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영국 北대사관 공사 출신, 강남 발탁
강남 보수층 정서 고려? 유창한 영어 때문?
태영호 논현1동·역삼1동 밀렸지만 압구정 압승
2020년 2월27일 김형오 당시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공천관리위원장이 밝힌 내용이다. 미래통합당이 서울 강남갑 지역구에 주영국 북한대사관 공사 출신 태영호(당시 후보 이름은 태구민) 후보를 발탁한 것은 제21대 총선의 주요 관전 포인트였다.
공천은 전쟁이다. 특정 지역구에서 4년, 8년, 12년에 걸쳐 바닥 민심을 닦고 또 닦아도 공천장을 받기 어려운 게 정치 현실이다. 당의 후보 공천을 받아야 당선을 기대할 수 있는데 공천장 받기가 어렵다는 얘기다.
공천도 다 같은 공천이 아니다. 출마만 하면 당선되는 곳은 금값이다. 그곳을 노리는 이는 하나둘이 아니다. 경쟁력과 정치적인 스펙을 갖춘 후보가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전국 253개 지역구(제21대 총선 기준) 가운데 여야가 “이곳은 확실한 승리 지역”으로 꼽는 곳은 의외로 많지 않다.
당시 미래통합당 입장에서 서울 강남은 바로 그 알토란과도 같은 지역구다. 국민의힘 간판만 달면 당선 가능성이 수직으로 상승하는 그곳. 누구를 공천할 것인지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미래통합당은 전략적으로 많은 생각을 한 끝에 태영호 후보에게 그 자리를 배정했다. 정치권에서는 “왜 태영호일까”라는 의문이 뒤따랐다. 서울 강남과 북한 출신 태영호의 연관성을 찾기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내에서는 북한 권력층 비판에 앞장섰다는 점에서 강남 보수층 유권자들이 지지를 보낼 것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영어가 유창한 북한 외교관 출신이라는 스펙에 주목하는 시선도 있었다.
정치권에서 탈북자를 공천하는 것은 처음이 아니었지만, 누구나 선망하는 알토란 지역구 공천을 준 것은 처음이었다. 분명한 것은 태영호 후보 발탁이 정치적 의미를 담고 있다는 점이다. 태영호 후보의 발탁은 미래통합당의 총선 전략에서 보수 색채 강화를 상징하는 장면 중 하나다.
강남의 지역정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국내에서 엘리트 코스를 밟은 인물을 발탁할 수도 있었지만, 태영호 후보 발탁으로 결론을 내렸다.
태영호 후보의 당선은 큰 어려움이 없었다. 더불어민주당은 국회 국방위원장을 지낸 4선 경력의 김성곤 후보를 내세웠지만 강남의 벽을 뚫기는 어려웠다. 김성곤 후보는 39.6%를 올렸다.
태영호 후보는 58.4%의 득표율을 올리면서 당선됐다. 다만 강남구갑 지역구의 세부 득표율을 분석해보면 태영호 후보가 밀린 곳도 있었다.
논현1동과 역삼1동에서는 김성곤 후보가 태영호 후보를 앞섰다.
태영호 후보가 이들 지역의 열세에도 여유 있게 승리를 거둔 것은 절대 강세를 보인 지역이 있기 때문이다. 압구정동과 청담동, 신사동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압구정동은 태영호 후보에게 1만1565표, 김성곤 후보에게는 3046표를 안겼다. 태영호 후보가 압구정동에서만 3배 이상의 득표를 올린 셈이다.
압구정동은 2016년 제20대 총선에서도 새누리당(미래통합당 전신) 이종구 후보에게 몰표를 안겨준 바 있다. 다만 당시 이종구 후보는 압구정동에서 8301표를 얻었다.
압구정동은 대대로 보수정당 투표 성향이 강했는데 태영호 후보는 2016년 새누리당 후보가 얻은 것보다 더 많은 표를 받았다.
압구정동은 현대아파트, 한양아파트 등이 있는 아파트 밀집 지역으로 서울의 대표적인 부촌 중 하나다. 아파트 재건축 문제에 관심이 많으며 역대 선거에서 보수정당이 강세를 보인 지역이다.
당시 공천을 둘러싼 의문 때문에 강남에서 보수정당 후보가 고전하는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관측도 있었지만, 압구정동의 탄탄한 지지를 토대로 태영호 후보는 승리의 주인공이 됐다.
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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