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 4위 '만나플래닛', 지사와 맺은 계약서 보니
수 천 만원 위약금·갑질에 소상공인 피해 속출
공공배달앱 사업 참여…최근 공정위 점검선 제외
신규 지사 영입위해 수억원 '대여금' 관행 성행
"지역 배달대행 지사를 1년여 간 운영한 후 영업을 접었더니 위약금 5000만원을 내라고 합니다. 비정상적인 위약금 체계를 도저히 납득하기 힘듭니다."
배달대행 사업에 뛰어들었다가 막대한 피해를 보는 소상공인들이 속출하고 있다. 이들은 "배달대행 플랫폼의 갑질과 과도한 위약금 제도 때문"이라고 호소하고 있다. 최근 공정거래위원회는 계약서 점검을 통해 이를 시정하도록 했지만 여기에는 대형 업체 세 곳만 포함돼 사각지대가 여전하다. 배달대행업체 ‘만나플래닛’은 7개 배달대행 플랫폼이 연합을 이뤄 주문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운영한다.
2일 아시아경제 확인 결과, 이 업체는 지역 배달대행업체가 계약을 해지하면 수 천 만원의 위약금을 물게 하고, 지난해까지 19억원의 세금을 미납하기도 했다. 배달대행 업계에선 신규 지사를 영입하기 위해 거액의 대여금을 주고 고금리 이자를 받아 챙기는 관행도 성행하고 있다. 음식배달 산업이 단기간에 성장해 아직 제대로 법·제도가 갖춰지지 않자 이를 악용하는 업체들이 여전한 것이다.
지사에 수천만원 위약금..공정위는 "몰랐다"
만나플래닛은 제트콜·공유다·로드파일럿 등 7개 배달대행 플랫폼이 운영하는 프로그램을 서로 공유한다. 음식 주문을 처리해주는 배달기사가 지역마다 다수 포진해 있어 효율성이 높다는 점이 특징이다. 지난해 12월에는 주문 건수가 총 1400만건을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1~2위를 다투는 로지올(서비스명 생각대로) 주문 건수가 같은 기간 1670만건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점유율 수준은 상당히 높다. 만나플래닛은 서울시, 세종시, 여수시 등 지자체가 운영하는 공공배달앱 사업에도 참여하고 있다.
업체 위상에 비해 운영 방식은 상식에 벗어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만나플래닛과 계약해 지난해까지 배달대행업을 해왔다고 본인을 소개한 한 지사장은 "계약 기간을 지키지 못했다는 이유로 본사에서 5000만원이 넘는 위약금을 청구했다"고 밝혔다. 계약기간은 통상 2~3년인데 이를 지키지 못하면 거액의 위약금을 물게한다는 것이다. 본지가 단독 입수한 계약서에는 불공정 계약 조항으로 의심할 만한 대목이 여러 곳 눈에 띄었다. 다른 배달대행 플랫폼을 중복 사용하지 못하게 한 것은 물론, 배달 수행실적이 직전 3개월 평균보다 30% 이상 하락하면 계약을 해지하도록 한 것이다.
본사에 내야 할 위약금 항목은 ①가맹비 1000만원 ②할인 적용 받은 플랫폼 비용 ③배달기사 조끼, 카드단말기 비용 ④잔여 계약기간의 예상손해액 등이 모두 해당된다. 특히 조항 ②의 경우 계약서상에는 주문 건당 수수료 100원을 플랫폼 사용료를 낸다고 한 뒤 50원을 할인해주고, 이 할인액을 위약금에 포함시키는 방식을 썼다. 즉 하루에 주문 1000건을 받는 지역 배달대행업체는 하루 5만원씩 한 달에 150만원, 10개월 운영했다면 1500만원이 위약금에 포함되는 것이다. 또한 본사가 위약금을 청구한 지 14일 내에 지급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최근 공정위는 로지올, 바로고, 메쉬코리아(부릉)에 대해 지역 배달대행업체와 맺은 계약서를 점검하고 불공정 조항을 자율시정하도록 했지만, 만나플래닛에 대해선 "처음 듣는다"며 존재 자체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공정위 관계자는 "3대 배달대행 플랫폼 사업자가 계약서를 자율시정하기로 한 만큼 그 업체도 계약서를 개정할 가능성이 높다"고만 했다.
수억원 대여금 빌려주고…10~20% 고금리 이자 놀이
세금 체납 의혹도 제기됐다. 배달대행 업계 현금 흐름은 음식점주(가맹점주)가 배달대행 플랫폼 본사 가상계좌에 입금한 적립금에서 기사 배달요금과 플랫폼 수수료 등을 정산하는 구조다. 배달기사들도 이 가상계좌를 통해 자신의 수익을 출금하는 형태다.
만나플래닛은 배달료에 포함된 부가세 세무 처리 업무를 대신해주기로 했지만, 일부 지사에서는 "세금 처리가 제대로 이뤄지고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만나플래닛 측에 확인한 결과, 지난해 말 기준으로 납부하지 않은 세금이 19억원에 달했다. 재무제표상 2019년 ‘기타미지급금’ 항목에 37억원이었던 미지급금은 1년 후 60억원으로 늘어났고 ‘미지급법인세’ 항목으로 이동했다. 한 세무 전문가는 "해당 회사는 지난해 영업손실 상태로 법인세를 낼 필요가 없다"며 "미납인 법인세 60억원은 법인세가 아닌, 부가세 체납 항목을 미납인 법인세로 옮긴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만나플래닛에서는 최근 이 문제로 10여개 지사들이 계약을 해지하고 이탈한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 관계자들은 본사가 신규 지사를 영입하기 위한 ‘대여금’에 세금으로 납부해야 할 돈을 가져다 쓴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대여금은 신규 지사를 영입하기 위해 배달대행 플랫폼사들이 수 천 만원에서 많게는 수 억원까지 빌려주는 돈으로, 업계 관행처럼 자리 잡고 있다. 대여금을 받은 지사는 이 돈을 갚지 못하면 다른 플랫폼사로 이동하지 못하는 구조다. 배달대행 업계 관계자는 "대여금은 2~3년에 걸쳐 상환해야 하며, 연이율 10~20% 수준의 높은 이자까지 받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러한 영업 행태를 막을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정부는 다음 달부터 ‘생활물류 서비스산업 발전법(생물법)’을 새롭게 시행할 예정이다. 표준계약서 도입 등 일정 자격을 갖춘 배달대행 사업자를 우수 사업자로 인증하고 지원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표준계약서 사용은 권고 사항일뿐 의무 사항이 아니다. 대부분 기업의 자율에 맡기고 있어 강제성이 부족하다. 업계 관계자는 "세금 체납, 업무상 횡령 등 본사 문제로부터 소상공인인 지역 배달대행업체를 보호하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보경 기자 bkly477@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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