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신의칙 어긋나...정기 보너스 소급 지급해야”
재계 “사법부까지 기업 임금 관여...경영 불확실성 악화”
신의칙 기준 명확하기 위해 대법원 전원합의체 필요

[아시아경제 안하늘 기자, 김지희 기자] 노사 간 단체협약으로 통상임금에서 제외했던 정기 보너스를 소급해 지급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오면서 재계가 ‘멘붕’에 빠졌다. 이번 판결에 따라 통상임금 미지급금 관련 줄소송이 예고되기 때문이다.
대법원 3부(주심 조희대 대법관)는 27일 자동차부품업체 다스(DAS) 근로자 곽모 씨 등 30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미지급 법정수당, 중간정산퇴직금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에 따라 회사가 근로자 30명에게 각각 400만 원씩 총 1억2000만원을 지급해야 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회사가 2010년 8월∼2013년 12월 정기 보너스를 산입해 다시 통상임금에 포함시켜 법정수당과 중간정산퇴직금을 추가로 지급해야 한다”는 근로자들의 주장이 2013년 12월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제시한 ‘신의성실의 원칙(신의칙)’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신의칙은 법률관계 당사자가 상대방을 배려해 형평에 어긋나거나 신뢰를 저버리는 방법으로 권리행사를 해서는 안된다는 추상적 원칙이다.
통상임금 소송은 2013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 잇따라 제기되고 있다. 당시 판결에서는 정기상여금이 고정성·일률성·정기성 등의 조건을 갖출 경우 통상임금으로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자 노조에서는 통상임금 범위 확대에 따라 회사에 과거 수당에 대한 증가분을 소급해 지급할 것을 요구했다. 통상임금은 초과근로수당을 정하는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다만 대법원은 통상임금 지급으로 기업에게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을 초래’하거나 ‘기업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는 경우’에는 신의칙을 적용해 소급분을 주지 않을 수 있다는 단서를 붙이면서 논란이 확산됐다.
문제는 신의칙에 대한 기준이 지나치게 모호하다는 점이다. 김희성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경영상의 위기 등은 당시 외부의 우연한 사정에 불과하다”며 “법관의 자의적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외부의 우연한 사정을 기준으로 신의칙 위반여부를 판단하게 되면 법적 안정성을 훼손하는 ‘로또 판결’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라고 지적했다.
실제 현대중공업, 금호타이어의 경우 근로자들이 제기한 소송에서 1심에서는 신의칙을 부정하면서 근로자들의 손을 들어줬는데, 2심 재판부는 미지급 임금 지불 시 해당 기업의 존립이 위태로울 수 있다고 판단, 신의칙을 인정했다. 재판부의 신의칙에 대한 자의적 판단이 논란이 된 대표적 사례는 기아자동차 소송이다. 기아차는 지난해 8월 통상임금 소송 1심에서 패해 4223억원을 추가 부담하게 됐다. 당시 재판부는 기아차가 해당 임금을 지급해도 중대한 경영 위기가 초래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내수 시장 부진과 중국의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보복에 이어 통상임금 여파까지 더해지면서 기아차는 그해 3분기 10년 만에 영업 적자를 기록했다. 김창배 여의도연구원 연구위원이 기아차 통상임금 소송 1심이 향후 대법원에서 최종 확정될 경우를 가정한 결과, 기아차는 2008~2017년 정기상여금 등에 대한 소급분 4조45억원을 지급해야 하는 것으로 예측됐다.
재계는 이번 다스 판결로 인해 통상임금 관련한 경영의 불확실성이 더욱 확대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노사합의로 정해진 내용조차 향후 뒤바뀔 수 있는 리스크를 떠안게 되고, 관련한 소송이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다. 재계 관계자는 “이런 판결이 계속 나올 경우 현재의 단체협약이 향후 뒤바뀔 수 있다는 인식을 할 수밖에 없다”라며 “사실상 행정부와 사법부가 기업의 임금 수준까지 관여하는 꼴”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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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하루빨리 신의칙 적용 기준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전원합의체는 기존 판례를 변경할 필요가 있거나 사회적 파장이 큰 사건일 때 이뤄진다. 시영운수 통상임금 소송은 3년 넘게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계류 중인 상황이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과 교수는 “전원합의체 판결은 13명 대법관 전체의 의견 취합해 내린 판단인 만큼 하급심에 미치는 영향이 크고 사실상 입법과 유사한 효과가 나타나게 된다”며 “이번 다스 소송처럼 재판부 구성에 따라 상이한 결론이 가능한 소부 판결과는 무게감부터 다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안하늘 기자 ahn708@asiae.co.kr
김지희 기자 way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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