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몇몇 중소 건축사사무소 간 감리업무 수의계약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최근 아파트 철근 누락 사태와 관련해 감리의 역할·책임론이 대두되고 있다. 낡은 병폐에 대한 지적도 적지 않다. 이른바 '엘피아(LH와 마피아의 합성어)' 의혹의 중심에 설계·감리자가 있기 때문이다.
◆전관-감리업체 이해관계 속 엘피아 양산
감리는 건설공사 시공 단계에서의 감사 행위를 뜻한다. 수행 주체는 건축사사무소나 건설엔지니어링사업자다. 공사 건별로 움직이며, 해당 공사가 설계대로 시공되는지 여부를 확인한다. 품질 등에 대한 기술 지도도 한다. A건축사사무소 관계자는 "감리는 컨설팅 성격의 건설사업관리(CM·PM) 업무와는 구분되며 감리자 대부분 자격증이 있고 일정 경력도 요구된다"고 설명했다.
이런 감리가 엘피아와 엮인 데에는 공공공사 수주 문제가 있다. 건설사도 대형보다는 중소형에서 공공공사 비중이 크듯 감리업체 역시 마찬가지다.
인천 검단신도시 공공아파트 지하주차장 감리를 맡은 M건축사사무소(2022년 매출액 기준 22위)는 LH 철근 누락 아파트 15개 중 3개 단지의 감리를 담당했는데 이곳에는 20여명의 LH 전직 임직원이 재취업해 있다. 다만 M건축사사무소는 이들 전원이 생계형 현장 기술직이라고 했다.
25위권 밖인 K건축사사무소는 2개 현장에 이름을 올렸다. 이곳의 LH 전관 재직자 수는 4명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더불어민주당 김두관 의원실에 따르면 LH에서 근무한 2급 이상 퇴직자가 최근 5년간 재취업한 용역업체 중 LH와 계약한 업체는 9곳이었다. 이들 업체가 2019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LH와 계약한 설계·감리 건수는 203건, 금액은 2319억원 규모로 조사됐다.
B건축사사무소 관계자는 "전관인 분들은 대개 50세 이상으로 나이가 많고 기존에 감리 업무를 충분히 하지 않은 경우도 태반이어서 공공사업 수주를 위한 영업 목적으로 영입된다"며 "설계·감리 계약은 건설사가 아닌 LH, 지방자치단체 등 발주자와 맺기 때문에 전관 인사나 중소 건축사사무소 양쪽이 이해관계가 맞는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구조안전성 따질 인력도 부족…부실로 이어져"
전관이 있는 감리업체여도 부실이 발생하지 않으면 파장이 덜했을 수 있다. 하지만 인력 부족과 노후화 문제가 심화하면서 부실 감리 위험은 커진 상태다. 새로운 공법을 받아들이는 속도도 느릴 수밖에 없다.
건축설계가 항상 원안대로 가는 것은 아니다. 발주자가 내놓은 기본설계를 두고 시공자가 대안설계를 제시하기도 하고, 정비사업의 경우 조합의 요구에 따라 변경되기도 한다.
문제는 설계가 바뀔 때마다 구조안전성을 살펴야 하는데 인력 부족 등 여건이 여의찮다는 것이다. C건설사 관계자는 "대안설계를 낼 때 구조안전성을 점검할 수 있는 곳은 대형 건설사 정도"라며 "감리가 짚어주면 좋겠지만, 현장 투입 인력에서부터 어려움을 겪기도 해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래서 건설현장이 바쁘거나 해당 건축사사무소 인력이 부족하면 전관 인사가 현장에 투입되기도 한다고 업계 관계자는 전했다. 이는 부실 감리의 원인이 된다. 실제로 부실 단지 15곳 중 LH가 직접 감리한 5곳은 법정 기준 절반 수준의 인원만 업무를 수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례로 충남 공주의 LH 아파트 단지는 8명 이상의 감리 인력을 배치해야 하는데 업무를 담당한 건 2명뿐이었고, 그마저도 비상주 인력이었다.
D건설사 관계자는 "서울만 해도 지역별로 자주 발탁되는 감리업체들이 있다"며 "시공사만 싸잡아 탓할 게 아니라 설계상의 잘못이 분명한 현장이나 감리의 책임도 분명하게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노경조 기자 felizkj@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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