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시작된 망중립성 완화 국내도 적용? "환경 달라…국내는 시기상조"
망중립성은 네트워크 사업자 '사전규제'…"플랫폼 지배력, 사후규제로 해결해야"
제로레이팅 문제점도 지적…"제로레이팅, 이통사 신사업 발굴 수단"
[아시아경제 한진주 기자] 한국에서 망중립성 완화를 요구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왔다. 공공재로 사업을 하는 기간통신사업자들이 당연히 지켜야 할 원칙임에도 불구하고 '수익성' 논리를 들이대는 것은 결국 이동통신사들의 아전인수 논리라는 것이다. '사전규제' 성격을 지니는 망중립성과 '사후규제'로 다뤄야 하는 플랫폼 중립성은 구분해서 봐야 한다는 것이다.
29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인터넷기업협회에서 열린 제7차 굿 인터넷클럽에서는 '흔들리는 망중립성, 인터넷 생태계가 위험하다'는 주제로 토론이 열렸다. 권헌영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 김용배 콘텐츠연합플랫폼 팀장, 박지환 오픈넷 변호사, 윤철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국장이 참석했다.
망중립성이란 어떤 콘텐츠도 동등하게 다뤄야한다는 의미로 망 사업자(통신사)가 이를 이용하는 다른 콘텐츠나 서비스를 차별해서 안된다는 원칙을 말한다. 최근 트럼프 정부가 망중립성을 원칙을 폐지하겠다고 나서면서 국내에서도 재논의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국내와 미국의 상황이 다르고 통신사들의 논리가 반영된 것이라는 의견을 폈다.
권헌영 고려대 교수는 "미국은 우리나라보다 통신시장이 더 자유화되어있고 우리나라와 규제 흐름도 다른데 미국에서 이야기한다고 우리가 이를 갖다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통신사와 인터넷기업 간 분쟁으로 논의가 흘러가고 있는데, 망중립성은 통신사업의 구조와 인터넷 비즈니스를 거시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윤철한 경실련 국장은 "망중립성 가이드라인을 법제화하지 못한 상황에서 통신사들을 중심으로 5년 전 상황으로 되돌리려는 움직임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며 "정권이 바뀌면서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이동통신사들 통신비 인하 요구가 나오자 망투자 비용이 많이 드니 인터넷 기업들에게 부담시켜야 한다는 이야기를 꺼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향후 망중립성 이슈는 4차산업혁명이나 통신산업변화와 맞물려서 다시 불거질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망중립성에 대한 논의에서 자주 거론되는 것이 플랫폼 사업자들의 영향력 확대다. 이들은 망중립성 다음 단계로 플랫폼중립성이 거론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망중립성은 어디까지나 네트워크라는 공공재를 사용하는 기간통신사업자에게 적용되는 사전규제라는 원칙에서 다뤄져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박지환 오픈넷 변호사는 "망중립성은 이용자를 차별하지 말아야 한다는의무를 사전에 부여한 것으로, 사전규제가 정당화되는 이유는 이동통신사가 주파수라는 공공재를 활용해서 사업을 하기 때문"이라며 "포털이나 플랫폼 등 부가통신사업자들은 망 위에서 사업을 하고 공정거래가 문제가 된다면 공정거래법 등 사후규제로 해결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사전규제가 정당화되는 이유와 '플랫폼중립성'은 구분해서 논의할 필요가 있다"며 "논의의 틀 자체가 다른 영역을 같이 이야기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윤철한 경실련 국장은 "네트워크는 독과점 성격을 지니는 필수재이자 공공재로 공공성을 지니지만 플랫폼은 소비자 선택에 의해서 커진 것이므므로 '중립성'이라는 용어로 공공성을 요구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며 "결국 망중립성은 원칙의 문제이지 돈의 문제가 아니며, 투자비를 운운하면서 규제완화를 해야한다는 논의 자체가 통신사들의 논리에 휘말리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용배 콘텐츠연합플랫폼 팀장은 "통신과 콘텐츠 제공자는 상생관계이고, 통신사들의 주장 즉 투자여력이 없고 통신망 업그레이드가 이뤄지지 않는 부분에 대한 정확한 자료를 제공한다면 OTT사업자나 콘텐츠 제공사들도 분배논의에 참여할 수 있을 것"이라며 "그러나 원가공개도 하지 않고 데이터도 없는 상황에서 수익 분배를 주장하는 것은 결국 통신사의 논리에 휘말리는 격"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망중립성 논의를 촉발시킨 제로레이팅에 대한 문제점도 언급됐다. 제로레이팅이란 콘텐츠 사업자가 이용자를 대신해 데이터요금을 지불해 이용자가 무료로 콘텐츠를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를 말한다. SK텔레콤이 11번가를 이용하는 고객에게 데이터 요금을 받지 않고, KT가 KT내비 데이터를 무료로 제공하는 것이 그 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이용자의 이익이 침해되지 않을 경우에 한해 제로레이팅을 허용하기로 했다.
윤철한 경실련 국장은 "특정 서비스를 무료로 쓸 수 있다면 소비자입장에서 이득이겠지만 궁극적으로 특정 기업의 고객이나 서비스 가입자에게만 혜택이 주어진다는 점에서 대기업 쏠림현상이 가속화될 수 있다"며 "대기업 위주로 편제되면 결국 폐해는 소비자에게 돌아가며, 소비자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라고 설명했다.
박지환 오픈넷 변호사는 "통신사들이 신사업을 발굴하는 수단이 제로레이팅이라는 점은 다소 우려스럽다"며 "통신사업자들의 시장지배력을 다른 사업에 전이시키는 것으로 통신사업이라는 본업 대신 부업으로 돈을 벌어 투자비용을 회수하겠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이어 "과거에 이통사들이 m-VoIP 서비스인 보이스톡을 저가요금제에서는 사용하지 못하게 막으면서 망중립성 논의가 시작됐는데 이 당시에는 통신사 본업과 관련된 부분이어서 공정위와 통신당국이 면죄부를 준 것이었지만 통신사가 데이터로 스폰서를 해서 통신비를 인하해주겠다는 것은 막아야한다"며 "통신사들이 자의적으로 다른 시장에 지배력을 부당하게 쓰는 것은 아닌지 면밀히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권헌영 교수는 "정부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규제나 원칙이 제대로 관철되는 지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고 규제감독관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며 "정부와 통신사가 연합해서 망중립성 문제를 이런 방향으로 풀어보자고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한진주 기자 truepear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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