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물 이해한다는 건
세상을 더 아는 것
세상 변화 담은 건축물 30선
시각 따라 다양한 세상 볼 수 있
우리는 수많은 건축물 속에서 살아간다. 인간에게 가장 필수적인 3요소로 ‘의식주(衣食住)’를 꼽듯 집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 또 우리가 일하는 사무실, 살면서 한번은 찾게 되는 관공서, 역과 터미널, 마음의 휴식을 위해 찾는 미술관과 박물관 등 모든 것이 벽과 기둥, 옥상으로 둘러싸인 건축물들이다. 우리의 삶은 건축물과 건축물 사이를 오가는 연속이다.
하지만 우리는 건축물들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 ‘유현준의 인문 건축 기행’의 저자인 유현준 교수는 "수십 개 정도의 건축물을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다면 세상을 조금 더 알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획일적인 찍어내기 건축 속에서는 찾기 어려울지 몰라도, 단순히 ‘공구리’로 지어진 게 아니라 인간의 생각이 세상의 물질과 만나서 만들어진 ‘새로운 생각’을 통해 세상의 변화를 유추할 수 있는 물체라는 뜻이다.
책에서 저자가 꼽은 30개의 건축물은 세상의 변화를 담거나 혹은 이끌어낸 상징들이다. 그런 점에서 책에서 처음 소개되는 건축물이 ‘빌라 사보아’라는 점은 인상 깊다. 이를 설계한 르 코르뷔지에는 철근 콘크리트 기둥이라는 새로운 양식을 만들면서 서양 건축을 근본적으로 탈바꿈시킨 인물로 평가받는다. 건물이 땅에서 떨어질 수 있었고(필로티), 벽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로운 평면과 입면을 만들 수 있게 됐다. 세로로만 가능했던 큰 창문을 얼마든지 가로로도 만들 수 있게 됐고, 평평한 지붕을 통한 옥상정원도 만들 수 있게 됐다. 이렇게 만들어진 ‘근대 건축의 5원칙’이 적용된 게 빌라 사보아다. 르 코르뷔지에는 건축을 통해 세상을 바꿨고, 그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건축을 통해 영구적으로 남겼다.
하지만 때로는 변화에만 열중해 정작 그 안에 들어가는 사람들을 무시하고 지어진 건축물들도 있다. 루이스 칸이 지은 ‘리처드 의학연구소’가 그 예 중 하나다. 칸은 20세기의 위대한 건축가로 통한다. 그는 ‘주인 공간’과 ‘하인 공간’을 명확히 구분한다는 의도로 ‘리처드 의학연구소’를 설계했다. 그의 의도는 명확히 구현됐다. 하지만 연구원들은 수시로 인원이 확장·축소를 거듭해야 하는 연구소라는 특징이 고려되지 않은 건축물로 여겨 불편해했다. ‘일해 본 곳 중 최악의 실험실 건물’이라는 평까지 나왔다.
칸이 다음으로 지은 건물 역시 연구소였다. ‘소크 생물학 연구소’를 설계하면서 칸은 하늘을 입면(파사드)으로 삼는다는 빼어난 미학을 자랑하는 중정을 만들면서도 동시에 연구소의 특질을 살려냈다. 연구공간을 광활한 운동장처럼 만들어 언제든지 자유롭게 팀별로 공간을 늘리고 줄일 수 있도록 꾸몄다.
‘닫는 글’에서 저자는 사람의 생각을 바꾸는 과학적으로 증명된 방법은 ‘공간’이라고 강조한다. 건축물이라는 건축가의 사상이 담긴 곳에 들어서는 순간 건축가가 세상을 바라봤던 방법으로 세상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매일 접하는 같은 공간도 그 속에서 조금씩 다른 시각을 찾아낼 수 있다면 건축을 통해 조금은 더 다양하게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가질 수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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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준의 인문 건축 기행 | 유현준 | 을유문화사 | 492쪽 | 1만9500원
이춘희 기자 spri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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