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종범 수첩은 직접증거보다 증거효력 약한 '정황증거'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재용 부회장 사이 대화 내용 입증할 증거로는 부족"
[아시아경제 원다라 기자] 6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7부(김진동 부장판사)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36차 공판에서 '안종범 수첩'을 직접증거가 아닌 정황증거로 채택했다. 수첩만으로는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재용 부회장 사이에 오간 청탁 여부 등을 입증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재판부는 이날 새벽1시께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 수석에 대한 밤샘 증인 신문을 마무리하면서 "박 전 대통령이 이 부회장과 수첩에 기재된 내용의 대화를 했다는 직접ㆍ진술 증거로서는 인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안종범 수첩을 직접증거가 아닌 정황증거로 채택한 배경을 이렇게 설명한 것이다.
직접증거란 범죄사실을 직접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 증거를 의미하며, 정황증거는 범죄사실의 존재를 간접적으로 추측하게 하는 증거를 의미한다. 통상 정황증거도 증거로 인정되기는 하지만 직접증거보다는 증거효력이 떨어진다는 게 법조계의 공통된 인식이다.
이 부회장의 뇌물공여 혐의를 입증할 '스모킹건'으로 안종범 수첩에 기대를 걸었던 특검은 난처한 상황에 처했다. 특검측은 재판부의 이같은 결정에 "안종범 수첩은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 사이에 부정한 청탁이 있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핵심 증거"라고 반발했다. 이에 대해 삼성 변호인단은 "재판부 판단처럼 면담이나 독대 과정에서의 대화 내용을 직접적으로 증명할 만한 증거가 되지 않는다"며 "장시간 진행된 공판을 돌아보면 이 부회장의 부정 청탁이 있었는지를 입증할 만한 내용이 뭐가 있었는지 반문할 수 밖에 없다"고 반박했다.
재판부가 안종범 수첩을 정황증거로 채택한데 대해 법조계 관계자는 "안종범 수첩이 간접증거로 채택됐지만 이 부회장에 대한 유죄판결이 내려질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면서도 "일반적으로 정황증거가 직접증거에 비해 증거효력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이례적으로 이틀간 진행된 안 전 수석에 대한 증인신문에서는 양측의 치열한 공방이 펼쳐졌다. 특검은 수첩에 '이재용, 삼성, 국민연금, 재단' 등의 단어가 기재되어 있다는 점을 들며 이 부회장이 독대 자리에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을 도와달라는 취지의 청탁을 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변호인단은 '최순실, 정유라, 삼성승계, 중간금융지주사' 등이 기재되지 않았다는 점을 들며 부정 청탁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내용이 없다고 반박했다. 안 전 수석은 "박 전대통령이 말한 내용을 그대로 받아적는 방식으로 수첩을 작성했다"며 "삼성승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등과 관련해 삼성을 도우라는 박 전 대통령의 지시를 받은 사실은 없다"고 증언했다.
원다라 기자 supermoon@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