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역사상 최단기간 100만 돌파
2017년 정치 환경도 영화 흥행에 영향
해마다 5월23일, 김해 봉하마을 추모 열기
“지지율 2% 꼴찌 후보에서 대선후보 1위, 국민의 대통령이 되기까지 2002년 전국을 뒤흔들었던 노무현, 그 기적의 역전 드라마….”
다큐멘터리 영화 ‘노무현입니다’는 그렇게 대중에게 소개됐다. 정치인을 다룬 영화에 관객이 얼마나 호응할지 반신반의하던 분위기도 있었다. 다큐멘터리 영화의 특성상 상업 영화와 같은 관객 동원력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도 그런 분위기의 원인이었다.
그러나 영화 ‘노무현입니다’는 2017년 5월25일 개봉 첫날부터 영화계를 놀라게 했다.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에 따르면 개봉 첫날 누적 관객 8만6144명을 기록하면서 돌풍을 일으켰다. 당시 개봉 영화 가운데 흥행 2위의 기록이다.
결국 다큐멘터리 영화의 새로운 역사를 썼다. 영화 ‘노무현입니다’는 개봉 열흘 만인 2017년 6월3일 105만3177명의 누적 관객수를 기록하며 100만명을 돌파했다. 다큐멘터리 영화 가운데 최단기간 100만명을 돌파한 영화는 정치인 노무현의 삶을 조명한 작품이었다.
다큐멘터리 영화 가운데 대표적인 흥행작인 ‘워낭소리’,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와 ‘노무현입니다’가 달랐던 것은 이념과 정파의 대립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정치인 관련 영화였다는 점이다.
관객수만을 작품의 평가 척도로 삼는 것은 경계할 대목이지만, 흥행 측면에서도 영화 ‘노무현입니다’는 기록을 세웠다. 누적 관객수 185만4867명.
한국 영화 1000만 시대를 살아온 지난 세월을 고려할 때 많지 않은 관객처럼 보이지만 최근 영화 성적표와 비교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올해 개봉한 한국영화 가운데 최고 흥행작도 아직은 누적 관객수 측면에서 영화 ‘노무현입니다’를 넘어서지 못했다.
영화 '노무현입니다'는 6년 전 흥행기록이지만, 대단한 기록을 남긴 셈이다.
무엇이 관객을 영화 ‘노무현입니다’로 이끌었을까. 이는 정치인 노무현의 삶 그리고 2017년 당시의 정치 상황과 관련이 있다.
정치인 노무현은 2009년 5월23일 생을 마감했다. 갑작스러운 그의 서거는 전국을 충격에 빠뜨렸다. 현재 더불어민주당 소속의 여러 정치인은 그날 정치인 노무현의 죽음에 관한 부채 의식이 정치 동력의 한 축이다. 노무현 정신 계승을 위해 정치를 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들에게 5월은, 특히 23일은 시린 날이다. 해마다 5월23일이 다가오면 경남 김해 봉하마을은 추모의 시간이 이어진다. 여야 정치인들이 그곳을 찾아 노무현 전 대통령 묘소를 참배한다. 그날 그 사건이 일어난 지 올해로 14년이 됐지만, 아픔의 기억은 쉽게 가시지 않는다.
영화 ‘노무현입니다’는 정치인 노무현이 생을 마감한 지 8년 만인 2017년 개봉했다. 대한민국 대통령은 이명박, 박근혜를 거쳐 문재인이 담당하던 시기다. 특히 영화 ‘노무현입니다’가 개봉한 2017년 5월 25일은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직후다.
대선 승리의 기쁨과 정치인 노무현의 한을 조금이나 풀어줬다는 안도감이 영화 ‘노무현입니다’ 흥행의 토대가 됐는지도 모른다. 당시 문재인 대통령 국정운영 수행 지지도는 80%를 넘어설 정도로 훈풍이 이어질 때다.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이 대통령을 맡게 된 상황, 영화 ‘노무현입니다’는 지지층들의 훈풍을 타고 흥행의 기반을 넓혔다.
정치 환경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지만, 흥행의 배경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인간 노무현의 삶과 정치 스토리 자체가 가진 극적인 요소도 흥행의 배경에서 빼놓을 수 없다. 실제로 대선 레이스에서 하위권에 있던 인물이 불과 1년 만에 지지율을 수직으로 상승시키며 대통령에 당선되는 과정은 그 자체로 드라마다.
영화 ‘노무현입니다’는 작품의 완결성과 무관하게 시작부터 흥행할 수밖에 없었던 영화인지도 모른다. 정치에 우연이 없듯이 영화를 향한 대중의 선택에도 우연은 없다. 무엇이 대중의 마음을 움직였는지, 그들을 영화관으로 향하게 했는지 곱씹어볼 대목이다.
다시 5월 23일이 다가온다. 봉하마을 주변은 떠나간 어느 정치인을 추모하는 노란색 리본과 바람개비가 휘날릴 것으로 보인다.
2009년 5월을 기억하는 이들에게 2023년 5월은 어떤 의미일까.
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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