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투자가 지금 실적 만들어…총수 부재로 계획 올스톱
1위 빼앗긴 인텔, 17조 들여 자율주행 기술 기업 인수
최태원 SK 회장은 발로 뛰는데…광폭 행보가 부러운 삼성맨
[아시아경제 강희종 기자]"인텔을 넘어섰다고 축배를 들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닙니다. 인텔은 17조원들 들여 자율주행 핵심 기술 기업을 인수했는데 우리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어요."
삼성전자가 '사상 최대 실적'에도 샴페인을 터트리기는 커녕 미래 경쟁력을 우려하고 있다. 지금의 호실적이 과거의 과감한 투자에 기반한 반면 현재는 투자 계획을 잡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와 스마트폰 등 업종의 특성상 적기에 투자하지 못하면 경쟁력은 급속히 하락할 수밖에 없다.
삼성이 '시계제로'에 처해 있다고 하소연하는 것도 그같은 특수성을 반영하는 내부 분위기라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 2분기 반도체에서만 17조원 이상의 매출을 기록하며 16조원대에 머무른 인텔을 꺾고 24년 만에 반도체 업계 1위에 올랐다. 제조 기업 영업이익 1위, 반도체 업계 1위 달성에도 불구하고 최근 삼성전자는 미래를 담보할 수 없다는 위기감만 맴돌고 있다.
◆"인텔 꺾었다" 축배 들 때 아냐…상반기 M&A 0건=삼성의 한 임원은 "반도체 1위는 분명 축하받아 마땅할 일이지만 3~5년 후에도 이같은 업황이 유지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며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호황이 끝났을 때 과연 무엇을 먹고 살아야할지 생각하면 아득하다"고 말했다.
이와 달리 반도체에서 삼성에 1위를 빼앗긴 인텔은 미래 경쟁력에 대비한 준비를 갖춰가고 있다. 인텔은 지난 3월 이스라엘의 자율주행차 기술 업체인 모빌아이를 153억달러(약 17조5300억원)에 인수해 전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미래 도래할 자율주행차 시대를 준비하기 위해 핵심 기술을 선점한 것이다. 모빌아이는 반도체에 기반한 자동차용 카메라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는 업체로 이미 반자동 주행 기능을 상용화하는데 성공했다. 제너럴모터스(GM), BMW, 닛산, 현대차 등에 이미 납품하고 있다.
반면 전장 사업을 차세대 미래 먹거리로 육성하겠다는 삼성전자는 지난해 11월 미국 하만 인수 발표 이후 8개월째 인수합병(M&A)이 0건을 기록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 2015년 심프레스, 루프페이, 예스코일렉트로닉스를 인수한 데 이어 2016년에는 조이언트, 애드기어테크놀로지, 데이코, 비브랩스, 하만, 뉴넷캐나다를 인수하는 등 왕성한 식욕을 보였다. 작년 7월에는 중국 전기자동차와 스마트폰 부품 등을 생산하는 비야디(BYD)에 30억 위안(약5100억원)의 지분투자를 실시해 9대 주주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삼성전자는 올해 상반기 단 한건의 M&A도 기록하지 못했다. 지난 2월 미국의 사물인터넷(IoT) 스타트업 퍼치, 3월 미국 가상현실(VR) 관련 스타트업 VRB의 인력을 흡수하긴 했으나 M&A로 보기는 어렵다는 평가다.
미국에서 스타트업을 발굴ㆍ육성하는 삼성넥스트와 삼성 전략혁신센터(SSIC)를 통한 투자도 일상적인 수준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다. 삼성전자의 다른 임원은 "그동안 이재용 부회장이 수시로 실리콘밸리 등 해외를 돌며 유망 기업을 발굴하고 M&A를 결정했는데 이 부회장에 대한 출국금지, 검찰 수사, 구속수감 등으로 과거와 같이 활동을 전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더불어민주당이 지난 8일 삼성전자의 최대 실적을 반기는 논평을 하면서도 "비록 기업총수가 구속됐지만 앞으로 투명한 기업운영과 진취적인 기업활동을 통해 세계 1위의 위상을 굳건히 지켜주길 바란다"고 밝힌 것도 이같은 우려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최 회장은 발로 뛰는데"…SK가 부러운 삼성맨=일본 게이오대학과 미국 하버드대학에 경영학을 전공한 이 부회장은 폭넓은 글로벌 인맥을 활용해 왕성한 대외활동을 펼쳐왔다. 이 부회장은 일상적인 경영 활동은 전문 경영인에게 맡기고 주로 글로벌 경영인, 창업자, 금융투자자 등을 만나 미래 먹거리를 발굴하고 주요 투자 사항을 결정하는 역할을 담당해 왔다.
하지만 올해에는 지난 4월 중국에서 열린 보아오포럼과 이달 예정된 미국 선밸리컨퍼런스에도 불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 부회장은 보아오포럼의 유일한 한국인 이사였으며 선밸리컨퍼런스에 초청받는 유일한 한국 기업인이었다. 삼성뿐 아니라 우리나라 전체적으로 해외 기업인들과 교류하며 정보를 교류하고 통찰력을 얻을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잃은 것이다.
삼성과 달리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국내외에서 보이고 있는 활약상은 대단하다. SK하이닉스의 도시바 인수를 위해 지난 4월 일본으로 직접 건너가 매듭을 풀었으며 지난 7일에는 중국 톈진에서 중국 고위 인사를 만나 화학ㆍ반도체ㆍ바이오 분야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삼성 관계자는 "최근 최태원 회장은 광폭 행보를 보이며 반도체 등 미래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고 있는데 삼성전자는 기존에 뿌려놓은 것 이외에 새로운 먹거리에 대한 투자를 찾기 어렵다"며 "총수 부재 상태가 장기화되면서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우려가 현실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강희종 기자 mindl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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