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EC 등의 감산 이어지며 가격 상승 부추겨
사우디 국영 아람코의 지분 추가 상장도 상승 요인
이란의 원유시장 복귀, 중국과 미국의 경기 부진은 하락 요인
국제유가가 최근 7거래일 연속 상승해 장중 86달러를 돌파하며 연중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주요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의 감산 정책이 예상보다 길어진 탓이 크다. 국내 정유 상장사들의 주가도 덩달아 치솟은 가운데 증권가에서는 유가 불안정성이 시장에 미칠 악영향을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5일 블룸버그 등에 따르면 전날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서부텍사스산 원유(WTI) 선물 가격이 장중 배럴당 86.06달러까지 치솟으면서 올해 들어 최고가를 경신했다. 지난해 11월 중순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사우디를 비롯한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 등 비OPEC 주요 산유국들로 이뤄진 OPEC+가 감산을 연장하기로 결정할 가능성이 커지면서 공급 요인이 유가 상승세를 부추기고 있다. 최근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세계 최대 석유회사인 사우디 국영 아람코가 최대 500억 달러(약 60조원) 규모의 지분 추가 상장을 추진하고 있다고 보도한 점에 비춰 사우디의 감산이 연말 또는 내년까지 이어질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추가 상장 예상 시점인 연말까지는 매각 흥행을 위해 국제유가를 최대한 끌어올릴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오재영 KB증권 연구원은 "사우디의 자발적 감산이 연말까지 연장된다면 국제유가는 90달러대 이상으로 상승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국제유가가 상승하자 국내 정유 상장사들의 주가도 덩달아 뛰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전날 S-Oil 주가는 전 거래일 대비 5.46% 급등한 7만7200원에 마감됐다. GS주가도 5.13% 오른 3만9950원, SK이노베이션은 1.99% 상승한 17만9500원에 각각 거래를 마쳤다. GS 주가는 지난 5월22일(4만원) 이후 약 3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치다. 유가 관련 상장지수펀드(ETF)도 오름세다. KODEX WTI원유선물(H)은 최근 4거래일 연속 상승세를 보이며 전날 1만5640원에 마감했다. 이는 지난해 11월16일(1만5655원) 이후 약 10개월 만에 가장 높은 것이다.
증권가에서는 유가 불안정성이 주식시장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하며 주시하는 분위기다. 유가가 급격히 올라 미국의 고용지표 둔화 등에 따른 물가 압력을 희석시키면서 국채금리를 상승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개발연구원은 지난달 10일 발표한 경제전망에서 올해 국제유가 평균 도입 단가를 기존 배럴당 76달러에서 81달러로, 내년 단가는 기존 68달러에서 76달러로 각각 상향 조정하기도 했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미국의 고용지표는 배드 뉴스(Bad news)보다는 '골디락스(경제가 고성장을 이루면서도 물가상승이 없는 상태)'로 해석되고 있다"며 "오히려 진정한 의미의 배드 뉴스는 불안한 유가"라고 지적했다. 이어 "중국 수요 둔화 가능성이 커지고 있지만 원유시장 내 수급 및 재고 불안에 따른 유가 추가 상승 리스크는 현 시점에서 가장 큰 배드 뉴스"라고 강조했다. 황수욱 메리츠증권 연구원도 "유가 상승이 인플레이션 기대 자극으로 이어질지 모니터링이 필요하다"며 "인플레이션 기대 통제가 금리 인상의 빌미가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 같은 국제유가 추이가 연말까지는 이어지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핵심 변수는 이란이다. 백영찬 상상인증권 연구원은 "지난달 이란과 미국의 수감자 교환이 진행되고 한국에 동결된 이란 원유 수출 대금도 해제되는 등 긴밀한 교류가 이어지고 있다"며 "이러한 추세가 지속된다면 핵합의 임시 타협점을 찾을 확률이 높아지고 이란의 원유시장 복귀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란의 원유 공급 재개는 사우디 감산을 상쇄하며 타이트한 수급을 완화할 수 있는 요인"이라고 덧붙였다.
중국과 미국의 경기 부진도 유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중국의 소비와 투자가 모두 부진한 가운데 경기가 더 위축되면 원유 수요에 하방 압력이 가해지기 때문이다. 백 연구원은 "과거 금리 인상을 통한 물가 제어 국면은 어떤 경로로든 경기 침체를 불러왔던 만큼 긴장감을 늦출 수 없는 시점"이라며 "미국 원유 수요는 누적된 긴축 효과를 반영하며 유가의 하락 요인으로 작용할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손선희 기자 shees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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