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혐의 벗은 정종선 전 고교축구연맹 회장 단독인터뷰
축구 관계자들 모여 성폭력 사건 조작
1·2심서 '증거 부족'으로 성폭력 무죄
협회, 鄭 제명 후 '70세 이상 회장 출마 금지' 조항 만들어
차범근 등 축구인들 회장 출마 사전 차단 의혹
서울 모처에서 본지와 만난 정 전 회장은 "앞으로 손해배상소송을 연이어 제기할 계획"이라고 했다. 반격의 시작이다. 그는 4년간 받은 성폭력 혐의를 지난달 16일 벗었다. 서울고법은 정 전 회장의 유사강간·강제추행 혐의에 대해 1심과 같은 무죄로 판단했다. 서울 언남고 감독 시절 학부모들로부터 거액을 받았다는 업무상 횡령 혐의만 인정돼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다. 정 전 회장은 "횡령 혐의는 다툼의 여지가 좀 있다"고 했다. 그는 상고해 대법원에서 이에 대한 최종 판결을 받을 예정이다. 성폭력 혐의는 1, 2심 모두 무죄로 판결해 상고심에서도 같은 판결이 예상된다.
정 전 회장은 "암 덩어리가 하나 빠져나간 기분이었다"며 "성폭력 의혹은 내 가족들에게도 충격이었고 나를 더 이상 우리나라에서 살 수 없게 하는 날벼락이었다"고 돌아봤다. 1, 2심이 정 전 회장의 성폭력 혐의를 무죄로 본 이유는 "증명이 부족하다"였다. 피해자라고 주장한 인물은 경찰 조사와 재판에서 성추행을 당한 상황에 대해 진술이 계속 바뀌었다. 결국 재판부는 "피해 경위의 핵심적인 부분에 있어 그 내용이 달라졌다"고 판결문에 적시했다. 정 전 회장은 "이 사건의 본질에 성폭행은 없다"고 강조하며 "처음부터 짜 맞추려 하다가 법정에 나가 거짓말을 한 것"이라고 했다.
부정입학 제안 거절했다가 성추행범으로… 연맹 임원들이 의기투합
정 전 회장의 설명과 자료들을 종합해보면, 사건의 발단은 2018년 말 있었다. 서울 언남고 감독이기도 했던 정 전 회장은 선수의 부모로부터 부정입학 제안을 받았다. 선수와 부모는 당시 유소년축구연맹 김 모 회장의 먼 친척이었다. 정 전 회장은 이를 거절했다. 이 소식을 들은 김 회장은 반발하며 가까운 축구인들을 끌어모아 정 전 회장을 끌어내리기 위해 사건을 설계했다. 선수의 부모는 성추행 피해자 역할을 할 학부모를 섭외했다. 이 학부모는 2016년 초 아들이 잠깐 언남고에서 축구를 했던 사람이었다. 정 전 회장과 가까운 최재익 서울시축구협회장과의 회장 선거에서 져 반감을 갖고 있던 이 모 구로구체육회 부회장도 여기에 동참했다.
고교연맹 이사들도 다수 합세했다고 한다. 이사들은 평소 정 전 회장을 시기했다. 정 전 회장이 취임 후 매년 국제대회에 나가기 위해 선발되는 선수명단을 투명하게 관리할 것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이전까지 국제대회 명단에 선수 이름을 올려주고 뒷돈을 챙겼던 이사들로선 정 전 회장이 눈엣가시였다.
이들은 2019년 2월 후원회비 횡령 등 혐의로 정 전 회장을 경찰에 고발했다가 2019년 6월 한 학부모가 정 전 회장으로부터 강제추행을 당했다고 말해 성폭력 혐의가 추가됐다. 하지만 경찰 조사를 거쳐 결국 재판에서 무죄가 나오면서 사건을 설계했던 관계자들은 정 전 회장을 찾아가 사과했다. 유소년연맹 김 모 회장과 부정입학을 제안했던 학부모는 정 전 회장이 2심 선고를 하루 앞둔 지난달 15일 그를 찾아 사과했다. 정 전 회장이 보석으로 석방됐던 2020년 7월9일에는 고교연맹 기술이사를 겸했던 장 모 감독이 찾아와 "미안하다"고 했다. 그리곤 며칠 후 장 모 감독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정 전 회장은 "모두 용서했고 다 지난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다만 "장 감독은 내가 용서해서 세상을 떠난 것 같다"며 마음에 걸려 했다.
축구협회도 개입… 영구제명 뒤 정관 개정 의혹
정 전 회장은 "축구협회 공정위원회 관계자들도 사건에 개입돼 있었다"고 주장했다. 축구협회 공정위는 정 전 회장을 영구제명한 기구다. 그 과정이 일부 비상식적으로 이뤄져 의심받는다. 정 전 회장은 2019년 6월13일 경찰에 성폭력 혐의로 첫 조사를 받으러 갔는데, 축구협회는 이를 고려치 않고 그날 공정위를 열었다. 결국 정 전 회장은 소명 기회를 제대로 얻지 못한 채 두 달 뒤 영구제명됐다. 정 전 회장은 이 결정에 불복해 항소, 대한체육회 스포츠공정위원회에 재심을 청구했지만 2019년 11월 기각되면서 영구제명이 확정됐다.
협회가 징계를 서둘렀던 배경에 대해 정 전 회장은 "정관 개정 때문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 전 회장도 협회 대의원총회에 나가 정관 변경 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 평소 협회와 대척점을 이뤘던 정 전 회장의 의결권을 박탈하기 위해 공정위가 징계를 서둘렀다는 것이다.
실제 협회는 정 전 회장이 영구제명된 뒤 2020년 1월29일과 2020년 9월22일 정관 내용을 수정했다. '회장 선거 후보자 등록'을 규정한 제23조의2를 정 전 회장은 지목했다. 이 조항은 2020년 9월22일 새로 만들어졌다. 제32조의2 2항은 "회장 선거 후보자는 선거일 당일 만 70세 미만인 자이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70세를 넘긴 인사들은 회장 선거에 출마하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이를 두고 정 전 회장과 축구인들은 특정 인사들의 회장 출마를 사전 차단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한다. 허구연 KBO 총재(71)가 취임한 야구와도 대조된다. 이 조항으로 인해 차범근 전 감독(69) 등 일부 축구인들은 회장 선거에 명함도 내밀지 못하게 됐다. 정몽규 현 회장의 임기가 끝나는 2025년 1월이 되면 차 전 감독은 72살이 돼 선거에 출마할 수 없다. 정 전 회장은 "협회 사람들이 여당이면 난 사실상 야당 사람"이라며 "협회 입장에선 내가 이 조항에 반대할 것을 우려했던 것 같다"고 했다.
김형민 기자 khm193@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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