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렬한 태양받는 적포도보다
서늘한 곳에서 자란 청포도가
찬기운 머금어 더운날씨에 적합
2년 채 안된 것이 신선하고 발랄
뉴질랜드산 소비뇽 블랑 일품
각종 과일 냄새 그대로 느껴져
연어·새우와 곁들이면 좋아
[아시아경제]우리나라 사람들의 와인 취향이 언제부턴가 레드와인 위주로 바뀌었다. 1980년대 우리나라에서 만든 와인이 유행할 때는 거의 화이트와인이었다. 그러다가 수입개방 이후 레드와인이 몸에 좋다는 소문 때문에 요즈음은 화이트와인을 마시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다. 화이트와인은 폴리페놀이 레드와인에 비해서 적게 들어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나름대로 다른 효과를 갖고 있다. 식욕촉진 효과, 이뇨작용 등은 레드와인보다 훨씬 좋고, 두통을 일으키는 성분도 레드와인보다는 적다. 그러나 건강 문제를 떠나서 더운 여름에는 묵직한 레드와인보다 가볍고 산뜻한 화이트와인이 더 시원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한 때 중동 건설 붐이 일어났을 때, 열사병에 걸린 근로자에게 보리밥을 먹여서 활기를 되찾게 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여기에 대한 해설은 다음과 같다. 쌀은 봄에 씨를 뿌려 여름의 더운 기(氣)를 먹고 자란 작물이기 때문에 더운 기를 머금고 있어서 겨울에 먹으면 몸을 따뜻하게 하는데 좋고, 보리는 가을에 씨를 뿌려서 겨울의 추운 기를 먹고 자란 작물이라 여름에 먹으면 몸을 시원하게 한다는 상당히 타당성 있는 이론에 바탕을 두고, 처방을 한 것이라고 했다.
이 이론에 바탕을 두고, 여름을 시원하게 보낼 수 있는 와인을 찾는다면, 포도는 다년생 식물이기 때문에 차고 덥고 구분하기 애매하지만, 강렬한 햇볕을 듬뿍 받고 자란 붉은 포도로 만든 레드와인보다는 약간은 서늘한 곳에서 신맛이 적절히 배합된 청포도로 만든 화이트와인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이 화이트와인도 2년이 채 안된 것이 신선하고 발랄한 맛으로 생기를 줄 수 있다. 올해가 2017년이니 2015년, 2016년산이 좋다는 말이다. 또, 화이트와인이라면 샤르도네(Chardonnay)로 만든 것을 가장 알아주지만, 너무 맛이 묵직할 수 있으니 여름철에는 톡 톡 튀는 소비뇽 블랑(Sauvignon Blanc)이 적격이다.
이 소비뇽 블랑은 비교적 추운 지방에서도 잘 자라며, 영(young) 와인 때 마시면 신선하고 독특한 향을 즐길 수 있다. 언뜻 샤르도네에 비해서 색깔도 옅고 향이 부족하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마실수록 그 맛에 빠져드는 사람이 많다. 캘리포니아에서는 퓌메 블랑(Fume Blanc)이라고도 하는데, 프랑스 보르도와 루아르 지방에서 많이 재배한다. 특히, 루아르 지방의 푸이 퓌메(Pouilly Fume)와 성세르(Sancerre)는 소비뇽 블랑의 진수를 보여주는 것으로 유명한데, 다소 단맛이 덜한 성세르의 것이 여름용 와인으로 더 좋다.
그 외 캘리포니아 산으로 나파와 소노마 남쪽에 있으면서 가장 추운 곳으로 알려진 캐너로스(Carneros)산은 과일 향보다는 허브의 독특한 향을 느낄 수 있다. 남반부의 뉴질랜드는 소비뇽 블랑을 정책적으로 육성해 상당히 고급 품질을 생산하고 있으며, 역시 남극의 찬 기운을 간직한 전형적인 여름날의 와인이라고 할 수 있다. 요즈음 소비뇽 블랑의 진수를 보여주는 것이 바로 뉴질랜드 산으로 각종 과일 냄새를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여기에 샐러드, 연어, 새우, 블루치즈 등 요리가 있다면 더욱 그 맛이 살아난다. 여름날의 와인은 알코올 농도가 낮고, 연두 빛을 띤 옅은 황금색과 경쾌함으로 즐거움을 더해 줄 수 있어야 좋은 와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오래 전 프랭크 시나트라의 딸, 낸시 시나트라가 부른 '서머 와인(Summer wine)'이라는 노래가 있다. "Strawberries cherries and an angel's kiss in Spring. My summer wine is really made from all these things ...." "봄날의 딸기, 체리 그리고 천사의 키스까지 내 여름날 와인은 이 모든 것이 다 넣어 만든 것..." 시원한 음료라고 해서 더위를 물리치지는 못한다. 이렇게 시적인 마음으로 천천히 화이트와인을 음미하는 여유가 더위를 잊게 만든다.
김준철 한국와인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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