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비판 발언 계기 은행주 4~10% 급락
민간 주도 성장 강조하다 말 뒤집기 논란
[아시아경제 손선희 기자] 외국인이 나흘 동안 국내 4대 금융지주 주식을 2000억원어치 팔아치웠다. 윤석열 대통령이 민간 시중은행을 향해 연일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내자 당국의 규제 강화 우려가 커지면서 투자심리가 급격히 악화한 탓으로 풀이된다.
17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외국인 투자자는 지난 13~16일 4거래일 동안 신한·KB·우리·하나금융지주 주식 1930억1700만원치를 순매도한 것으로 집계됐다. 해당 기간 KB금융 971억원, 하나금융지주 433억원, 신한지주 423억원, 우리금융지주 103억원 순으로 순매도 금액이 컸다. 단기간에 집중적으로 매도 물량이 쏟아지면서 주가도 나흘 새 4%, 많게는 10% 넘게 급락했다. 순매도 규모가 컸던 KB금융 주가는 전날 5만원선을 버티지 못하고 4만98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지난 10일(5만5700원) 대비 10.59% 하락해 4대 금융지주 중 낙폭이 가장 컸다.
한국거래소가 발표하는 KRX은행지수는 지난 10일 689.03에서 전날 638.9로 떨어졌다. 상장 시가총액으로는 나흘 만에 7조원에 이르는 투자금이 증발했다.
외국인이 은행주를 집중 매도한 건 최근 윤 대통령이 은행을 직접 겨냥해 '작심 발언'을 쏟아낸 여파로 해석된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금융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은행은 공공재 시스템'이라며 운을 띄웠다. 그러더니 "은행들의 돈 잔치는 안 된다"(2월13일 대통령실 비공개 참모회의), "은행산업 과점 폐해가 크다"(2월15일 비상경제민생회의) 등 발언을 쏟아냈다. 특히 은행 수익의 원천이자 금융산업의 기본 원리라 할 수 있는 예대마진(대출금리와 예금금리의 차이)을 언급하면서 정부의 시장 개입으로 해석될 여지를 남겼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 당시 '민간 주도 성장'을 경제정책 핵심 구호로 내세웠다. 그런데 돌연 민간기업인 은행을 겨냥하고 나선 데 대해 시장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국내 한 증권사 금융담당 연구원은 "연초 (은행들이) 주주환원 의지를 내세우는 등 한국 금융산업에 대한 (외국인 투자자의) 인식이 좋아지는 분위기였는데, 결국 예전으로 돌아가는 것 같다"며 "해외에서는 여전히 한국의 규제 불확실성을 우려한다"고 말했다.
은행산업이 공공성을 띠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일부 공감하는 의견도 나왔다. 다만 명확한 사회적 기준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또 다른 증권사 연구원은 "은행은 분명 공공성이 있는 업종이고 사회적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것은 맞다"면서도 "미국의 '스트레스 테스트'와 같은 기준이 없다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연례적으로 실시하는 '스트레스 테스트'는 미국의 은행권이 미래 위기상황에서 얼마나 견딜 수 있을지 손실 가능 금액을 측정하는 제도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도입됐다.
그는 "명확한 기준에 따라 주주환원을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 등 방식의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며 "지금은 정부 정책 방향에 대한 예측 가능성이 떨어진다는 게 결국 디스카운트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가계부채 부실 등 위기상황이 발생할 경우 이를 흡수하는 것은 결국 은행자본"이라며 "공공성을 위해서는 오히려 은행의 수익성 확보가 필요하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손선희 기자 shees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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