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 2022년 서울에 꽤 오래 머물며 많은 동네를 걸었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도 발길 닿는 대로 실컷 걸었다. 가장 인상적인 곳은 대림동이었다. 한국의 다문화 정책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곳곳에 만들어지는 외국인 거주지에 대해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고, 그때마다 나오는 곳이 대림동의 차이나타운이었다. 가리봉동이나 연남동의 차이나타운에는 몇 번씩 가봤으니 호기심은 더 커졌다.
대림역에서 내려 대림 중앙시장 방향으로 걸으니 중국어 간판이 보이기 시작했다. 중국어가 자연스럽게 들렸다. 시장 안으로 들어가니 한국어보다 오히려 중국어가 더 많이 보이고 들렸다. 중국 식품, 음식점, 환전소, 비자 상담소, 약국, 부동산, 편의점 들이 빼곡하다. 동네 안쪽으로 더 들어가니 다가구 주택지가 나오고, 다사랑어린이공원 벤치에서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중국어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대림2·3동 전체 인구 가운데 약 40%가 중국 국적이라는 통계가 있다. 이 가운데 90%는 한국계 중국인, 즉 조선족이다. 1992년 한국과 중국의 수교 이후 한국을 찾기 시작한 이들은 처음에는 구로공단 인근 가리봉동에 모여 살았다. 그러다 2000년대 초 재개발 등으로 인한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대림동으로 이전, 중앙시장을 중심으로 커다란 공동체가 형성되었다. 연남동과 연희동에도 차이나타운이 있다. 대부분 일제강점기 무렵부터 자리를 잡은 화교들이 모여 살고 있다. 이곳에 살던 중국인들 가운데는 외국인 상인들에 대한 박정희 정권의 억압을 견디지 못해 대만 또는 미국 등 제3국으로 이민을 한 이도 많다. 중국 국적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중국으로는 돌아가지 않은 것이다. 중국으로도, 제3국으로도 떠나지 않고 이곳에 여전히 사는 이들은 그러나 대림동에 비해 비율이 훨씬 낮다. 과연 차이나타운이라고 불러야 할까 싶을 정도다.
그런데 대림동이나 가리봉동은 말할 것도 없고, 연남동이나 연희동만 해도 중국 사회의 주류라 할 수 있는 한족들은 거의 살지 않는다. 한국으로 유학을 오는 학생들도 이 동네를 찾기보다 대학가 근처를 선호한다. 결과적으로 서울의 대표적인 차이나타운에는 20세기 초 등장한 한국과 중국의 디아스포라의 후손들이 모여 사는 셈이다.
1960년대 박정희 정권의 화교 억압 정책 이후 거의 유일한 차이나타운은 인천에 있었다. 화교들이 많이 떠나 축소가 되긴 했지만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교류가 늘면서 중국에 대한 한국 사회의 관심이 커졌고, 긍정적인 미래를 전망하는 분위기도 역력했다. 이후 2003년에는 인천시가 이 지역 일대를 관광상품으로 조성하기 시작, 지금은 유명 관광지로 각광을 받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차이나타운에 부족한 것은 단 하나, 중국인’이라는 제목의 2007년 뉴욕 타임스 기사처럼 인천 차이나타운은 화교를 비롯한 중국인들은 거의 없고, 관광객을 위한 테마파크가 되었다.
2008년 서울시는 연남동 홍대입구역 3번 출구 일대에 차이나타운을 조성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중국 송·명·청 나라의 역사적 이미지를 살려 특화된 상가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물론 다른 지역에 비해 그 주변 화교들의 밀도가 높긴 하지만 그들이 운영하는 음식점 몇 개가 성업 중이라고 해서 차이나타운이라고 주장하기는 어렵다. 그보다는 홍대와도 가깝고 한창 상업화가 빠르게 진행 중인 연남동과의 인접성 때문에 선택했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그런데 서울에 왜 차이나타운을 만들려고 했을까. 박정희 시대만 해도 오히려 차이나타운이 없는 걸 자랑하곤 했다. 전 세계 어디나 다 있는 차이나타운이 한국에만 없는 것을 다른 민족이 뿌리내릴 수 없게 하는 한국만의 강한 민족정신 때문이라고 종종 포장하곤 했다. 그러다가 민주화 이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글로벌화가 온 사회의 화두가 된 이래 글로벌한 도시가 되려면 차이나타운이 있어야 한다고 결론을 내린 뒤 벤치마킹에 열을 올리기 시작했다. 말하자면 ‘글로벌도시’가 되기 위한 요건으로 차이나타운이 부상한 것이다.
그 후로 15년이 지났다. 연남동 차이나타운은 생기지 않았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대림동과 가리봉동의 조선족 인구는 급감했다. 언제까지 이곳을 차이나타운으로 부를 수 있을지 모를 일이다. 2010년대 후반부터 중국에 대한 한국인들의 감정은 싸늘해지고 있고, 팬데믹이 길어지면서 인적 교류 역시 줄어들었다. 누구도 이제 서울에 차이나타운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차이나타운이 있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
이런 한편으로 글로벌을 향한 열망이 가라앉고 국가 간 경쟁과 긴장은 갈수록 고조되고 있는데, 이주와 이민은 여전히 줄어들지 않는다. 미국이나 캐나다 같은 전통적인 이민 국가의 이민자는 팬데믹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 한국도 다르지 않다. 2020년 외국인 인구가 처음으로 감소세를 보였지만 2021년 그 폭은 한결 줄어들었고, 외국인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려는 정부 정책으로 인해 조만간 그 숫자는 늘어날 전망이다.
시대가 달라지면서 특정 국가나 민족과 관련한 테마파크 대신 다양한 사람들이 서로 존중하고 평화롭게 살아가는 것을 추구하는 쪽으로 글로벌 도시의 기준도 달라졌다. 그 때문에 서울에 차이나타운이 있느냐 없느냐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한국 사회에서 중국인들이 얼마나 평화롭게, 삶의 보람을 누리며 살 수 있는지다. 박정희 시대의 배타성과 과잉 민족주의를 통과해온 서울이라면 존중과 평화의 필요성을 더 잘 알고 있지 않을까.
물론 자생적으로 만들어지는 외국인 마을을 나쁘게 볼 일은 아니다. 누가 어디서 어떤 상권을 만들고 집단을 이루어 사는 것은 그들의 선택이며 자유일 뿐만 아니라 그곳을 관광지처럼 누군가 찾는다 해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다만 적어도 국가와 지자체에서 발 벗고 나서서 인위적으로 테마파크를 만들려는 시도보다는 존중과 평화를 우선에 두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서울은 이제 다른 도시를 벤치마킹해서 따라가는 도시가 아니다. 선두에 서서 새로운 화두를 만들고 기류를 이끌어 인류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 도시가 될 만큼 이미 세계적인 도시다.
로버트 파우저 전 서울대 교수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