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문제원 기자] 삼성이 정유라씨에게 승마지원을 하는 과정에서 징검다리 역할을 했다고 알려진 박상진 전 삼성전자 사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했지만 증언을 거부했다.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해 삼성 임원들과 박 전 대통령이 뇌물공여자와 수수자로 각각 재판을 받고 있는 만큼, 최대한 말을 아껴 검찰에 혐의 입증 여지를 주지 않겠다는 취지다. 향후 증인으로 채택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삼성 전·현직 임원들도 같은 전략을 사용할 것으로 보인다.
19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김세윤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의 공판에 박 전 사장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박 전 사장은 이날 검찰과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질문에 증언 거부권을 행사했다. 지난해와 올해 특검 등에서 조사받은 내용의 진정 성립을 묻는 질문에도 "죄송합니다. 증언 거부하겠습니다"라고만 짧게 답했다.
다만 "왜 질문에 증언을 거부하는지 이유를 밝혀 달라"는 검찰의 질문에는 "제가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변호인에게 재판에 관련된 질문은 증언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대상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답했다.
박 전 사장은 삼성전자 등에서 재직한 경력을 묻는 질문에는 재판부를 향해 "재판장님 이것도 증언거부 대상이 됩니까"라고 묻기도 했다. 재판부가 "재판부는 기록 전부를 보지 못했기 때문에 (증인의 형사책임과 관련 있는 질문인지) 알지 못 한다"고 답하자 박 전 사장은 변호인단을 쳐다봤고, 재판부로부터 "그 쪽 변호인을 보지 마시라"는 주의를 받기도 했다.
이에 대해 특검은 "증언 거부는 이 부회장을 정점으로 한 그룹 차원의 통일적 의견"이라며 "위증죄로 추가 기소될 것에 대한 두려움과 총수에게 불리한 증언을 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아예 증언을 거부하겠다는 입장인 것 같다"고 주장했다.
이어 "기존 대기업 재벌총수가 연루된 수많은 사건이 있었지만 이렇게 조직적으로 재판 절차에 협조하지 않은 선례가 없었다"며 "삼성 측 행태는 삼성 관계자들이 '우리는 법 위에 있다'고 생각한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박 전 사장은 지난 16일 "본인이 같은 사안으로 기소돼 재판 중이어서 증언이 힘들다"는 취지의 '증언거부 사유 소명서'를 재판부에 제출했다.
한편 박 전 사장은 대한승마협회 회장사가 한화에서 삼성으로 변경된 뒤 협회장을 맡아 독일을 드나들며 삼성의 정씨에 대한 승마지원에 실무자 역할을 맡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2015년 7월25일 박 전 대통령이 이 부회장에게 "승마 지원이 부족하다"고 질책한 뒤에는 독일로 건너가 최씨의 구체적인 요구사항을 확인했으며, 이후 최씨가 실소유주로 있는 코어스포츠와 해외훈련 지원 용역 계약을 맺기도 했다.
특히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은 2015년 7월 박 전 사장과의 통화에서 '대통령이 (독대를 통해) 이 부회장에게 정씨를 2020년 도쿄올림픽에 나갈 수 있게 하라고 했다'는 말을 들었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문제원 기자 nest2639@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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