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약속 불이행 일찌감치 파악‥이행경과 보고 공개로 국민적 관심 모아
세계유산위 앞두고 공론화 위해 부단히 노력…부처 간 협업으로 이행 방안 강구
국제 세미나도 마련…세계유산 무효화 어렵지만 약속 이행에 주안점 두고 설득
일본은 지난해 6월 개방한 산업유산정보센터를 강제노역 사실을 부정하는 증언과 자료로 꾸몄다. 일본 내각관방과 각 지역 정부, 개별 유산요소 소유자 등이 지난해 12월 세계유산센터에 제출한 이행계획 보고서(SOC)에서도 강제노역 관련 내용을 배제했다.
우리 정부는 이같은 약속 불이행을 일찌감치 파악하고 있었다. 국민적 관심을 모으기 위해 지난 1월 29일 '근대산업시설 세계유산 등재 후속조치 이행경과 보고'의 주요 내용을 언론을 통해 공개했다. 일본이 세계유산위원회의 권고사항과 등재 뒤 보존관리 권고를 얼마나 이행했는지 조사한 기초자료다. 이에 따르면 일본은 제39차 권고에서 인정된 '자신들의 의지와 무관하게 강제적으로 동원된 한국인'을 2018년 SOC에서 '일본의 산업을 지원했던 다수의 한반도 출신자'로 왜곡했다. 2019년 SOC에서는 아예 누락했다. 일본인 노동자와 한반도 및 다른 지역 출신 노동자가 '똑같이 가혹한 환경' 아래 있었다는 식으로 본질을 흐리기도 했다.
등재 당시와 판이한 태도에 이정현 문화체육관광부 국제문화과장은 "세계유산위의 권고사항과 일본 스스로의 약속을 회피하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여성희 문화재청 세계유산팀장도 "세계유산인 에센 졸버레인 탄광 산업단지와 포클링겐 제철소의 해설·전시에 강제노동 사실을 반영한 독일과 크게 대조된다"고 지적하며 이렇게 말했다. "세계유산위원회의 결정문은 '전체 역사'에 대한 해석 작업에서 국제적 모범 사례를 고려하라고 권장한다. 일본은 해석의 모범 사례를 단순히 유산의 정보 전달을 위한 홍보물이나 어플리케이션 등으로 한정하며 소홀하게 다루고 있다."
문체부는 오는 16일 열리는 제44차 세계유산위를 앞두고 이 문제를 공론화하기 위해 부단히 애썼다. 세계유산위원회의 권고 사항과 일본의 미이행 사항을 비교하는 홍보 영상을 제작했고, 외교부 등과 협업을 통해 약속이 이행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했다. 문화재청은 국제 전문가들의 관심을 높이기 위해 '하나의 유산, 서로 다른 기억'을 주제로 국제 세미나를 마련했다. 세계유산 해석 분야 전문가들에게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고 새로운 대응 방안을 모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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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세계유산 지정 무효화가 사실상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그동안 약속 이행에 주안점을 두고 세계유산위 관계자들을 설득해왔다. 세계유산위의 이번 보고서는 그 결실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여 팀장은 "국민적 관심과 국제사회의 지지를 기반으로 끊임없이 의제화한다면 일본도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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