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선 용산 民心…"권, 당 복귀 의지 확고"
남북 경색 국면에서 통일부 역할 '고군분투'
장관 대체자 고심…"누가 와도 무게감 부족"
통일부가 권영세 장관의 거취를 놓고 고심에 빠졌다. 권 장관은 중량감 있는 여당 실세였던 만큼 한때 폐지론이 거론되던 통일부의 입지를 다졌다는 평가를 받는데, 내년 4월 국회의원 총선 출마 의지를 드러내면서 통일부 안팎에서 다양한 관측이 나온다.
21일 통일부와 여권에 따르면 권 장관은 최근 대통령실에 개각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정부 관계자는 "국무위원 스스로 개각을 요청했다는 것은 곧 총선에 출마하겠다는 이야기"라며 "사실상 사의를 표명한 셈"이라고 말했다. 권 장관은 지난 16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정치인은 정치로, 궁극적으로 돌아가야 한다"며 여의도 복귀를 시사했다.
'4선 중진' 권 장관의 현 지역구는 서울 용산구다. 보수 성향이 짙은 강남 3구를 제외하면 서울에서 유일한 여당 진영이자, 대통령실이 자리 잡은 곳인 만큼 반드시 사수해야 하는 고지다. 다만 대통령실 이전으로 지역구 민심이 악화됐고, '이태원 참사'까지 겹치면서 여권을 향한 시선이 곱지 않다. 측근으로 꼽히는 박희영 구청장도 사실상 직무 수행이 불가능한 상태로 자리만 지키고 있다. 권 장관이 서둘러 지역구로 돌아가 민심을 수습해야 하는 이유다.
권 장관은 꾸준히 원대 복귀 1순위로 거론됐다. 본인도 통일부 잔류보다 총선 출마 의지가 강한 것으로 전해진다. 일각에선 대통령실이 총리직을 제안하거나 국가정보원장으로 이동시킬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다만 대통령의 그림자 격인 국무총리는 권 장관 입장에서 실익이 없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국정원의 경우 대북 업무의 연속성이나 검사 시절 파견 경험 등이 언급되지만, 이 또한 정치인 생명을 고려하면 선택지에 들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여권 관계자는 "권 장관은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북한·안보 관련 사안에서 선명한 목소리를 내면서 정부 기조를 이끌었다"며 "다만 총대를 멘 만큼의 효용이 없어 '윤 측근' 이미지를 벗고 싶어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어 "대선 때 선거대책본부장,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부위원장까지 지내고 통일부 장관 자리를 받은 것도 만족스러운 결과는 아니었을 것"이라며 "총리직을 비롯한 내각 자리를 모두 고사하고 국회로 돌아가려는 것도 이런 의중이 반영된 것 아니겠나"라고 귀띔했다.
당 복귀가 결정돼도 권 장관의 고심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권 장관은 온화하면서도 합리적인 지략가로 꼽힌다. 보수 진영에서 특정 계파에 몸담지 않고 친이-친박 갈등을 중재했던 것도 권 장관이었다. 그러나 적을 만들지 않은 성향은 양날의 검으로 평가된다. 정치인의 관점에선 '확실한 내 편'이 없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현재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를 중심으로 꾸려진 당 지도부가 '중진 권영세'의 복귀를 견제한다면 셈법이 더욱 복잡해질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남북 경색 속 고군분투…통일부, 대체자 고민
권 장관은 통일부 수장으로 고군분투했다는 평가가 대체적이다. 통일부는 문재인 정부 시절 '탈북어민 강제북송' 등 사건에 휘말리면서 폐지론까지 나왔던 부처다. 남북관계도 2019년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된 뒤 경색 국면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성과를 내기 여의치 않은 시기지만, 권 장관은 기울어진 남북 간 원칙을 바로잡기 위해 애를 썼다는 평가를 받는다. 올해 4월 통일부 장관으로 10년 만에 대북 규탄 성명을 발표했고, 지난해 11월에는 '대북전단금지법은 위헌'이라는 의견서를 헌법재판소에 제출한 바 있다.
다만 조직 장악력이 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있었다. 정부는 올해 3월 처음으로 북한인권보고서를 공개 발간한 바 있는데, 영문판에 '정확성을 보증할 수 없다'는 취지의 면책조항이 삽입된 사실이 뒤늦게 확인된 것이다. 장관보다 하부 결재라인에서 나온 실책으로 알려졌으나, 이 사건으로 통일부가 대통령실 감찰까지 받은 것은 임기 내 '옥에 티'로 남았다.
권 장관의 무게감이 컸던 만큼 통일부의 고민은 깊다. 대통령실도 마땅한 대체자를 찾지 못해 고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통일부 안팎에선 김천식 전 통일부 차관, 김병연 서울대 교수 등 서너 명이 후보군으로 거론된다. 차관까지 교체될 경우에는 강종석 통일부 기획조정실장 또는 통일부 출신 백태현 국가안보실 통일비서관이 자리를 메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통일부 관계자는 "탈북어민 강제북송 사건으로 직원들이 감사에 조사까지 받으면서 상당히 위축된 분위기였다"며 "통일부가 나름대로 '이런 문제가 있다'고 먼저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것은 권 장관이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누가 오든지 무게감을 온전히 대체하긴 어려울 것으로 본다"며 "부처 입장에선 현실적으로 올해 국정감사가 가장 큰 고민이다. 통일부가 주목받는 일이 생길 경우 신임 장관이 부임 수개월 만에 대처가 가능할지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장희준 기자 jun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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