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문혜원 기자] "식용유 재고, 길어야 한 달 버틸 만큼 남았어요. 가격 여기서 더 오르면 까마득하죠."
지난 9일 오후 서울시 은평구 연신내에서 옛날 통닭집을 운영하는 김 모(50·남)씨는 닭을 튀기며 이같이 하소연했다. 김 씨는 "한 달에 드는 식용유 값이 예년에 비해 50만원 넘게 늘었다"면서 "원재료값이 너무 치솟아 통닭을 팔아도 남는게 없어 힘들다"고 토로했다.
식용유값 고공행진에 치킨 등 튀김류를 판매하는 자영업자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원재료 가격 부담에 제품값 인상 대안도 고려하고 있지만,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가격을 올렸다가 자칫 소비자들이 등을 돌리면, 생계 유지마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국제 식용유 가격은 올해 초부터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이달 6일(현지시간) 보도한 데 따르면 미 시카고상품거래소에서 같은 달 4일 대두유 선물 가격은 1파운드(454g)당 약 72센트에 거래가 이뤄졌다. 지난해 3월(1파운드당 24센트)에 비해 3배나 올랐다. 이는 2008년 이후 최고가다. 수요보다 공급량이 턱없이 부족해진 결과다. 지난해 대두의 주산지인 미국과 브라질의 기상이 나빠지면서 생산량이 감소해 올해 재고량이 급감했다.
대두 가격 상승에 따라 일반 식당에서 구입해 사용하는 18ℓ 식용유 가격도 치솟고 있다. 가격비교사이트 에누리닷컴에 따르면 국내 식용유 업계 1위인 CJ제일제당의 업소용 콩식용유 18ℓ 제품의 시중 유통 가격은 올해 1월10일 2만6890원에서 이달 11일 3만9660원으로 뛰었다.
식용유 가격이 제품 가격을 결정하는 데 있어 비중이 높은 곳은 치킨업계다. 교촌, BBQ, bhc 대형 프랜차이즈의 경우는 그나마 사정이 낫다. 치킨 프랜차이즈는 본사의 원재료 구매력으로 현재 가격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식용유를 구매할 수 있어서다. 치킨 프랜차이즈 관계자는 "치킨용 기름값이 역대 최고가라고 해도 올해 말까지 쓸 물량은 이미 확보해두고 있다"면서 "가격 인상 압박 요인은 있지만 소비자들의 저항이 클 것으로 예상돼 당분간 가격 인상 계획은 없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신규 브랜드와 영세 자영업자들이다. 올 초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확산에 따른 살처분으로 육계 가격이 상승한 이후 가격이 아직 예년수준으로 돌아오지 못한데다가 기름값까지 오르면서 원재료 가격 비중이 지난해보다 30% 이상 커졌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지난 9일 기준 닭고기(1kg) 평균 가격은 5335원으로, 1년(4960원) 전에 비해 7% 올랐다. 서울 마포구에서 치킨매장을 운영하는 이 모씨(46)씨는 "원재료값, 인건비, 매장 월세를 빼면 솔직히 남는게 없다"면서 "프랜차이즈보다도 치킨값이 평균 20% 저렴한데도 요즘 다른 물가도 뛰다보니 가격 인상 카드를 꺼내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문혜원 기자 hmoon3@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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