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송화정 기자]한국 자동차 산업의 운명을 좌우할 기아자동차 통상임금 소송의 결론이 오는 31일 나온다. 벼랑 끝 위기에 직면한 한국 자동차 산업의 미래가 걸려있는 만큼 업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1부(권혁중 부장판사)는 24일 기아차 노조 소속 2만7000여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통상임금 소송의 변론 절차를 모두 종결하고 이달 31일 오전 선고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양측이 애써줘서 오늘 심리를 마무리할 수 있게 됐다"며 "양측 모두 회사를 위하는 마음은 같을 것으로 생각하는 만큼 그동안 애써서 만들어준 자료를 보고 신중히 잘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당초 지난 17일 결론을 내리고 5년을 끌어온 소송에 종지부를 찍을 계획이었지만 검토 과정에서 원고의 이름과 주소지 등이 잘못된 부분이 발견돼 이달 8일 변론을 재개했다.
기아차 노조 조합원 2만7459명은 2011년 '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인정해 달라'며 사측을 상대로 받지 못한 통상임금 6869억원을 청구하는 집단소송을 냈다. 2014년에는 조합원 13명의 이름으로 약 4억8000만원의 대표 소송이 제기됐다. 기아차가 패소할 경우 청구금액과 이자를 포함해 약 1조원을 지급해야 한다. 또한 소송 결과가 전 직원에게 확대 적용되면 총 부담금이 약 3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판결 즉시 충당금 적립의무가 발생해 기아차는 당장 3분기부터 영업이익 적자가 불가피하게 된다. 기아차는 올해 상반기 영업이익이 7870억원을 기록해 전년 동기 대비 44%나 감소, 2010년 이후 최저 실적을 기록했다.
기아차가 적자 전환할 경우 현대차그룹은 물론 자동차 부품업계의 존립 자체가 위협을 받게 된다. 지분 33.38%를 보유한 현대차는 지분법 손실을 떠안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완성차·자재·부품·물류 등으로 수직계열화한 현대차그룹의 구조를 감안하면 현대기아차의 위기는 다른 계열사로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뿐만 아니라 현대기아차의 위기는 5300여개에 이르는 협력사들의 경영난을 가중시킬 것으로 보인다. 다른 국내 완성차 업체의 인건비 상승, 법적 쟁송 남발 등도 우려된다.
자동차 업계는 통상임금으로 인해 한국 자동차 산업 전체가 생태계적 위기에 놓이고 기술 개발과 미래 자동차 경쟁력을 위한 투자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보고 있다. 이 때문에 완성차 업계는 "통상임금 사안의 실체적 진실과 자동차 산업 및 기업들이 당면한 위기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통상임금에 관한 사법부의 판결에 이뤄지기를 간절히 요청한다"고 호소하고 있다.
기아차 통상임금 소송의 핵심 쟁점은 소급 지급 관련 신의성실의 원칙(신의칙) 인정여부다. 신의칙은 '권리의 행사와 의무 이행은 신의를 좇아 성실히 해야 한다'는 민법 제2조 1항을 말한다. 2013년 대법원은 과거 노사가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하지 않는 것으로 합의해 임금 수준 등을 결정했다면 이후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인정하더라도 이전 임금을 새로 계산해 소급 요구하지 못한다는 취지로 판결한 바 있다. 다만 소급 지급 시 경영 타격 가능성 등을 조건으로 달았다.
이와 관련 최근 금호타이어 통상임금 소송과 관련된 재판부의 선고는 기아차 소송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광주고법 민사1부(구회근 부장판사)는 지난 18일 금호타이어 노조원 4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임금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한 원심을 깨고 원고 패소 판결을 했다. 이들 노조원은 통상임금에 상여금을 반영해 3800여만 원을 추가 지급하라고 요구했다.
재판부는 "우리나라 대부분의 기업에서는 임금협상 시 노사가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하기로 합의하고 이러한 노사합의는 일반화돼 이미 관행으로 정착됐다"면서 "근로자가 노사가 합의한 임금수준을 훨씬 초과하는 예상외의 이익을 추구하고 사용자에게 예측하지 못한 재정 부담을 지워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을 초래하거나 기업의 존립을 위태롭게 한다면, 이는 노사 어느 쪽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 결과를 가져온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러한 경우는 정의와 형평 관념에 비춰 신의에 현저히 반하고 도저히 용인될 수 없음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이 같은 경우 근로자 측의 추가 법정수당 청구는 신의칙에 위배돼 받아들일 수 없다"고 설명했다.
송화정 기자 pancak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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