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적 지인들 요금청구서 이전…타지역 유권자 여론조사 전화 받아
2010·2014년 '유선전화 착신전환'의 새로운 버전…심각한 여론 왜곡
[전주=아시아경제 호남취재본부 김한호 기자] #. 전북 전주시 효자동에 사는 황모씨는 지난 1월 중순께 휴대전화 요금 청구서를 완주군 구이면으로 옮겨달라는 지인의 부탁을 받았다. 지인은 그러면서 혹 여론조사 기관으로부터 전화가 올 경우, 완주군수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특정인을 지지해주면 된다고 했다. 부탁을 받은 황씨는 처음엔 반신반의했다. 주소지가 전주시로 돼 있어 엄연히 전주시민인데, 휴대전화 요금 청구서를 완주군으로 옮겼다고 해서 군수 후보 여론조사 전화가 온다는 게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금 청구서를 옮긴 지, 한 달이 조금 지나지 않은 2월 20일. 실제로 황씨는 지방언론사와 인터넷 매체가 합동으로 실시하는 완주군수 여론조사 전화를 받았다.
6·1 전국동시지방선거가 가까워지면서 전북에서 새로운 여론조사 조작행위가 횡행하다.
일부 후보들이 조직적으로 나서 휴대전화 요금청구서를 특정 지역으로 옮겨 여론조사에 대비하고 있는 것이 핵심이다.
현재 여론조사는 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가상 안심번호를 받은 여론조사 기관이 진행한다.
선관위는 안심번호를 통신사로터 제공받는데, 통신사는 해당 시·군의 휴대전화 안심번호를 추출할 때 요금 청구서를 기준으로 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대해 한 통신사 관계자는 “안심번호 추출방식 등은 개인정보 보호 차원에서 말씀드릴 수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이같은 안심번호 추출 방식을 간파한 일부 후보가 조직을 동원해 타 지역 유권자의 휴대전화 요금청구서를 자신의 지역으로 이전하는 것이 전북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특히 임실군과 완주군, 순창군, 장수군 등에서는 요금청구서 이전이 조직적이고 광범위하게 벌어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중 완주군의 경우에는 특정 후보와 친분이 있는 기업체 간부가 직원들에게 요금청구서 이전을 지시하는 일까지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문제는 여론조사에 대비한 요금청구서 이전은 명백한 여론조작이라는 점이다.
주민들은 전북 내 타 지역, 심지어는 수도권에 거주하는 유권자가 여론조사 때 해당 지역의 유권자로 둔갑해 참여하는 것은 곧바로 민의를 왜곡하는 것과 진배없다고 지적한다.
이는 지난 2010년 제5회, 2014년 제6회 전국동시 지방선거 당시 큰 파장을 일으켰던 유선전화 착신전환에 버금가는 심각한 불법·편법이라는 게 지역 정치권의 중론이다.
유선전화 착신전환이란 신규 개설하거나 사용하지 않는 수 백개의 유선전화 회선을 특정 후보의 선거사무소 또는 휴대전화로 착신을 전환해 해당 후보의 지지율을 높이는 것으로, 여론조작의 대표적 수법으로 악용된 바 있다.
휴대전화 요금청구서 이전이 후보들간 공공연한 사실로 퍼지면서, 정치권과 수사당국도 이를 예의주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 전북도당 관계자는 “휴대전화 무더기 개통과 함께, 요금청구서 이전을 통해 지지율을 높이고 있는 후보들에 대한 제보가 심심찮게 들어온다”며 “자체 조사 등을 통해 이러한 편법이 사실로 드러나면 이를 미연에 방지할 대책이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전주=호남취재본부 김한호 기자 stonepeak@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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