다니던 옷차림은 KB에 맞춰 바꾸긴 했지만, 저의 고유한 '색'을 죽이진 않았다"고 설명했다.
오 상무가 이끄는 금융AI센터는 KB국민은행과 KB금융지주의 겸직 조직이다. KB 내에서 AI 관련 신규 기술을 가장 먼저 활용하고 KB 내 다양한 업무에서 AI 활용 사례를 발굴하고 전파한다. 금융특화 언어 모델 등을 개발해 KB의 AI 서비스 개발에 활용하고, 모바일 버전의 AI 금융비서도 개발해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다.
그는 KB만의 강점에 대해 "토스나 카카오뱅크보다 보수적이라거나 느리다고 말하지만 와서 보니 오래 전부터 고객의 돈을 가지고 일을 했고 기본적인 마인드가 '신뢰' '건전성'이기 때문에 위험관리를 잘한다"며 "KB금융 임원들은 변화에 대해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오 상무는 "오랜 시간 금융에서 다양한 환경 변화에 따른 노하우를 축적했고, AI 서비스의 학습데이터 기반이 되는 KB만의 금융 콘텐츠가 상당히 풍부하다"며 "앞으로 AI 시대에 큰 경쟁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엄격한 '잣대'보다는 일에 대한 적극성 필요"
그는 '남성·SKY·석박사' 출신이라는 흔한 금융권 임원 공식에 해당하지 않는다. 하지만 실무 경력은 어느 누구보다 화려하다. 오 상무는 "이론적인 공부, 논문 이런 걸 떠나서 모든 플랫폼별로 (업무를) 다 해봤고, AI 조직을 키워서 사업화도 했다 보니 그런 경험을 통한 노하우가 있다"고 자신했다. 오 상무는 "책임감을 가지고 했던 일이 쌓이다 보니 실력이 되고 내공이 됐다"며 "투자가 안 되던 AI가 트렌드가 될 줄 아무도 몰랐고, 앞일은 예측할 수가 없다"고 덧붙였다.
특히 AI 기술이 필수인 시대가 되면서 오 상무의 커리어는 빛을 발했다. 그는 "AI가 모든 기술의 양념장 같은 역할이 되다 보니 드론, 모빌리티 등 이것저것 공부하게 되면서 융복합이 잘 되는 사람이 됐다"며 "한 가지만 잘하는 인재보다 시너지 효과를 찾아낼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어느 순간 어제의 내가 아니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시키는 일을 수동적으로 해내는 것이 아니라 경영자의 관점에서 어떤 것을 해냈을 때 만족도가 높을지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일은 따라붙을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다양한 커리어를 갖고 있는 그는 대학생과 사회초년생들에게 멘토 역할도 꾸준히 하고 있다. 오 상무는 "업계를 불문하고 임원 경쟁은 치열하고, 여성이 적은 것은 비슷하다"며 "대체로 여성의 경우 남성보다 자신에 대한 잣대가 높은 것 같다"고 말했다. 대학생 멘토링을 하면 자신의 코딩 실력에 대해 잘한다고 말하는 여대생은 드물다는 것이다. 그는 "'내 실력은 아직 안 되니까 다음에'라고 하기보다 자신이 나서서 하겠다는 적극성을 갖고, 자신에 대해 관대해질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오순영 상무는
1977년생으로 서울 대진여고, 서울여대 컴퓨터학과를 졸업했다. 2020년 한글과컴퓨터 첫 여성 CTO(전무)로 발탁되며, 주목받은 이후 한컴인터프리 대표 등을 지냈고 지난해 5월까지 한컴인텔리전스 인공지능사업본부 CTO를 하다가 KB금융지주 금융AI센터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IT여성기업인협회 부회장, AI미래포럼 공동의장단, 한국여성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이사 등 여성 IT 인재들을 위한 외부활동도 활발히 하고 있다.
부애리 기자 aeri345@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