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A급 이상의 우량 캐피탈사만 여전채 발행
A급 이하 캐피탈사, 단기 CP 발행이나 은행 대출에 의존
레고랜드 사태가 촉발한 유동성 경색이 채권시장을 한 차례 휩쓸고 지나갔다. 정부 주도로 시장에 대규모 유동성을 공급하면서 급한 불을 껐다. 하지만 여전히 불안 요인이 남았다. 내년에 금리가 높은 상태를 유지하고 기업들의 실적 악화와 경기 침체로 신용위험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부동산 시장의 미분양이 무서울 정도로 확대되면서 채권시장의 리스크 요인으로 남아 있다. 살얼음판을 걷는 채권시장. 다소 안정되는 듯한 분위기는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가. 현황과 위험 요인을 진단해 본다.
[황윤주 기자, 임정수 기자] 채권시장 유동성 가뭄 해갈로 캐피탈사의 자금 조달 길도 열렸다. 하지만 일부 금융지주 계열 캐피탈사만 채권 발행에 성공하는 모습이다. 든든한 '뒷배'가 없는 비금융지주 계열 A등급 이하 캐피탈사는 PF대출 등 자산 부실화 우려 탓에 여전히 자금을 조달하지 못하고 있다. 채권 발행에 성공한 우량 캐피탈사들도 치솟은 조달 비용에 자산을 어떻게 늘릴지 고민이다.
19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최근 1개월 동안 캐피탈채를 포함한 기타금융채는 3조8320억원어치 순(純)발행(발행액-상환액)됐다. 불과 2주 전까지만 해도 자금을 조달하지 못했던 여전사들이 밀려 있던 채권 발행을 한꺼번에 추진하면서 발행액이 많이 늘었다. 레고랜드 사태 이후 2개월가량 자금을 조달하지 못해 만기 도래한 채권을 상환만 하던 것과는 딴판이다. 시장 상황이 빠르게 개선됐다.
하지만 여전채 발행은 AA급 이상의 우량 캐피탈사에 집중됐다. 특히 계열 은행이 있는 여전사 중심으로 자금 조달에 성공했다. KB캐피탈·신한캐피탈·NH농협캐피탈·하나캐피탈·우리금융캐피탈·산은캐피탈·IBK캐패탈·BNK캐피탈·DGB캐피탈·JB우리캐피탈 등이 채권을 발행했다. 비은행 계열 중에서는 신용도가 AA등급 이상인 현대캐피탈과 미래에셋캐피탈, 메리츠캐피탈 정도만 채권 발행에 성공했다.
9월까지 꾸준히 채권을 발행했던 A급 이하 캐피탈사들은 채권 발행을 하지 못해 필요한 자금은 단기 기업어음(CP) 발행이나 은행 대출에 의존하고 있다. 그나마 이마저도 자금 조달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오케이캐피탈·M캐피탈·알씨아이파이낸셜·한국캐피탈·한국투자캐피탈·롯데캐피탈 등은 9월 이후 채권 발행 이력이 거의 없다.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는 "비은행 계열이거나 신용등급이 A급 이하인 캐피탈사들은 여전히 채권 발행이 어려워 영업자금을 확보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캐피탈사들이 집행한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등의 자산 부실화 우려가 잦아들지 않고 있어, 한동안 자금 조달이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채권 발행이 가능한 캐피탈사들도 고금리 부담에 고민이 깊은 상황이다. 현재 은행 계열의 우량 캐피탈사들의 3년 만기 채권 조달 금리가 6~8%대에 형성돼 있다. 조달 비용을 상쇄하고 수익을 내려면 10% 내외로 대출하거나 그 이상의 수익률이 나오는 자산에 투자해야 한다. 하지만 고금리 자산의 경우 부실 우려가 커서 투자나 대출 집행을 공격적으로 늘리기 어렵다.
한 캐피탈사 자금 담당자는 "고비용으로 자금을 조달해 고위험의 고수익 자산을 늘리면 그만큼 부실 우려가 커질 수밖에 없다"면서 "시장의 가뭄이 해갈됐다고 하지만, 공격적으로 자금을 조달하기에는 고금리와 자산 부실화 우려 탓에 상당히 부담스러운 상황"이라고 전했다.
황윤주 기자 hyj@asiae.co.kr
임정수 기자 agremen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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