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화이트칼라 이그젬션' 도입 촉구
재량근로시간제 대상업무 늘리고
특별연장근로 인가사유도 확대해야
[아시아경제 최동현 기자] 스타트업이 이중고를 겪고있다. 투자시장이 얼어붙은 상황에서 지난해 말 8시간 추가연장근로제까지 일몰되면서 연초부터 사업 의욕이 꺾인 분위기다. 업계는 급변하는 경영·노동환경 속에서 주 52시간 근무제로 대표되는 현행 근로시간 제도를 보다 합리적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2018년 7월 주52시간제가 시행되면서 300인 이상 사업장 노동자들의 주당 연장근로 가능시간이 최대 12시간으로 제한됐다. 2021년 7월부터는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에도 최대 12시간을 적용했다. 다만 30인 미만 사업장에 한해 주 8시간의 추가근로를 한시적으로 허용했다. 하지만 이 단서조항은 지난해 12월31일 일몰로 폐지됐다. 올해부터는 30인 미만의 초기 스타트업까지 주 52시간제 부담을 본격적으로 떠안게 됐다.
정치권은 연초부터 8시간 추가연장근로제의 재입법을 추진하고 있다. 이영 중소벤처기업부 장관과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 등 관련 부처 장관도 새해 첫 일정으로 30인 미만 사업장을 찾아 8시간제 연장을 촉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단순 8시간제 연장뿐 아니라 스타트업계 특성에 맞게 노동 관련 제도가 근본적으로 달라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스타트업계가 원하는 것은 한국형 '화이트칼라 이그젬션'(white collar exemption) 제도 도입이다. 이그젬션은 업무 특성상 근로시간을 기준으로 업무성과를 평가하는 것이 부적합한 전문직·관리직·고소득자 등에 대해 근로시간 규율을 적용하지 않는 제도로 미국이 처음 도입했다. 일본도 이 제도를 본떠 2019년 '고도 프로페셔널 제도'를 도입했다. 연봉 1075만엔(약 1억원) 이상 전문직에게는 연간 휴일 규정이나 근로시간 규정을 적용하지 않는 제도다.
창업 2년 미만의 신생 스타트업의 경우 이그젬션 도입이 더욱 시급하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신생 스타트업은 직원수가 적은데다 비즈니스 모델의 빠른 시장 안착과 글로벌 업무 대응 등을 위해 장시간 근로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스톡옵션을 받고 온 초기 임직원이 성과 보상을 위한 자발적 근로 동기가 가장 많이 생기는 때이기도 하다. 황경진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제도혁신사업실장은 "획일적인 근로시간 규제는 스타트업 생존과 발전의 최대 걸림돌"이라며 "스톡옵션을 받은 개발자나 창업 2년 미만 스타트업, 기술기반 스타트업 등에 한해서라도 이그젬션 도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재량근로시간제에서 규정하는 대상업무를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재량근로시간제는 업무방식 등을 근로자 재량에 맡기고 노사가 합의한 시간을 근로시간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현행법에서는 재량근로 대상업무가 연구개발(R&D), 정보처리시스템, 신문·방송, 디자인업무 등 전문업무에만 치우쳐 있다. 경영지원 등 단순 업무는 재량근로 대상이 아니다. 일본은 우리와 달리 경영지원이나 인사·노무까지 이를 폭넓게 인정한다. 국내 한 에듀테크 스타트업 대표는 "창업 초기에는 개발자가 홍보·마케팅 등 경영지원 업무까지 병행해야 할 때가 많은데 이 경우 재량근로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제도 혜택을 받지 못한다"고 말했다. 일의 형태가 변하고 업무 경계도 흐릿한데 법은 시대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특별연장근로 인가사유를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특별연장근로란 '특별한 사정'이 발생했을 때 고용부 인가를 받아 1주 12시간의 연장근로를 초과해서 일 할 수 있게 해주는 제도다. 특별한 사정은 근로기준법 시행규칙 제9조 1항에 명시된 재해·재난 수습·예방, 인명보호·안전확보, 돌발상황, 업무량 폭증,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한 연구개발 등이 해당된다. 그러나 연구개발의 경우 이른바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산업에 속하지 않은 기업은 실질적으로 특별연장근무제를 이용할 수 없다. 황 실장은 "소부장 관련 스타트업이 아니거나 스타트업 업무가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한 일이 아니라고 판단되면 특별연장근로 인가 신청을 하지 못한다"면서 "벤처기업 요건을 갖춘 스타트업이라면 제도를 활용할 수 있도록 개선해야 한다"고 전했다.
최동현 기자 nel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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