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량 등급 CP시장은 안정세 되찾아 금리 부담 줄어
미분양 증가 등 부동산시장 악화하면 PF ABCP 금리 자극 가능성
레고랜드 사태가 촉발한 유동성 경색이 채권시장을 한 차례 휩쓸고 지나갔다. 정부 주도로 시장에 대규모 유동성을 공급하면서 급한 불을 껐다. 하지만 여전히 불안 요인이 남았다. 내년에 금리가 높은 상태를 유지하고 기업들의 실적 악화와 경기 침체로 신용위험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부동산 시장의 미분양이 무서울 정도로 확대되면서 채권시장의 리스크 요인으로 남아 있다. 살얼음판을 걷는 채권시장. 다소 안정되는 듯한 분위기는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가. 현황과 위험 요인을 진단해 본다.
[이민지 기자, 임정수 기자] 정부 지원으로 단기금융시장에 유동성이 공급되면서 기업어음(CP)시장도 안정되는 분위기다. 하지만 미분양 확대 등으로 프로젝트파이낸싱(PF)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시장의 불안은 이어지고 있다. 내년 2월까지 차환 발행해야 하는 PF ABCP 규모만 29조원에 이른다. 이런 가운데 건설경기 악화로 미분양 사업장이 더 늘어나면 시장 유동성에 다시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19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레고랜드 사태 이후 5.54%로 치솟았던 CP 가중평균금리는 최근 하락세를 보이면서 16일 기준으로 5.46%를 가리키고 있다. 발행 금리가 하락하고 투자 수요도 받쳐주고 있다. 그러나 이는 A1급 CP에 국한된다. 한 운용사 채권운용 담당자는 "A1 등급의 경우 만기가 짧은 데 비해 금리가 높고 리스크는 적다"면서 "현재 기관투자자들이 없어서 못 사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14일 3개월 만기로 발행된 유진투자증권(A2+)의 금리는 7.3%로 집계됐는데, 같은 날 같은 조건으로 발행에 나선 SK(A1)의 금리는 5.1%로 큰 차이를 보였다. 특히 증권사 CP의 경우 비은행계 중소형 증권사일수록 수요가 적은 상황이다. 지난 13일 하이투자증권(A1)은 1년 만기 CP를 7.3%에 발행했는데, 다음날 같은 조건으로 CP를 발행한 KB증권(A1)은 5.4%에 금리를 확정 지었다.
그나마 PF ABCP의 경우 전반적인 금리 수준은 다소 낮아졌다. 지난 10월엔 대형 건설사가 보증을 섰는데도 두 자릿수 대를 기록했던 PF 관련 ABCP 금리가 현재 한 자릿수대로 낮아졌다. 최근 유통시장에서 경남은행이 매입 확약에 나선 ‘케이앤제일차(A1)’ 3개월물 금리는 7%대로 책정됐다. 롯데건설이 조건부 채무 인수 의무를 부담한 ‘기은센동대문제이차(A2+)’의 경우 8%의 금리로 거래됐다.
하지만 PF ABCP 시장의 우려는 가시지 않고 있다. 금융연구원에 따르면 내년 2월까지 차환 발행해야 하는 PF ABCP의 규모는 29조원이 넘는다. 아파트 가격 하락과 미분양 증가 속도가 빨라 건설사의 운전자금 부담과 PF 연계 금융회사의 연쇄 충격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PF 업계 관계자는 "기존에 정상으로 분류돼 있던 시행 사업장이 부실 사업장으로 분류되는 사례가 늘어나면 PF ABCP 시장의 유동성 충격이 재발할 가능성이 커진다"면서 "PF ABCP 시장이 경제 전반을 훼손하는 '왝더독(Wag the Dog)' 현상이 심화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화진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부동산 시장 하락세가 더 가팔라지면 PF ABCP 금리를 또다시 자극할 수 있다"면서 "미국의 금리 인상이 이어지고 있고, 원자잿값 인상으로 부동산 시장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정부가 PF 부실 확대를 막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이민지 기자 ming@asiae.co.kr
임정수 기자 agremen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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