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인플레 감축법·유럽 에너지 위기 탓
유럽 대표 기업들, 북미로
[아시아경제 정동훈 기자]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nflation Reduction Act·IRA)이 배터리 기업들을 북미로 빨아들이고 있다. 한국 기업엔 또다른 기회다. 유럽 배터리 기업들이 역내 투자보다 북미 진출을 서두르면서 한국 기업들에 ‘무주공산’이 되는 셈이다. 배터리 공급망이 아직 취약한 유럽 시장에 먼저 진출한 국내 기업들의 시장 지배력이 높아질 것이라는 관측이다.
9일 유럽 내 대표 배터리 기업들인 노스볼트, 이탈볼트 등 유럽 배터리 기업들이 인플레 감축법 시행에 맞춰 북미 투자를 앞당기고 있다. 유럽 최대 전기차 배터리 업체인 스웨덴 노스볼트는 독일 하이데 배터리 공장 착공을 연기하고, 미국 내 신규 공장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노스볼트는 IRA로 인해 미국 공장에서 6억~8억달러(약 7895억~1조527억원)의 보조금을 기대하고 있다. 이는 독일이 제공하는 인센티브 1억6000만달러(약 2105억원)와 비교된다. 노스볼트는 폭스바겐, BMW, 골드만삭스가 투자한 스웨덴 전기차 배터리 제조사로 유럽 정부와 기업들이 동아시아의 배터리 산업 장악력을 낮추기 위해 전략적으로 육성하고 있다.
영국과 이탈리아의 배터리 기업 브리티시볼트·이탈볼트의 설립자이자인 라스 칼스트롬 최고경영자(CEO)도 미국 캘리포니아에 스테이트볼트라는 회사를 설립하고 연산 54GWh 규모 전기차 배터리 공장을 구축하려고 한다.
유럽 배터리 기업들이 북미 투자를 서두르는 이유는 역시 인플레 감축법의 세액공제·보조금 때문이다. 인플레 감축법은 북미 지역에서 최종 조립된 전기차에 한해 최대 7500달러(약 985만원)의 세액공제 혜택을 주는 내용 등을 담고 있다. 해당 법은 이르면 내년부터 배터리 제조 업체에게 셀 기준 ㎾h당 35달러(약 4만6000원) 수준의 세액 공제 혜택도 제공한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으로 유럽 내 에너지 비용도 급등한 것도 배터리 기업의 탈유럽을 부추기고 있다. 유럽에너지거래소(EEX)는 이달 초 독일의 전력 가격은 ㎿h당 361유로(약 50만666원)라고 밝혔다. 지난달 중순의 경우 108유로(14만 9781원) 수준이었다. 유럽 에너지 위기에 따른 신규 투자에 유럽 기업들조차 부담을 느끼는 것이다.
한국 기업들에는 전기차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유럽 시장을 선점할 수 있는 기회다. 이미 국내 완성 배터리셀 3사를 비롯한 소재·부품·장비 기업들이 유럽 시장에 진출해 공장을 가동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폴란드 브로츠와프 공장의 파우치형 배터리 생산능력을 확대하고 유럽 내 원통형 배터리 생산을 위한 별도의 거점을 마련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2025년까지 유럽 현지에서 100GWh 이상의 생산능력을 확보한다는 구상이다.
SK온은 헝가리 1·2공장을 가동하고 있고 총 3조3100억원이 투입해 헝가리 이반처에 3공장을 지을 계획이다. 삼성SDI는 올해 하반기부터 헝가리 괴드에 위치한 2공장이 양산에 돌입하면서 고부가 제품인 중대형 배터리 ‘젠5’ 판매를 본격화한다. 배터리 소재기업인 포스코케미칼도 양·음극재 공장 신설을 추진하고 있다.
유럽판 인플레 감축법인 핵심원자재법인 ‘CRMA’도 한국기업들이 시장 지배력을 더욱 강화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 법은 인플레 감축법과 마찬가지로 유럽 내 생산 전기차에 보조금을 지급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폭스바겐·BMW 등 유럽 완성차와 국내 기업들이 폭넓게 협력하고 있는 만큼 수혜가 예상된다.
정동훈 기자 hoon2@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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