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 여파 속 관광객 수 회복 기미 없어
노점들 화려한 볼거리 내세우지만 행인들 사진만 찍고 '휙'
먹거리 외 의류·잡화 가게는 더 썰렁
[아시아경제 오종탁 기자] "걱정 정도가 아니라 아예 땟거리가 없을 지경이라니까요!"
11일 오후 서울 명동에서 만난 노점상 김모(46·남)씨는 울컥해 목소리를 높였다. '갈수록 더 장사가 안 돼 걱정 많지 않느냐'는 우문에 대한 솔직한 토로였다.
새우·떡 튀김을 매콤달콤한 양념에 버무린 음식(5000원)이 김씨 노점의 메뉴다. 종이 용기 대여섯개에 음식을 담을 동안 사가는 손님은 기자가 유일했다. 낮 기온이 섭씨 30도를 넘나드는 찜통더위 속 사람들은 뜨거운 기름솥을 피해 잰걸음으로 멀어졌다. 김씨는 "더위도 더위지만 무엇보다 외국인 관광객이 대폭 줄면서 막대한 타격을 받았다"며 "예년에 비해 하루 매상이 30%도 채 되지 않는다"고 전했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1~6월) 우리나라를 찾은 외국인은 675만2005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810만9847명)에 비해 16.7% 줄었다. 이는 전체에서 30% 이상을 차지하는 중국인 관광객이 크게 감소한 탓이다. 중국인 관광객은 지난해 상반기 381만6756명에서 1년 새 225만2915명으로 41.0% 축소됐다. 중국 정부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의 한반도 배치에 따른 보복으로 방한 단체관광상품 전면 금지 조치를 시행(3월15일)한 3월부터 6월까지만 놓고 보면 하락 폭은 더욱 커진다. 274만8367명에서 109만6882명으로 60.1% 급감했다.
이런 가운데 매출의 대부분을 중국인 관광객들에게 의존했던 명동 유통가는 직격탄을 맞았다. 백화점, 면세점, 화장품·의류 매장 등의 경우 비(非)중국인 대상 마케팅 강화 같은 자구노력이라도 할 수 있지, 노점들은 속수무책이다. 명동 거리에서 만난 회사원 권윤미(33·여)씨는 "발 디딜 틈이 없어 겨우 빠져나갔던 한창때를 생각하면 확실히 많이 한산해진 것 같다"고 말했다.
명동 노점들은 과거 정신없이 준비한 음식·물건을 동내던 호시절을 잊은 지 오래다. 이날 270여곳에 이르는 노점 중 손님들로 장사진을 이루거나 북적이는 곳은 하나도 없었다. 그나마 160곳 정도인 음식 노점만 겨우 입에 풀칠한다. 여타 업종은 그냥 놀 순 없으니 장사하러 나오는 수준이라고 노점 상인들은 귀띔했다.
티셔츠·스카프, 바지·치마 등 노점은 개점휴업 상태였다. 외국인 관광객들은 시원한 음료를 사든 채 빠르게 이들 노점을 스쳐 지나갔다. 티셔츠와 스카프를 파는 정모(35·남)씨는 "사드 사태 이후 갈수록 매출이 떨어지고 있다"며 "무더위까지 겹쳐 의류·잡화 노점은 더 설자리가 없다"고 한숨 쉬었다. 급기야 한 상인은 명동 노점 시세로 한 장 8000원인 티셔츠를 두 장 1만3000원이란 파격 세일가에 팔기 시작했다.
음식 노점들은 화려한 볼거리·다양한 메뉴 등을 앞세워 얼마 없는 외국인 관광객 몰이에 나섰다. 씨앗계란빵·가리비치즈버터구이·랍스터구이·순살닭강정·떡갈비완자·회오리감자 등 기존 음식 외에 치즈구이·돼지껍데기구이·무뼈닭발·야키소바 같은 신메뉴가 더해져 전국 최고 수준의 먹자골목을 형성했다. 여름 들어선 생과일주스·아이스크림붕어빵·아이스크림추로스 등 계절메뉴까지 합세했다.
노점들이 아무리 안간힘을 써 봐도 후텁지근한 야외에서 음식을 사먹는 행인은 소수였다. "시원한 생과일주스 드시고 가세요." 상인의 호객에 한 무리의 외국인 관광객들이 멈춰 섰다. 지갑은 열리지 않았다. 이들은 과일, 발광다이오드(LED) 조명 등으로 화려하게 꾸민 노점을 휴대폰 카메라로 찍고 근처 화장품 가게로 들어갔다. 화장품·의류 매장들은 어느 곳 할 것 없이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고 문은 활짝 열어젖힌 채 영업했다. 온도뿐 아니라 손님 수도 노점들과 확연히 대비됐다.
노점 상인들 대부분은 중국인 단체관광객이 급감하면서 상대적으로 일본·동남아시아·유럽·아랍 등 지역에서 온 관광객이 늘어난 느낌은 있다고 전했다. 특히 명동 거리에서 히잡(여성 무슬림이 외출할 때 머리와 목을 가리기 위해 쓰는 베일)을 두른 무슬림 여성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 노점 여기저기서 할랄 식품(이슬람 율법으로 허용돼 이슬람교도가 먹을 수 있는 음식) 인증을 받았다는 표시도 내걸었다.
토치로 '불쇼'를 했던 돼지껍데기구이 상인들은 손님이 뜸하자 노점 뒤 계단에 주저앉아 멍하니 거리를 쳐다봤다. 풀리지 않는 한·중 관계처럼 명동 거리의 매출 한파도 장기화하고 있다.
오종탁 기자 tak@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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